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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력 으뜸 장어, 절 주변 대표 음식인 이유가

서정주, 송창식, 최영미, 유홍준.. 소박한 절집에 사람들 불러들여

장태욱 taeuk30@naver.com 2015년 04월 05일 일요일 08:0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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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 경내. 대웅전 뒷쪽에 보이는게 동백숲이다.

버스가 고창읍에 도착한 이후 빗줄기는 다소 잦아들었다. 택시를 타고 선운사 입구까지 가는 도중에 바라본 들녘은 온통 붉은 색 황토로 덮였다. 택시 기사는 "서울에서 땅을 알아보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서 고창과 부안 일대 땅값이 들썩인다"고 했다. 새만금을 중심으로 전개될 서해안 개발에 대한 기대가 조용하던 시골을 흔들어 깨우는 모양이다.

오후 늦게 선운사가 있는 아산면 삼인리에 도착했다. 일대는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민박, 펜션, 모텔, 관광식당 등이 즐비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식당들이 모두 풍천장어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소박한 절집 음식을 기대했는데, 정력에 좋다는 장어라니 조금 민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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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천이 곰소만에 이르기 전 두터운 갯벌이 형성되었는데, 이곳이 장어의 서식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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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당의 고향에서 바라본 고창 들녘이다. 멀리 변산반도가 보인다.

선운산은 수많은 실개천을 품고 있다. 이 실개천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들이 주진천에 모인 후 서해로 흘러 곰소만에 이른다. 주진천 줄기가 곰소만에 이르기 전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면서 두터운 갯벌을 만들었는데, 이곳이 장어의 보금자리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식당 주인의 말을 빌리면, 관광객들이 많이 오면서 이젠 자연산 장어보다 양식 장어를 주로 판다.

절 주변 대표 음식이 정력에 좋다는 장어라니..

아산면은 고인돌 집성지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이는 이 일대가 토질이 비옥하고 물이 풍부했음을 말해준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전라도에 뱃장사들이 모이는 포구로 영광의 법성포, 전주의 사탄포와 더불어 흥덕(지금의 고창군 흥덕면)의 사진포가 있다며, 모두 "강이 짧지만 조수와 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이 일대의 풍부한 물산을 찾아 장사꾼들이 몰렸다는 말이다.

선운사에 가려면 입구에서 선운산도립공원 입장권을 사야한다. 비온 후 물이 제법 많아져서 선운사로 이어진 도솔천(선운천)을 흐르는 물이 제법 센 소리를 내었다. 도솔천과 나란히 이어진 산책로를 걷는 마음은 여독을 모두 날릴 만큼 시원하고 잔잔하다.

매표소에서 채 몇 분 걷지 않았는데, 천연기념물을 알리는 표시가 눈에 들어온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송악으로 지정된 '선운산 송악'이다. 송악은 담쟁이처럼 바위에 붙어 기어오르는 성질이 있는데, 바위벽에 기대어 오른 길이 수십 미터에 이른다. 제주도에서는 어딜 가든지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인데, 고창에서는 천연기념물이라니 다소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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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선운산 송악이다. 제주에서 흔히 볼수 있는 송악이 고창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니..

제주에서 흔한 송악이 고창에선 천연기념물

산책길을 1킬로 남짓 걸으면 선운사 대웅전으로 넘어서는 극락교를 건너게 된다. 안개가 자욱한 날, 극락교를 통해 도솔천을 건너는 느낌은 마치 속세의 끈을 내려놓고 선계(仙堺)로 들어서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래 전 떠나온 고향 집 대문에 들어서는 것 같기도 하다. 극락교를 건너 천왕문을 들어서면 선운사 경내가 눈앞에 펼쳐진다.

사찰 경내에 들어서니 도솔천을 흐르는 물소리와 새 지저귀는 소리가 어우러져 한결 평화롭다. 비오는 날씨 때문에 방문한 관광객들도 없어서 역설적이게도 휴양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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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 앞을 지나는 도솔천(선운천)
선운사는 백제 부흥기인 위덕왕대(553-598년)에 검단선사가 지은 동불암을 그 시작으로 한다. 한 때는 암자 140개를 거느린 대가람이었지만, 지금은 소박한 절집일 뿐이다. 이 소박한 절집이 사람이 몰려드는 관광지로 변모한 것은 절집 뒷산의 동백나무 숲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동백나무 숲의 아름다움을 글로써 세상에 널리 알린 이들이 있는데, 미당 서정주, 가수 송창식, 최영미 시인, 유홍준 교수 등이 그들이다. 그중에서도 원조는 역시 이 지역이 고향인 미당이라 하겠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아직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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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 동백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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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 동백꽃은 미당 서정주, 가수 송창식, 최영미 시인, 유홍준 교수 등 문필가들의 손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선운사 동백을 글로 알린 사람들

미당이 1967년에 <예술원보>에 발표한 '선운사 동구'라는 시 전문이다. 시인이 장성한 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선운사 동백 숲을 찾아갔다. 그런데 조급한 마음으로 너무 일찍 가는 바람에 꽃은 미처 피지 않았고, 시인은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막걸릿집 여인의 노래 가운데 예전 동백꽃의 흔적이나마 맛볼 수 있으니 위안으로 삼을 밖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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