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주 신당 사진집 '스피릿츠' 발간, 미국인 조이 로시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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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 가믄장, 백주또 중에 누가 제일 좋아요?” 기자에게 날아든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매혹적인 자청비와 믿음직한 가믄장, 똑 부러진 백주또까지 제주의 신을 줄줄 꿰는 미국인이라니. 미국 테네시주 내쉬빌에서 온 조이 로시타노(Joey Rositano·38)의 이야기다.

그가 제주에 온 것은 9년 전. 한국의 친구에게 제주의 신당 이야기에 대해 듣고 이내 빠져들고 말았다. 마을 주민들이 때마다 신당을 찾아 치성을 드린다는 사실에 놀랐다. 4년 전부터 홀린 듯이 제주의 신당을 찾아다녔다. 지난 4년 동안 그가 다닌 곳은 송당본향당, 월정본향당, 내도본향당(두리빌레), 상귀리궤당, 토산리본향당 등 100군데에 달한다.

어떻게 알고 찾아다녔냐고? 무작정 다녔단다. 마을당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은 대체로 오소록(구석진)한 터라 정확한 주소도 없다. 동네 주민들에게 묻기를 거듭하며 찾아다녔다. 이렇다보니 허탕을 치는 일도 다반사다. 낯선 미국인을 기특하게 여긴 동네 어르신들의 초대를 받기도 한다. 옛날이야기를 듣노라면 한나절이 훌쩍 간다.

제주의 마을과 신당 탐방을 다닐 때마다 차곡차곡 기록을 남겨두었다. 처음엔 그저 흥미에 이끌려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심방이 남아있어 그나마 예전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신당이 있는가하면 개발 논리에 밀려 처참하게 방치돼 있는 곳도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4년 동안 틈틈이 완성도를 높인 작품 <신들의 세상; 조이가 매료된 제주 신당 이야기>는 제주여성영화제 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선보이곤 했다. 장르의 특성상 더 많은 이야기를 보여줄 수 없어 고민하다가 사진집을 떠올리게 됐다.

그 동안 촬영해놓은 1만 장의 사진 가운데 220장을 골라 풀 컬러로 사진집에 실었다. <스피릿츠>라 이름 붙인 이 사진집에는 제주시 오등동의 설새밋당 훼손 사건을 두고 지역의 청년들과 의기투합해 복원 프로젝트를 벌였던 이야기도 담겨있다. 그의 눈에 비친 제주의 참모습이다.  

오는 4일 제주시 삼도2동에 위치한 아트세닉에서 사진집 출간을 기념한 행사와 더불어 제주 곳곳을 다니며 순회 전시도 선보일 예정이다.  

다음은 조이 로시타노와의 1문1답.

- 어쩌다가 제주의 신당에 푹 빠지게 됐나?
: 6년 전이었다. 한국 친구들이랑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냥 재미있는 주제로. 제주도의 귀신 이야기를 다루려고 알아보다가 내도동 본향당에 대해 조사하게 됐다. 한국 친구들은 동네 주민들에게 물어봐도 신당본풀이를 까먹었을 거라고 말했다. 예상과 다르게 내도동 주민들은 많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들려주었다. 무속신앙이 여전히 일상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에 빠져들었다.

- 어떻게 제주 신화와 신당에 대해 공부했나?
: 현장 연구가 먼저다. 마을을 다니면서 만나는 주민들에게 먼저 물어보고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다. 그 다음에 돌아와서 자료를 찾아본다. 진성기, 문무병, 현용준, 하순애 등 제주의 학자들이 낸 책들을 읽으면서 사실 관계를 파악해 나갔다.

- 제주 신화를 접하면서 무엇이 달라졌나?
: 나는 원래 무신론자에 가까웠다. 이제는 종교나 신앙이라는 걸 믿게 됐다. 제주 신화의 줄거리가 인간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처음엔 지역에 있는 학자들이 나를 비난했다. 내가 뭘 모른다고. 이제야 막 시작했으니 맞는 이야기였다. 요즘엔 심방과 학자들이 다르게 보게 보기 시작한 것 같다. 최근에 기회가 생겨서 제주의 청소년들에게 제주 신당에 대해 교육하는 시간도 가졌는데. 이렇게 훌륭한 제주 신화를 교육으로 전승하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 이번 사진집에는 그 동안 찍은 1만 장의 사진 가운데서 220장을 골랐다. 어떤 기준으로 고른 사진들인가?
: 마을마다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와산본향당은 4.3이야기 때문에 선택했다. 게다가 이곳은 아름다운 신화를 가지고 있다. 설새밋당은 제주의 상징이라고 생각해서 넣게 됐다. 또 심방이 남아있는 마을과 사라진 마을을 비교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마을에 심방이 남아있으면 당을 잘 보호하고 있고 여전히 많은 행사를 치른다. 송당본향당처럼 유명한 신당은 잘 보호돼있다. 반대로 협재본향당은 단골이 다섯명 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런 곳은 앞으로 점점 더 지키기 힘들어질 것이다. 내도동에는 이제 3명의 해녀만 남아있다. 이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해신당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보면 그런 일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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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훼손된 제주시 오등동의 설새밋당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벌이기도 했다. 설새밋당에 대해 자세히 말해 달라.
: 설새밋당은 제주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제주의 4.3 이야기부터 제주의 개발 문제와 종교 간의 갈등을 모두 다 보여주고 있다. 지난 2월에 설새밋당 되세우기 프로젝트를 하고 난 뒤에도 다시 사람들이 찾아와 신목을 자르고 촛대도 깨뜨렸다. 사람이 찾지 않으니 풀도 많이 자라서 신당 같지 않다. 게다가 주변 지역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오고 있어 없어질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제주의 사람들이 꼭 움직여야한다.

- 가장 마음이 가는 신을 소개한다면.
: 제주의 신중에 유일하게 할망이나 하르방이 아닌 신을 소개하고 싶다. 신천리 현씨는 소녀다. 300년 전 이 마을에 살았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양반의 딸로 태어나 무병을 앓는 현씨를 가엾게 여긴 두 오빠가 육지에 무복을 사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죽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현씨도 오빠들을 따라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현씨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믿음이 대단하다. 예전엔 일본에 물질하러 원정가는 해녀들이 꼭 기도를 드리곤 했다. 오늘날까지도 2년에 한번씩 해녀들이 옷을 지어서 신목에 거는 풍습이 있다. 이 때에는 제주시에 나와 사는 사람들도 마을로 돌아간다. 그 광경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다. 물론 이번에 발간한 사진집에도 실려있다.

-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
: 책을 내면서 제주 안팎에서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이미 구매하려고 예약한 사람도 여럿 있다. 4일에는 출간을 기념한 파티를 열어 많은 분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사진집 판매와 더불어 제주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깜짝 전시도 계획하고 있다. 새로운 다큐멘터리 작업도 구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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