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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7일 제주에 문을 연 전국 13번째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제주대병원 사거리 동쪽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당초 알려진 제주4.3트라우마센터와는 성격과 기능이 다르다. ⓒ제주의소리
[4.3트라우마] ② 겉도는 트라우마센터...4.3특별법 근거 제주 설립 ‘한목소리’

제주4.3사건이 발생한지 67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부의 공식 사과와 피해자.유족 등에 대한 일부 지원이 이뤄졌지만, 삶의 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4.3희생자와 유가족의 68%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광주는 5.18 피해자들을 위해 국내 첫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를 위한 광주트라우마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광주5.18의 희생자는 700여명, 제주4.3은 3만여명에 이른다. 장기간 국가폭력 아래 고통 받은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해 사회적 치유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주의소리]가 제주4.3사건 67주기를 맞아 트라우마 실태와 치유 방안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붉은 벽돌집 못 봐” 67년 전 끔찍한 기억 지금도 몸서리
②겉도는 제주트라우마센터, 사회적 치유 절실

지난 1월27일 제주대학교병원 사거리 동쪽 건물에 제주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가 문을 열었다. 수백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지만 제주4.3희생자 유족들의 마음은 그다지 편치 않았다.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는 사업 첫해인 2014년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대학교병원이 보건복지부 예산 3억9226만원을 지원받아 운영을 시작한 정신보건 기관이다.

정신보건법 제13조에 근거해 24시간 자살예방과 위기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복지부와 제주도는 위탁운영자로 제주대병원을 선정하고 올해 예산으로 7억6888만원을 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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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7일 제주에 문을 연 전국 13번째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당초 알려진 제주4.3트라우마센터와는 성격과 기능이 다르다. ⓒ제주의소리
연면적 410㎡ 규모에 사무실과 상담실, 교육실, 당직실 등을 갖췄다. 센터장과 정신보건전문요원 4명, 간호사 2명, 사회복지사 5명 등 전문인력 14명이 투입됐다.

4.3트라우마센터는 강창일 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 제주시 갑)이 지난 총선에서 내건 공약 사항이다. 4.3희생자와 유족, 4.3단체들도 수년간 정부에 센터 설립을 요구해왔다.

강 의원은 4.3트라우마 치유사업 실시 근거 등을 담은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당시 행정안전부는 매번 난색을 표했다.

결국 강 의원이 보건복지부 소관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설치사업에 4.3트라우마 치유 기능을 추가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어 전국에서 13번째로 제주에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가 들어섰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해 4월, 4.3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제주지역 설치가 확정됐다며 성명서까지 냈지만 엄밀히 말해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와 4.3트라우마센터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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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국가추념식으로 치러진 66주기 4.3추념식에 앞서 유족들이 4.3평화공원을 찾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의 주요 업무는 정신질환자의 재활 지원과 자살예방이다. 4.3치유는 외부에서 요청이 있을 때 진행하는 과업 중 하나일 뿐 자체 운영내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승혁 제주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상임팀장은 “외부에서 '4.3트라우마센터'로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며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는 4.3치유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이 아니”라고 말했다.

4.3트라우마센터는 정신질환자 재활이 아닌 국가폭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생존자와 가족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 제공이 목적이다. 공동체 안에서 일상적인 삶을 회복하는 것을 돕는 역할도 한다.

임채도 인권의학연구소 사무국장은 “국가폭력은 피해자와 유족에게 영구적인 내적 폭력으로 작용한다”며 “이를 방치하지 말고 일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 치유 지원 기관은 5.18피해자를 위한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유일하다. 광주는 정신건강법과 정신건강 증진 조례에 근거해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

2012년 10월부터 2년간 시범운영이 끝나자 광주시는 운영기간을 1년 더 연장했다. 국가폭력에 의한 국내 첫 트라우마센터지만 아직 상설기구화 등 조직안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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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이후 6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국가적 폭력으로 정신적 외상을 입은 희생자와 유족을 위한 정부의 책임있는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족들이 제주4.3트라우마센터 설립을 요구하는 이유다.  ⓒ제주의소리
일반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처럼 정신건강법에 근거해 법적 안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다. 제주도가 4.3트라우마센터 설립 근거를 4.3특별법에 두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4.3 무료 변론을 도맡아온 법무법인 원의 문성윤 변호사는 “정신보건법에 근거한 정신보건사업은 인격장애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4.3피해자의 치유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문 변호사는 “노근리나 5.18과 달리 4.3은 장기간에 걸쳐 아이에서 노인까지 수만명이 피해를 입은 사건”이라며 “역사적 특수성을 감안해 전문 치유센터가 설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은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자를 정신질환자로 간주해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고 실효성도 없다”며 “전문적인 치유 프로그램을 마련해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국가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는 2세대에서도 확인된다”며 “단순히 당사자만의 피해가 아닌 가족과 지역의 문제로 봐야 한다. 사회적 인지가 부족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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