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제' 원칙깨고 다수결로 출자.출연기관 결정...일부 이사 '사퇴' 갈등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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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평화재단 이사회가 출자.출연기관 전환 문제로 끝내 두 조각이 났다.

화해와 상생의 정신을 강조하며 ‘합의제’로 결론을 도출해 온 원칙이 깨지고,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하면서 일부 이사들이 사퇴하는 불미스런 일도 벌어졌다.

제주4.3평화재단은 2일 오후3시 재단 4층 회의실에서 제58차 이사회를 개최, 재단의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 지정(안)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이날 이사회는 당연직 이사인 권영수 제주도 행정부지사를 제외하고 이문교 이사장, 임문철 신부, 고호성 교수, 오영훈 전 의원, 김동윤 교수, 김종민.양정심 이사 등 12명이 참석했다.

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 지정은 이사회에서만 3번째 다뤄지는 안건이었다. 그동안 평화재단 ‘독립성’ 문제로 쉽게 합의를 보지 못했다.

이날 이사회도 3시간 동안 격론을 벌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문교 이사장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고, 결론은 표결로 가려졌다. 결국 7대 4로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 전환을 결정했다.

4.3평화재단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에 근거해 4.3의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인권신장을 도모하기 위해 2008년 출범한 공익 법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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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평화재단이 2일 오후 재단 4층 회의실에서 제58차 이사회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4.3단체들 중심으로 발기인을 꾸렸고, 중앙정부의 예산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4.3특별법 제8조 2항(제주4.3관련 재단에의 출연)을 재단 기금출연 근거로 삼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2014년 9월25일 제정한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 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불거졌다. 평화재단을 출자․출연기관으로 지정고시하기 위한 움직임 탓이다

출자․출연기관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설립한다는 단서조항이 있다. 평화재단은 민간에서 발족해 법률상 출연기관이 아니다. 때문에 평화재단은 별도의 관리주체가 없다.

현행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 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2조(적용 대상 등)에는 ‘이 법은 지자체가 설립하고 제5조에 따라 지정.고시된 출자기관에 적용한다’고 규정돼 있다.

제주도는 4.3평화재단을 출자.출연기관으로 지정하려고 재단측에 유, 무형의 압박을 가해왔다. 

재단이 출자․출연기관으로 지정되면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 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아 임원을 공개 채용하고 경영평가도 받아야 한다.

평화재단이 출자.출연기관으로 지정고시가 되면 재단은 제주도에 의해 인사권과 독립성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도청 산하기관으로 취급돼 독립성을 완전히 잃게 된다는 우려도 있다.

이날 이사회에서도 ‘독립성’ 문제가 집중 부각됐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표결로 결론을 내기리로 했다.

문제는 평화재단 이사회는 그동안 단 한차례도 다수결에 의해 의사결정을 내린 적이 없다. 화해와 상생이라는 4.3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합의’ 방식을 취해왔다.

이문교 이사장은 “4.3평화재단 운영에 대한 독립성 문제는 우리가 안을 만들어서 요청하기로 했다. 지사님 면담했을 때에도 조례 제정을 통해서도 재단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했다”며 “이사회에서 적극적인 찬성을 통해서 재단 운영에 대한 어려움 해결하기 위해 제주도 출연 기관이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회의가 끝난 후 재단의 ‘합의제’ 원칙을 깼다는 지적에 대해 “안건이 중요한데 반대 의견이 있었고,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표결로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출자.출연기관이 되면 독립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이 이사장은 “독립성은 보장받을 것”이라며 “다른 공기업안 출자.출연기관 단체장은 자치단체장과 성과계약을 체결하는데 평화재단 이사장만 안해 왔다.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출자.출연기관 지정 다수결 표결의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다. 김동윤 교수는 “오늘 이사회가 재단 독립성을 포기했다”며 재단 이사직을 내던졌다.

몇몇 이사는 이사장이 독단적으로 결론을 유도했다고 울분을 토로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4.3평화재단이 운영비를 보조받기 위해 ‘독립성’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결정으로 앞으로 상당기간 후유증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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