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17) 농부의 마음으로 자식을 키운다면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우리 아이를 잡아 주세요

남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학부모들과 아이들 문제로 통화하는 일이 많습니다. 부모님들께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우리 아이를 잡아 주세요”입니다. 아이가 공부를 안 하니 앉아서 공부를 할 수 있게 엄하게 교육시키라는 요구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큰 딜레마입니다. 아이는 통제를 받을수록 통제받는 습관이 몸에 뱁니다. 누군가의 통제를 받으니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할 가능성도 낮아집니다. 실로 많은 아이들이 ‘나는 꿈이 없어요’라고 대답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고유한 욕구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어른에게 통제는 각성제처럼 매혹적입니다. 어른이 아이들을 통제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드는 것은 관리하기가 편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떠들거나 버릇없이 굴 때마다 엄하게 꾸짖거나 위협을 하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집니다. 어른들은 그것이 ‘좋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그것은 자율성이 억제된 상태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길러진 아이가 언제 어디서 자율성을 찾고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어른 중심적이고 ‘손쉬운 방법’에 해당합니다.

저는 어렵고 힘들지만 다른 길을 가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불만이나 생각을 듣고 대화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협의를 통해서 정합니다. 최소한 아이들이 ‘선’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면 혼내더라도 자신이 혼나는 이유를 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으름장을 넣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별별 생각이 다 떠오릅니다.

때로는 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밖으로 나가서 몇 분 동안 얼굴만 쳐다보고 오는 일도 있고, 한 아이의 손을 잡고 2~3분 정도 걷다가 오기도 했습니다. 그냥 눈을 바라보기도 하고, ‘아이고 예뻐’ ‘큰 인물 되겠네’ 하면서 쓰다듬기도 했습니다. 이런 방법들은 번번이 아이들의 벽에 부딪힙니다. 저는 그때마다 좌절감을 느끼지만 아이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도 ‘문법’이라는 게 있죠. 아이들 문법을 익히면서 좋은 방법을 고안했을 때 공부를 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한 예로 동영상 강의 듣기 대회를 열어서 마치 게임하듯 룰을 정하고 상품을 걸었더니 집에 가서도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게임’이나 ‘놀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문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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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식물과 같아요

공자의 조국인 노나라의 실세인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 자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도한 자들을 죽임으로써 정의를 회복하려고 하는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공자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은 정치를 한다면서 어찌 ‘사형’이라는 도구를 쓰려고 하시나요? 당신이 선한 정치를 하려고 애를 쓰면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선한 자질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지도자의 덕성은 바람과 같고 피지배자의 덕성은 풀과 같습니다. 바람이 나부끼면 풀은 반드시 눕기 마련입니다.
- <논어>, 안연 편

‘선한 정치를 하려고 하면’이라는 말에 주의해 주십시오. 선한 정치를 실현시키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어 하고, 애태우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아이들 한명 한명이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조그맣지만 점점 자라나 세상을 뒤덮을 에너지를 잘 키워내는 것이 어른의 사명이라면, 어른이 보기 좋게 하려고 안달하는 것만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수영의 시 「풀」에 나타난 유명한 시어 “풀이 눕는다”는 공자와 맹자를 거쳐 온 삼천 년의 지혜가 담긴 삶의 문법입니다. 육아, 교육, 정치 모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식물과 같습니다. 들들 볶아봤자 생각보다 많이 자라지 않지만 꾸준히 물주고 관리를 해주면 어느새 아름답게 자라는 게 아이들입니다. 책을 읽다가 아이들이 ‘식물’과 같다는 비유를 발견했을 때 저는 『맹자』의 ‘조장(助長)’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어리석은 농부가 자신의 밭에 심은 모가 이웃 밭의 모보다 길게 자라지 않자 일일이 손으로 뽑아냈습니다. 그랬더니 당장 이웃 밭의 모보다 키가 커졌습니다. 뿌듯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 아들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자랑했더니 이 말을 들은 아들이 깜짝 놀라 밭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밭에 심은 모들은 모두 말라 죽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식물과 같다는 비유는 아이를 키우는 저에게 빛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이 말을 잊지 마세요. 부모는 식물을 키우는 농부입니다. 농부의 마음으로 자식을 키운다면 자식농사를 망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부책]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

격주 간격으로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을 게재합니다. 특히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은 부모님들은 꼬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권 한 권 만지작거려봅니다. [글쓴이 주]

2. 『말하는 나무』의 경고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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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원작 | 조은수 (글) 조은수 (그림) | 문학동네어린이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집에 사는 거인이 있었습니다. 거인은 자기 집에 놀러 온 아이들이 시끄럽다며 쫓아냈습니다. 그 후 수백 년 동안 발길이 끊겨 거인은 말하는 나무가 되어 버렸습니다. <말하는 나무>는 자기중심적인 부모에게 경고하는 그림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을 감히 어른 중심적으로 키운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힘이 세다는 건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하는 반응 중 가장 두려운 것은 입을 닫고, 마음의 문을 닫는 것입니다. 그것은 크게 보면 미래와 현재가 서로 등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dajak97@hanmail.net 앞으로 육아고민을 보내주세요. 자녀와 본인의 나이와 성별을 써주시면 가명으로 처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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