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란 한 나라의 힘이 매우 커서 다른 많은 나라들과 지역을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경제학 제국주의에는 양면성이 있다. 한편에서는 경제학이 자기의 고유 영역이 아닌 분야에 경제학의 분석 도구를 들이대 환경경제학 교육경제학 범죄경제학 등으로 연구 분야를 확대해가고 있어 이 분야들을 학술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경제학의 '침범'은 그 역효과로서 넓게는 사회 전반, 좁게는 관공서의 각 부처에서 환경 교육 치안 등 분야의 중요도 서열을 '경제'에 비해 한참 떨어진 것으로 만들고 있다. 즉 경제학 제국주의는 경제 이외의 다른 분야들을 부차적이며 열등한 것으로 비하시키는 현상을 낳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학 안에서도 힘의 균형은 금융화(金融化, financialization) 세태를 반영해 금융경제학 쪽으로 기울고 있다. 금융화란 미래와 현재의 모든 재화를 당장 매매 가능한 금융상품으로 전환시키는 기술, 나아가 그런 기술이 큰 돈을 벌게 되는 사회현상을 말한다.

금리와 환율 등은 경제의 변수들에 불과한데 이것들을 상품으로 만들면 선물 옵션 스왑 등의 금융파생상품이 탄생한다. 금융위기 발발 직전 2006년 미국의 금융파생상품 연간 거래량은 미국 GDP 12조달러의 100배에 해당하는 1200조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경제학 중에서도 농 공업 경제학이나 노동 경제학을 제치고 금융경제학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2009년에 뒤늦게 등장한 것이 '새롭게 생각하는 경제학회'(Institute for New Economic Thinking)다. 조지 소로스가 자금의 많은 부분을 대고 수많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와 전 세계의 전 현직 고위관료들이 폭넓게 참여하고 있다. 특징은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 등에도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한다는 점이다.

양극화 가속시킨 금융화 현상

이 학회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완성된 논문 '금융화와 소득불평등의 상관관계'는 금융화가 미국 사회의 양극화를 촉진시켰다고 주장해 2014년 전미사회학회가 수여하는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저자인 텍사스대학의 사회학 교수 컨하오 린은 사회학자의 시각으로 불평등 문제에 접근한다.

금융을 주업으로 하지 않는 제조업 등 일반 기업체들이 금융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순이익의 비중은 1980년 15%에서 2007년에 32%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재무 및 경영관리 인원이 우대받고 주 업종에 종사했던 대다수 근로자들은 임금 협상에서 불리한 지위에 서게 되었는데 그 결과 지니계수로 본 미국 국민의 소득불평등 정도가 이란, 중국 또는 멕시코 수준으로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새롭게 생각하는 경제학회는 지난 5일과 6일 양일간 워싱턴에서 '금융과 사회'라는 주제의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주제가 말하듯이 이 자리는 금융에 대한 사회의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토론의 패널로 크리스틴 라가드 IMF 총재, 재닛 옐런 미 연준의장, 그리고 미 의회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이 포함되었는데 특히 워런은 금융소비자 보호 및 거대 금융자본의 규제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여성 의원이다.

물론 언론의 많은 관심은 옐런 의장의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채권 시장이 크게 요동할 것" 또는 "지금의 주식은 과대평가된 감이 있다"는 등의 발언에 모아졌지만 이것 역시 금융화의 일면을 보여준 것이었다.

잘사는 사회를 위한 경제학의 한계

경제학의 법칙들에는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즉 '다른 모든 조건들이 동일하다면'이라는 단서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종종 세테리스 파리부스의 여러 항목들이 경제학의 주요 변수들보다 더 중요한 열쇠를 쥐곤 한다. 예를 들어 법의 투명하고 엄격한 집행이라던가 범죄와 사고로부터의 안전, 근로자의 기본권보호 등은 경제활동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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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유럽에서 금년 5월은 세계 제2차대전 승전 70주년을 기념하는 달이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유럽의 경제 이데올로기는 사회민주주의에서 출발해 신자유주의로 전환했다가 이제는 다시 새로운 사상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에 당면해 있다.

분명한 것은 경제학의 진정한 목표인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학 제국주의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이 글은 <내일신문> 5월 13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게재됐습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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