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근대건축 산책] (20) 上 건축가 김중업 이야기 

#.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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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중업. (인용=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열화당,1984년)
두 번째로 소개할 건축가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왕성한 건축활동을 하였던 한국건축계의 거장 김중업이다. 김중업은 같은 시기에 활동하였던 건축가 김수근과 함께 한국건축계의 양대 축이라 부를 만큼 건축이라는 동질적인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각기 다른 건축가치관으로 작품활동했던 건축가이다. 

1922년 3월 평양태생으로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요꼬하마(横浜)고등공업학교(현 요꼬하마국립대학)건축학과에서 본격적인 건축을 공부하게 되었다.1941년 12월에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는데 1944년 조선주택영 이사장 직속으로 특수주택설계을 담당하였다. 1946년 단신으로 월남하여 미군공사 설계를 맡았으며 서울대 공대 전임강사가 되어 건축학과 도시계획을 강의하였다. 

1952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유네스코 주최 제1회 세계예술가회의 한국대표로 참가하게 된다. 그곳에서 운명의 르 꼬르뷔제를 만나게 되어 1952년 10월25일부터 1955년 12월25일까지 르 꼬르뷔제 건축연구소에서 4년간 근무하게 된다. 이때건축뿐만 아니라 현대음악, 현대미술에도 눈을 뜨게 된다. 1956년 3월 드디어 귀국하여 1979년 11월까지 왕성한 국내건축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1971년 11월 도적촌 사건을 다룬 글로 인해 프랑스로 강제출국 당하게 된다. 1979년 귀국하게 되는데 약 8년간의 국외체류는 김중업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것으로 보인다. 귀국 후 작가로서 건축작품활동을 의욕적으로 전개하며 당시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 속에서 남겨진 얼마 되지 않는 모더니즘 성향 건축물의 상당부분을 설계하였고, 한국 건축계에 모더니즘을 정착시켰던 그는 1988년 5월11일 향년 6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건축가로서의 활동 40년동안 약 200여개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 근대건축의 거장(巨匠) 르 꼬르뷔제의 건축관

김중업의 대표적인 작품을 손꼽는다면 아마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제주대학 구본관 등을 열거할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가장 르 꼬르뷔제적이면서도 가장 김중업다운 건축의 가치를 담고 표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중업의 대표작품, 특히 제주대학 구본관을 언급하기에 앞서 르 꼬르뷔제의 건축관을 한번 언급하고 가는 것이  훨씬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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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스프리트 느보의 8월호 표지.
르 꼬르뷔제는 예술잡지 [르 스프리트 느보](1920년부터 1925년까지의 사이에 28권을 발행)에 여러 기사를 게재하였는데, 그 중에서 1921년 8월호에 게재된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이다]라고 언급하였다. 이 말은 상당히 유명하게 되어 어떤 때는 근대건축의 비인간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한 언어적 의미를 벗어난 것으로 그가 언급한 ‘기계’의 의미는 전체를 움직이게 하기 위한 하나의 연결부품으로서  보편적인 기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주택(혹은) 건축에 이러한 기능들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그 모델이 되는 것이 기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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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 5원칙.

이와 같이, 르 꼬르뷔제의 건축 작품에는 규칙과 방법에 의하여 프로그래밍돼 만들어지고 아울러 특유의 장소와 공간의 인식이 도입되면서 그의 작품으로서의 형태가 구체화되는 것이다.  규칙과 방법의 대표적인 것이 [근대건축 5원칙], [도미노시스템]등을 들 수 있다. 헨리 러셀 히치코크(H.R. Hitchcock)와 필립 죤슨(P. Johnson)의 공저인 [1922년 이후의 인터내셔날 스타일]라는 간행물에서 근대건축을 1)볼륨으로서의 건축, 2)규칙성을 갖는 건축, 3)장식기피의 건축으로 정리하여 근대건축을 하나의 스타일로서 파악하려하였다. 이러한 탈 이데올로기적인 가치관의 태도는 아마도 르 꼬르뷔제의 [근대건축 5원칙]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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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테 다비다시온(Unite d' Hab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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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샹교회(Ronchamp Church).
이러한 맥락에서 르 꼬르뷔제를 대표하는 근대건축 작품경향은 소위 [인터내셔날 스타일]로서의 인식될 수 있는 특징을 나타내는 것과 풍토와의 조화, 주변경관의 배려를 포함한 장소성과 공간성이 강조된 작품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건축물이  유니테 다비다시온(Unite d' Habitation)이라면, 후자는 그 유명한 롱샹교회(Ronchamp Church)를 들 수 있다. 

#. 건축가 김중업의 건축 이야기
앞서 언급하였듯이 약 4년이라는 르 꼬르뷔제 건축연구소에서의 생활 속에서 김중업은 철저히 르 꼬르뷔제의 건축언어를 습득하였을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김중업은 1952년10월부터 만 3년6개월간  르 꼬르뷔제 건축연구소에서 건축수업을 받고 1956년 3월에 귀국하게 된다. 프랑스 파리에서 귀국이후 김중업은 국내에서 왕성한 건축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1956년과 1971년, 15년간은 김중업이 정열적으로 건축 작업에 몰두한 시기였다. 1957년 중앙공보관에서 제1회 작품전을 개최하여 건축계에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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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의 제1회 작품전 관련기사(경향신문기사 1957년4월11일자)와 사진(인용=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열화당,1984년).
그의 초기작품은 꼬르뷔제의 건축적 언어를 그대로 묘사하거나 혹은 변용하는 과정에 탄생된 작품들이다. 초기의 르 꼬르뷔제의 영향을 받아 건축어휘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서강대학교 본관, 부산대학교 본관, 건국대학교 도서관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반면 이후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기점으로 한국적 곡선미 내지는 한국적 미의 가치를 강력하게 표현하려는 탐구적 노력, 즉 르 꼬르뷔제의 건축언어 내지는 넓게는 서구적인 건축언어와 기법에 한국적 동질성을 덧씌우는 작업을 추구하였다. 제주대학교 본관, 부산UN묘지 정문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러나 영구 귀국한 1979년이후  그의 건축작품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건축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한층 세련된 건축언어로 작품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육군박물관, 교육개발원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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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 본관(인용=격월간PA(Pro Architect) 김중업 편, 1997.01, 건축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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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 본관(인용=격월간PA(Pro Architect) 김중업 편, 1997.01, 건축세계사).
굳이 김중업의 작품을 두 계열로 구분한다면, 하나는 기계미학에 바탕을 둔 합리적이고 기능주의적인 경향의 작품계열과  또 다른 하나는 감성적인 표현주의 경향의 작품계열이다. 서강대학 본관이나 부산대학의 본관, 건국대학 도서관 등이 기능주의 경향의 작품계열에 속한다고 한다면, 프랑스 대사관과 제주대학 구본관은 후자의 감성적 표현주의 경향의 작품이다. 특히 1960년에 발표된 프랑스 대사관의 후속작과 같이 느껴지는 제주대학 구본관은 조형적인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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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UN묘지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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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사관(인용=격월간PA(Pro Architect) 김중업 편, 1997.01, 건축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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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 구본관.
김중업의 자서전적인 작품집인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열화당, 1984)의 표지에는 프랑스대사관과 제주대학 구본관의 사진이 표지 앞과 뒤로 나란히 게재되어 있다. 그만큼 김중업의 혼과 열정이 담긴 대표적인 작품임을 짐작케 하고,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건축사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제주대학 구본관은 철저하게 르 꼬르뷔제의 규칙과 방법이 적용되면서도 바다에 인접한 지역적인 조건이 배려된 공간성과 장소성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작품이다. 

참고문헌
김중업(1984),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열화당.
김태일(2005), 제주건축의 맥, 제주대학교 출판부
격월간PA(Pro Architect) 김중업 편, 1997.01, 건축세계사.

하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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