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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제주포럼의 문화세션 두 번째 프로그램으로 문학, 건축계 인사들이 모인 패널토크 ‘제주문화 육성 방안’가 열렸다. 이날 좌장으로 참석한 소설가 조정래(사진 가운데)는 제주자연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자원이라며 개발이 아닌 보전을 강조했다. 사진 맨 왼쪽은 소설가 김훈, 맨 오른쪽은 건축가 김원. ⓒ제주의소리
[제주포럼] 소설가 조정래 “지켜낸 제주자연, 후세들에 수만배 이익 될 것”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살인적인 만행이 용납될 수 있었던 것은 게르만 제일주의의 환상에 빠진 독일 국민 대다수가 지지했기 때문이다. 난개발로 망가지는 제주도를 이렇게 만든 것은 누구냐? 일차적으로 행정이 잘못된 일을 했지만 그런 행정을 묵인한 것은 바로 제주도민들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문호의 말은 비수처럼 날이 서 있었다. 각국의 전직 정상들과 국내외 저명인사들이 참석한 행사임을 고려하면 둥글둥글 에둘러 말할 법도 하지만,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자신의 글쓰기처럼 선 굵은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했다.

작가 조정래 선생은 나아가 “돈 몇 푼에 팔아넘기는 이 땅(제주도)을 지켜낸다면 우리의 먼 아들, 딸들이 수천·수만배의 이익을 누릴 수 있다”며 돈의 거품에 빠져있는 제주섬을 향해 경종을 울렸다.

22일 열린 제주포럼의 문화세션 두 번째 프로그램인 패널토크는 ‘제주문화 육성 방안’이란 주제를 놓고 문학, 건축 관계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진행됐다.

특별한 제주 경관에서 특별한 생활스타일과 경관계획이 비롯된다는 점을 고려해, 문학과 건축으로 제주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그렇지만 패널토크는 제주 개발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로 흘러갔다.

독특한 제주문화는 제주의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결국 제주의 환경이 망가진다면 제주문화 또한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인식을 패널 모두가 공유했기 때문이다.

참가한 패널은 소설가 조정래, 소설가 김훈, 시인 신경림, 소설가 현기영, 문학비평가 방민호, 건축가 김원, 백혜선 LH수석연구원, 민현식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석윤 김건축대표, 양건 가우건축사무소 대표 등이다.

이날 좌장을 맡은 조정래 선생은 평소 제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가장 먼저 운을 뗀 조정래는 제주개발에 대한 아쉬움을 강하게 표현하며 패널토크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는 “유연하고 섬세하고 어머니 품 같은 한라산의 줄기를 보며 지금까지 삶이 지쳤을 때 마다 활력을 얻어왔다. 그래서 100번 넘게 제주도를 방문하며 제주도를 짝사랑해왔다”고 제주와의 인연을 자랑했다.

조정래 선생은 최근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개발 광풍을 보며 깊은 애정 만큼 깊은 배신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솔직하고 거침없이 자신의 감정을 털어놨다.

그는 “그대로 있던 자연을 파괴하고 그 위에 새로 짓는 것이 발전이라는 주장은 옳지 못하다. 투자, 외화라는 이유로 중국사람들에게 땅을 팔아넘기면서 난개발하는 모습이 과연 발전이냐”고 물었다.

조정래 선생은 “(초)고층빌딩 높이를 56층에서 38층으로 낮췄다고 하는데 낮춘다고 해도 그 뒤에 가려진 한라산의 경관은 가운데가 잘린 공책 위 한라산 그림과 다름없다”며 즉석에서 수첩을 꺼내들어 그림을 그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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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제주포럼의 문화세션 두 번째 프로그램으로 문학, 건축계 인사들이 모인 패널토크 ‘제주문화 육성 방안’가 열렸다. 이날 좌장으로 참석한 소설가 조정래는 제주자연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자원이라며 개발이 아닌 보전을 강조했다. ⓒ제주의소리

또 “제주도의 신비스런 산줄기가 빌딩에 가로막힌다면 난 아마 (제주에) 발길을 끊을 것 같다”며 “나 뿐만이 아니다. 지금 같은 개발이 지속되면 제주도에 위안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오지 않는다. 이것은 제주도가 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정래 선생은 “지금 제주도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행정이 잘못했다. 그러나 잘못된 행정을 묵인한 것은 제주도민이다. 행정의 잘못과 제주도민들의 잘못이 모두 반반씩”이라고 질타했다. 

조정래 선생은 “히틀러의 살인적 만행이 용납될 수 있었던 이유는 게르만 제일주의의 환상에 빠진 독일 국민 전체가 지지했기에 가능 했었다”며 “외지사람들이 백날 와서 (자연을 지키자고) 말하면 뭐하나. 여러분의 땅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다. 선대에게 물려받아 잠시 가지고 있다가 후세들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가치”이라고 '개발 만능주의'에 빠진 도민들을 향해 사자후를 토해냈다.

특히 “지금 돈 몇 푼에 팔아넘기는 이 땅을 지켜낸다면 수천, 수만배의 이익을 우리의 후세들이 누린다는 정말 간단한 사실을 제주도민들이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조정래는 “제주가 지금 위기에 놓여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수백 년 이어온 제주만의 전통과 삶을 지켜내는 것이 앞으로 제주도가 갈 길”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대부분 패널들도 제주에 필요한 것은 개발이 아닌 보전이 무게중심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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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제주포럼의 문화세션 두 번째 프로그램으로 문학, 건축계 인사들이 모인 패널토크 ‘제주문화 육성 방안’이 열렸다. 이날 좌장으로 참석한 소설가 조정래는 제주자연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자원이라며 개발이 아닌 보전을 강조했다. ⓒ제주의소리

제주가 낳은 한국문학계의 거목, 소설가 현기영 선생도 “많은 제주도민들은 자신이 제주도를 다 안다고 생각한다. 늘 어릴 때부터 봐왔으니 그 소중한 가치를 모르는 것이고 또 훼손에도 눈감는 것”이라며 “저는 원주민 보다 이주민을 더 지지한다. 원주민들은 제주의 땅을 팔아먹을 것 같은 느낌이다. 상당수의 이주민들은 개발의 손길에 닿지 않는 자연을 원해서 내려온 것”이라고 조정래 선생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원 건축가는 “제주개발공사라는 기관이 있다면 이제는 명칭을 ‘제주보전공사’로 바꿔야 하지 않나”라며 재치 있는 말을 남겼다. 

민현식 교수는 “제주도 관광산업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낮에는 요상한 풍경이나 현란한 건물을 보고, 밤에는 카지노하는 것을 관광산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제주도는 상징적인 건물이 필요없다. 이미 제주도의 자연 자체가 특별한 상징으로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더 필요한가”라고 되물었다.

2007년 제주도경관관리계획 수립에 참여한 백혜선 연구원은 “경관계획을 세우기 위해 제주도를 수 차례 돌아보면서 느낀 점은 제주의 정체성은 수려한 자연경관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라며 “이제는 제주자연이 제주의 정체성이라는 점을 반영한 제주개발의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패널들의 발언이 끝난 뒤, 자신을 제주토박이라고 소개한 한 참석자는 "중산간 지역은 지켜야 하지만 시내권에는 관광을 위한 개발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조정래 선생은 "지금 제주에 필요한 개발은 자연과 최대한 상생하는 개발이어야 한다. 스위스나 노르웨이가 참고할 만한 모델이 될 수 있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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