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어멍 동물愛談] (10) 장미여관 NO, 장미정원 주인장 ‘보리’

반려동물을 만나 인생관이 바뀐 사람. 바로 코코어멍 김란영 교수입니다. 그는 제주관광대 치위생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운명처럼 만난 '코코'라는 강아지를 통해 반려동물의 의미를 알게됐답니다. 일상에서 깨닫고 느낀 사랑스러운 반려동물 이야기를 코코어멍이 <제주의소리>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보리는 내가 만난 개 중 덩치가 제일 크다. 반가움에 육중한 몸을 세우며 혀로 얼굴을 핥을 때면 얼굴 중 하나는 마치 쓸려 나갈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도 이내 그 반가움에 흠뻑 취하게 된다.

우리 과 학생들과 ‘행복한 제주유기동물쉼터’에 봉사활동을 하던 어느 날 보리를 처음 만났다. 엄마와 아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바지런을 떨며 보리를 챙기고 있었다. 매번 단둘이 같은 날에 그것도 보리만 챙기는 게 특별해 보였다. 알고 보니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둘 곳이 마땅치 않다며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돌본다고 했다.

noname01.jpg
▲ ‘행복한 제주유기동물쉼터’의 보리. 지난해 한 해만 전국에서 버려진 동물이 8만1000마리이다. 하루에 약 222마리씩 버려졌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버려지고 있다. / 사진=김란영 ⓒ 제주의소리

그러다 한참 동안 보리를 보지 못하고 지난 겨울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멀뚱하니 문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 씩씩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움직임도 힘들어 보였다. 그 가족들이 계속 보리를 돌보고 있냐고 물었더니 발길을 끊은 지 오래라고 한다. 그렇게 보리는 또 버려지게 되었다. 거기다 몸도 많이 아프다.

보리와 같이 버려진 동물을 보면 동화 속 인어공주가 떠오른다. 모든 사랑을 주었지만 끝내 왕자에게 외면 받아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공주. 사랑하는 왕자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한 인어공주.

아마도 왕자는 인어공주의 깊은 눈망울을 보지 못했을 거다. 말없이 전해지는 그녀의 사랑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어리석었는지 모른다. 그녀의 사랑에 비해 왕자의 사랑은 참으로 보잘 것 없게 느껴진다.  

인어공주의 절망처럼 삶이 바닥으로 떨어져 어떤 탈출구도 보이지 않을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줄 것을 보리는 알고 있었을까?

noname02.jpg
▲ 반가움에 내게로 돌진하는 보리, 마치 땅이 흔들거리는 기분은 뭘까? / 사진=김란영 ⓒ 제주의소리

어느 날 덩치가 산만한 보리가 내게로 돌진을 한다. 그 사이 잊지 않았는지 엄청 반긴다. 그런데 몇 분 지나고 보니, 알아서 반겼다기보다 그냥 행복해서 넘치는 사랑을 여기 저기 나눠주는 듯 보였다. ‘옛다, 너 가져라’ 뭐 그런 식이다.

이제는 묶여 있던 끈도, 절망적인 표정도 보리의 것이 아니다. 보리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보리처럼 몸집이 크고, 버려지고, 상처받고, 나이 들고, 아픈 개가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noname03.jpg
▲ 트로트 노래처럼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보리 엄마 임현신씨의 사랑을 받고 행복해 하는 보리의 얼굴을 보니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 사진=김란영 ⓒ 제주의소리

그녀는 보리가 단박에 눈에 들어 왔다고 말한다. 장미정원의 주인장으로 ‘딱!’이라고 생각했다. 남아있는 보리의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단다. 그러면 그녀 자신도 행복할거 같다나. 장미정원을 묵묵히 가꾸는 정원사(?) 남편도 멀리서 배시시 웃는다. 요새 말로 ‘헐, 대박 가족’이다.

장미정원은 처음부터 보리를 위한 마당은 아니었다. 한 달도 안 되어 버려진 곰돌이, 어느 할머니에게 맞기만 했던 돌돌이 그리고 쌍둥이 같이 닮은 블루, 스카이를 너른 마당에서 맘껏 뛰게 해주고 싶었단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아파트에서 이사했다. 참 아이러니다. 누구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해서 버리고 또 누구는 부러 마당을 만들어 데려오니 말이다.

noname04.jpg
▲ 보리네 장미정원에서 ‘5월의 장미축제’가 열린다. 5월 25일 월요일, 부처님 오신 날. 그날 부산스런 반나절을 보낸 부처님도, 그의 탄생을 축하해 주셨을 예수님도 보리를 만나러 북촌으로 발걸음 하시지 않을까? / 사진=김란영 ⓒ 제주의소리

멋진 사람과 동물을 만날 때면 삶의 힘겨움을 보상 받는 기분이다. 마치 새로운 곳을 여행하
는 것처럼 말이다. 보리가 있는 장미정원은 새로운 여행지임에 분명하다.

보리의 장미정원은 내가 본 정원 중 가장 아름답다. 수많은 오월의 꽃 사이를 질주하는 곰돌이, 돌돌이. 블루, 스카이 그리고 보리가 있어 더욱 그렇다. 거기다 정원 가득한 꽃들과 다섯 마리의 동물을 돌보는 가족의 사랑이 그대로 스며들어 빛을 더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을 위한 그녀와 그의 헌신에는 끝이 없어 보인다. / 김란영

137807_164329_5806.jpg
코코어멍 김란영은 제주관광대 치위생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단짝 친구인 반려 강아지 코코를 만나 인생관이 완전 바뀌었다고 한다.           

동물의 삶을 통해 늦게나마 성장을 하고 있고, 이 세상 모든 사람과 동물이 함께 웃는 날을 희망하고 있다. 현재 이호, 소리, 지구, 사랑, 평화, 하늘, 별 등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