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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島詩樂 산책](13) 아버지는 슬프다 / 오영호

빌딩 숲 그늘 저 편
담벽 너머 얼굴 내민

하얀 장미꽃 향기 속으로 5월 햇살 한 줌 들어와 나를 깨운다. 지난 밤 꿈속에 본 고개 숙인 우리 아버지들 출근한 삼무공원, 긴 의자에 앉아 아카시아 꽃 꿀을 따는 일벌들 노동의 날갯짓을 보면서

오늘도
고개를 못 드는
아버지는 슬프다

 / 아버지는 슬프다 - 오영호

오영호 = 『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풀잎만한 이유』, 『화산도, 오름에 오르다』, 『올레길 연가』 등이 있음. 한국시조비평문학상 수상. 제주작가회의 회장 역임.

삼무공원으로 출근하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 출근하는 게 아니라 일터를 잃어서, 집에 우두커니 있기가 그래서 출근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장미꽃 향기 만발한 삼무공원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삼무공원에는 긴 의자에 앉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고개 숙인 아버지들이 한둘이 아닌가 봅니다.
때마침 아카시아 꽃에서 꿀을 따는 일벌들이 눈에 밟힙니다. 숭고한 노동의 날갯짓입니다.
아, 일을 하고 싶은데 일을 할 데가 없습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집으로 가는 길, 오늘도 아버지는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발걸음이 참 무겁습니다.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오영호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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