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㉘>

제주 신화 ‘가믄장아기’에 등장하는 아기는 셋째 딸이다. 첫째, 둘째 딸은 부모를 배신하지만 셋째는 효도한다. 나중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 탄생한 영국의 ‘리어王’ 전설은 셋째 딸 코오델리아만 끝까지 아버질 배반하지 않고 효도하는 이야기다.

우리 속담에 “셋째 딸은 선도 보지 않고 며느리로 데려간다”는 말이 있다. 셋째 딸을 며느리로 맞이한 시부모는 복덩이가 굴러왔다고 희희낙락한다. 조영남의 노래도 ‘최진사댁 셋째 딸’이다.

왜 셋째 딸이 이처럼 주목받는가? ‘일반화의 오류’란 게 있다. 특수한 것을 일반화하는 잘못이다. 그러나 설화와 속담과 대중가요는 시대와 삶의 징후(쉽게 말해 당대 민중들의 생각)를 반영한다. 따라서 ‘셋째 딸 신드롬’은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딸만 그런가? 아들도 셋째가 효도하고 성공한 사례가 많다. 역사상 가장 많은 숭배자를 거느린 한국사의 간판 스타요, 아이콘이자 아이돌인 세종대왕도 셋째(양녕, 효녕, 충녕), 이순신 장군도 셋째(희신, 요신, 순신)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이건 아마도 미래의 유전학이나 분자생물학이 해명해 줄지도 모른다. 필자의 추론은 이렇다. 젊은 부부가 갓 결혼하면 매일매일이 ‘불타는 밤’이다. 정자와 난자가 가장 활발한 운동을 하는 때이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섹스에 탐닉하다보니 첫째는 부모의 이런 기질을 물려받아 활달하고 진취적인 기상을 타고난다. 둘째는 부모의 열정이 희석된 상황(의무방어전)에서 나오니 명상적이거나 은둔자적 성격을 갖게 된다. 셋째를 낳을 때쯤 부모의 나이는 대략 30대 중반~40대 초반인데, 정신적 육체적 성숙의 단계에 접어들면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알고 방사(房事) 테크닉은 숙련공의 경지에 이르러 명품(?)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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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 제주의소리
비유컨대 셋째는 부모가 철 들 무렵의 생산품이요, 경험과 기량을 갖춘 성숙기의 제품이다. 그래서 삼 세 번, 곧 셋째에 걸출한 인물이 많은 것이다. 이상의 진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첫째는 호방·담대하고, 둘째는 온순·심약하며, 셋째는 명석·철저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는 기질상의 경향을 나타내는 말이고 필자의 유추일 뿐,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거나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언젠가 과학이 이처럼 놀라운 생명의 신비를 풀어줄 때까지 우리는 이런 현상을 신의 섭리라거나, 팔자라거나, ‘DNA의 축복’이라고 명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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