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어멍 동물愛談] (11) 누렁이, 그 녀석이 사라졌다.

반려동물을 만나 인생관이 바뀐 사람. 바로 코코어멍 김란영 교수입니다. 그는 제주관광대 치위생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운명처럼 만난 '코코'라는 강아지를 통해 반려동물의 의미를 알게됐답니다. 일상에서 깨닫고 느낀 사랑스러운 반려동물 이야기를 코코어멍이 <제주의소리>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옆집에는 두 마리 개가 있다. 모두 누렁이로 이름이 없다. 한 마리는 내가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있었고, 다른 아이는 이사 와서 한 달이 될 때 그 집으로 왔다. 하루 종일 낑낑거리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아주 조그만 강아지였다. 오일장에서 아무도 사가지 않아 남는다며 옆집 할머니께 주셨다고 한다. 엄마 품을 일찍 떠난 강아지는 하루 종일 엄마만 찾는 눈치다. 

큰 누렁이는 집 안쪽에 줄이 짧게, 작은 누렁이는 마당 입구에 묶여 있다. 큰 누렁이는 묶여있는 줄이 너무 짧아 고개만 빼쭉 내밀어 간신히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한다. 작은 누렁이는 쇠사슬로 된 목줄에 질끈 감겨있다.

큰 누렁이를 가까이에서 본 건 할머니가 추석을 지내기 위해 시내로 가실 때였다. 아들집에서 제사를 지내시는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큰 누렁이에게 줄 음식을 챙겨 집 안쪽으로 슬그머니 가보니 배고픔에 목소리가 갈라지며 정신없이 음식을 먹는다.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보며 딱 한번 머리를 쓸어주었을 뿐이다.

그날 이후로 그 집을 지나칠 때면 꼬리를 살랑거리며 반가운 인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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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코어멍 동물애담’ 두 번째 글 ‘내 이웃집 개들’에 소개되었던 하늘이. 어느새 훌쩍 자라 의젓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건 내 평상이라고! 내려오라고!”. 딴청이다. /사진=김란영 ⓒ 제주의소리

그 누렁이들 때문에 마을 리사무소 사무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옆집 강아지들을 안 봤으면 모르겠는데 보고나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내용인 즉, 집 안쪽 큰 누렁이를 작은 누렁이 자리로 옮기게 하고, 작은 누렁이를 사무장이 데리고 오면 내가 새로운 가족을 찾아 보내겠다고 했다.

직접 말씀드리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옆집 할머니와는 대면 대면한 사이다. 강아지 때문에 댁으로 찾아갔던 게 맘이 상하셨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나의 잘못이기도 하다.

대뜸 털어놓는,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을 사무장은 진심으로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어느 집인지 상황을 조심히 살피더니 같이 걱정을 하며 적극 도와주겠다고 한다. 이 댁 할머니와는 잘 지내고 있다며 본인 말은 잘 들어 줄 거라 한다. 일이 잘 마무리될 수 있게 나름 시나리오를 짜며 서로 확인까지 했다. 

며칠 뒤 노인정 모임이 있어 할머니께 말씀드리니 안 된다고 한다며 문자가 왔다. 그 후 또 다른 모임에서 다른 방식으로 부드럽게 말을 붙여도 맘을 바꾸지 않는다며 속상한 문자를 보낸다.

그 사이 작은 누렁이가 걱정되어 할머니가 안 계실 때 목줄을 바꿨다고 사무장께 문자를 보냈더니 할머니가 아시면 큰일이라며 걱정한다. 일단 아이는 살리고 봐야할 게 아니냐며,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작은 누렁이가 자라면서 쇠줄이 살 속으로 파고들 상황이었다.

다행히 이 작은 사건은 조용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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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문으로 불쑥 고개를 내미는 도야, 용이. 쌍둥이처럼 닮아도 성격은 완전 딴판이다. 도야는 천방지축, 용이는 차분하다. 녀석들 오늘은 얼마나 말썽을 부렸을까? 부족한 인내심을 시험한다. /사진=김란영 ⓒ 제주의소리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전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줄이야. 큰 누렁이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 아침, 저녁으로 동네를 배회하는 그 트럭?

트럭 안 확성기에서 나오는 그 소리가 저만치 아련히 들릴 때부터 녀석들은 모두 일제히 울부짖는다. 우리 집만 아니라 옆집 또 그 옆집 온 마을 개들이 울부짖는다. 그 소리가 미처 내 귀에 닿기도 전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강아지들을 집안으로 모두 몰아넣기 바쁘다. 조용히 안한다면 화만 낸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큰 누렁이의 우렁찬 목소리를 싫어하는 할머니가 행여 어떻게 하실까, 차가 지나갈 때 그 집 앞에서 소리가 멈추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이었다.

기억하기 싫은 며칠 전 아침이다. 그날따라 큰 누렁이가 조용했다. 그 소리에 덩달아 소리를 내어 할머니께 매일 혼나던 녀석이 어째 그러나 싶었다. 싸늘한 침묵만이 흘러간다. 잠시 멈추었던 확성기 소리가 다시 들린다. 너무 조용해서 차가 멈추다 그냥 지나가나보다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온 동네 목소리를 자랑하던 녀석의 목소리가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 내 품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는 ‘코코어멍 동물애담’ 첫 번째 이야기에 소개되었던 ‘소리’. 지난 4월 내가 손닿을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갔다. 치료도 약도 마지막으로 했던 수혈도 모두 허사였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날 기다려줘, 나의 아름다웠던 소리.(아쉽게도 옆집 아이들 사진이 없다. 큰 누렁이가 아픔 없는 자유로운 곳으로 가길 모든 신께 기도를 감히 드려본다). /사진=김란영 ⓒ 제주의소리

누군가에 묻고 싶지도 않지만 답을 해줄 사람이 없다. 망연자실이다. 더 가까이 가지 못했던, 굼뜨며 게으른 나를 원망할 뿐이다. 반가움에 환한 웃음을 짓던 큰 누렁이가 유난히 조용한 그날, 할머니를 배려하듯 어쩌면 그렇게 얌전히 팔려가다니.

확성기 너머로 온 동네를 비집고 들려오는, 말하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숨도 쉬고 싶지도 않는 그 소리 “큰 개 삽니다, 작은 개 삽니다.”

트럭마저 마지못해 터덜거린다.  / 김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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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어멍 김란영은 제주관광대 치위생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단짝 친구인 반려 강아지 코코를 만나 인생관이 완전 바뀌었다고 한다.           

동물의 삶을 통해 늦게나마 성장을 하고 있고, 이 세상 모든 사람과 동물이 함께 웃는 날을 희망하고 있다. 현재 이호, 소리, 지구, 사랑, 평화, 하늘, 별 등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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