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가 봅주] ② 한중일 3국 장애인미술전시회...지적장애인 독특한 작품 '눈길'

‘제주가 과연 문화예술의 섬인가?’ 이런 질문에 선뜻 동의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삶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기에 문화예술은 생존 다음의 문제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금언처럼 문화예술의 섬으로 가는 첫 번째 발걸음은 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더욱 가깝게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개개인의 일상에서 문화가 더 이상 ‘큰 맘 먹고 하는 존재’가 되지 않을 때 제주도는 문화예술의 섬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제주의소리]는 누구나 환영하는 유명 공연뿐만 아니라 소소하지만 그만의 매력을 간직한 공연, 전시를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한다. 먼저 행사를 직접 경험하고 난 뒤 소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문화적 소양이 깊지 않은 문화부 기자의 솔직담백하면서 쉬운 설명을 덧붙인다는 것은 두 번째 원칙이다. [한번 가 봅주]는 '(이 공연·전시) 한 번 가보자'는 의미다. <편집자주>


‘장애는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입니다.’ 종종 들리는 말이지만, 과연 실생활 속에서 우리가 장애를 얼마큼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지 되물어본다면 누구나 떳떳하기 힘들 것이다.

장애인들이 느끼는 차별, 제약 가운데는 문화예술도 포함돼 있다. 솔직히 기본적인 생활권마저도 위협받는 장애인들이 적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에게 문화예술은 가까이 하기에는 아직 먼 이야기다.

이런 배경을 고려할 때 ‘장애인미술’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신체를 구속하는 수많은 제약을 딛고서 예술성을 구현하는 가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흔히 만나볼 수 없는 장애인미술, 그것도 한국·중국·일본 동아시아 3국의 작품이 제주에 왔다.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미술협회가 주최·주관하는 ‘제6회 한·중·일 장애인 미술(書畵) 교류전’이 23일부터 28일까지 제주 신산갤러리에서 열린다. 신산갤러리는 제주시 신산공원 옆 제주도영상미디어센터 안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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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회 한중일 장애인미술 교류전'이 28일까지 제주 신산갤러리에서 열린다. ⓒ제주의소리
같은 듯 분명하게 다른 세 나라의 개성처럼 신기하게 한·중·일 장애인 그림도 차이를 보인다.

대륙의 스케일을 느낄 수 있는 수묵 작품이 다수인 중국, 아기자기한 캐릭터 그림이 눈에 띄는 일본, 두 가지 느낌을 반반 섞어 놓은 것 같은 한국. 우연인지는 몰라도 세 나라의 일반적인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신기하다.

그러나 기자의 눈이 가장 길게 남은 자리는 바로 지적장애인 미술작품이었다.

전시 작품 가운데는 일반인 작가 못지않은 뛰어난 실력으로 보는 이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작품들이 다수 있다. 그 중에는 지체장애인 작가들의 작품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사실 지체장애인 작가는 특정 신체 부위가 불편할 뿐, 생각은 일반인과 동일하다. 신체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열정이 뒷받침된다면 좋은 교육과 수련으로 뛰어난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

그러나 기자가 주목한 것은 지적장애, 자폐 등 정신적인 부분에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다. 장애를 가진 부위가 몸이 아닌 머리라는 사실에서 지적장애인 작가 작품은 통념을 벗어나는 무언가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실제 미술계에서는 ‘지적장애인 미술작품 분야’를 아르브뤼(Art Brut)라는 별도의 용어로 부르고 있다. 유럽, 미국, 일본 등 미술 선진국에서는 이미 엄연한 장르의 하나로 인정받아 전용미술관이 건립되는 등 활발히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초현실주의나 추상주의를 넘어서는 독특한 예술성, 경쟁력 있는 작가 수가 한정적인 희귀성은 정신장애인 미술만이 가지는 매력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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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장애 2급 손재현 어린이의 <반지와 빼롱이> 작품. 어지러울 만큼 다양한 색이 인상적이다. ⓒ제주의소리
참고로 한국 아르브뤼에 대해 알고 싶다면 김통원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지은 책 ‘Korea Art Brut’를 통해 더 확인할 수 있다. 김통원 교수는 국내 첫 아르브뤼 미술관을 제주 서귀포에 마련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번 한중일 장애인미술 교류전에도 지적장애인 작품이 다수 출품됐다. 그들의 작품은 숫자로만 보면 일본이 가장 많고, 한국과 중국은 대동소이하게 많지 않았다. 미술 시장의 크기를 짐작하게 한다.

지적장애인 미술은 특별히 공통점을 찾기 힘들지만 ‘반복’라는 코드는 존재한다. 동일한 모양, 동일한 색깔, 동일한 크기로 반복해서 그림을 채워나가는 모습이다. 여기에 반복하는 구성마다 조금씩 차이를 두면서 독특한 매력이 탄생한다.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Tadashi Ueda’의 작품 <Dog race>를 보면 동일한 크기, 모양의 경주개가 캔버스를 가득 채우지만 같은 색은 하나도 없다. 신기하게도 눈, 몸통 색을 전부 다르게 그려 넣어 결국은 모두 다른 캐릭터다.

지적장애 2급인 손재현 군의 작품 <반지와 빼롱이>도 작은 색칠이 어지러울 만큼 반복하고 있다. 옷은 모두 다르지만 눈, 코, 입이 똑같은 여성을 그린 지적장애·자폐증 작가 ‘Yasuyuki Ueno’의 <Party> 또한 유사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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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장애·자폐증 작가 ‘Yasuyuki Ueno’의 작품 <Party>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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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장애인 'Daichi Okamoto'의 작품 <Isu-Kun>. 색칠한 종이를 얼기설기 잘라 붙였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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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장애를 가진 'Ryuhei Shibata'의 작품 <The box of passing time>. 검은색 상자에 빼곡히 글씨가 적혀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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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색칠을 반복하며 배경을 채운 <반지와 빼롱이>. ⓒ제주의소리
여기에 촘촘한 검은색 플라스틱 메쉬(Mesh) 판에 흰 색 천을 끼워 넣은 지적장애인 ‘Kohei Obara’의 <White ship>, 상반되는 움직임을 보인 두 고양이를 그린 자폐증 작가 ‘XiaoJingkang’의 <Playful cat>까지, 지적장애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속된 말로 ‘대체 뭘 그리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온다.

다만 그런 아리송한 점이 바로 지적장애인 미술작품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와~’하고 감탄이 나오게 하는 그림도 좋지만, ‘이게 뭐야’라는 말로 몇 번을 다시 보게 하면서 끝까지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드는 작품도 나름의 즐거움을 주지 않을까? 특히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왔구나’라고 바라보면 조금은 더 편하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평범하고 밋밋한 느낌을 깨고 싶다면 정신장애인 미술작품이 조금이나마 바람을 채워줄 것이다.

제6회 한·중·일 장애인 미술교류전은 28일까지 열린다. 쾌청한 날씨에 신산공원 산책도 하면서 주말 동안 새로움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전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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