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4.3재단 출자·출연기관 논란] ⓵ "독립성 훼손" vs "관리감독 당연"

제주4.3평화재단이 설립 8년만에 내분에 휩싸였다. 이사회에서 제주도 출자·출연기관 지정 안건을 통과시킨게 결정적 발단이다. 4.3평화재단은 4.3특별법에 따라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 4.3사업 총괄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지녔다. 하지만 출자·출연법 제정에 따라 이사회에서 도 산하기관으로 지정을 요청하면서 위상 변화 등에 있어서 중대 국면을 맞았다. 독립성 훼손, 정치적 외풍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국민 세금을 운영비로 받기 때문에 제주도의 관리감독을 받는게 당연하다는 논리도 있다. 4.3평화재단의 출자·출연기관 지정을 둘러싼 논란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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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평화기념관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4.3평화재단이 논란 끝에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 지정 안건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사회 안건 처리 과정에서 2008년 재단 설립 이후 줄곧 유지됐던 '합의제' 원칙이 깨졌고, 독립성 훼손을 우려한 일부 이사가 사퇴하는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4.3평화재단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지난 2008년 10월16일 설립된 공익적 목적의 법인이다. 

재단은 제주4.3평화기념관 및 평화공원을 운영관리하고, 4.3사건의 추가 진상조사와 추모사업,유족복지사업, 문화 학술사업, 국제평화교류사업, 그리고 행정기관이 위임 또는 위탁하는 사업을 집행하는 사실상 제주4.3사업을 총괄하는 기구다.

재단 기금은 당초 정부가 제주도민에 대한 집단적 보상금 형태로 500억원을 기부금 형식으로 출연키로 했지만, 예산 문제를 들며 대신 500억원의 이자 형태로 매년 20억원만 지원하고 있다. 

제주도 역시 재단에 기금으로 3억원을 출연하고, 운영비와 위탁사업비 등으로 매년 10억원 이상 보조해왔다.

4.3평화재단의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 지정에 대한 논의는 2013년까지 전혀 없었다. 지난해 9월25일 제정된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불거졌다.

이 법에 따르면 자치단체는 출자·출연기관이 아닌 곳에는 예산을 전혀 지원해서는 안된다. 제주도는 이 법을 근거로 2016년부터 운영비를 지원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문제는 평화재단이 제주도 출자·출연기관이 될 경우 독립성이 훼손되고, 이사 선임권도 도지사가 갖게 돼 정치적 외풍에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제주도 산하 공기업과 출자·출연기관은 도지사가 바뀔 때마다 수장이 교체되는 등 어김없이 외풍을 탔다. 정치적 중립성은 기대 조차 할 수 없었다.  

전임 우근민 도정에서도 마찬가지였고, 현 원희룡 지사 역시 출자·출연기관장과 공기업 사장에 대해 일괄사표를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 지정을 밀어붙인 이문교 이사장은 무사했다.

일괄사표 제출을 요구받을 당시 이 이사장은 "4.3평화재단은 정부 출자기관으로 이사회에서 이사장을 선출하기 때문에 도지사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버텼다. 

하지만 이제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으로 지정 고시되면 4.3평화재단 이사장 역시 도지사가 사표를 요구하면 버틸 재간이 없다. 

또한 이사회 역시 도정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워질 수 있다. 현재 4.3평화재단 이사진은  4.3단체와 유족, 4.3진상규명에 앞장서 온 명망가들 중심으로 구성됐지만 출자·출연기관으로 지정되면 형식적으로 공모 절차를 밟는다 해도 제주도의 입김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지방 출자·출연기관법에 근거해 경영실적 평가와 품위 손상 등의 이유로 도지사가 임직원을 해임할 수 있다. 

4.3단체와 시민사회가 평화재단의 출자·출연기관 지정에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들이다. 

양정심 평화재단 이사는 "4.3평화재단은 특별법을 통해 만들어진 정부차원의 공익적 기관"이라며 "이대로 출자·출연기관으로 고시되면 재단은 도 산하기관으로 돼 앞으로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국가차원에서 할 수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양 이사는 "운영비를 지원한다고 무조건 출자·출연기관으로 들어오라는 건 4.3 정신을 훼손시키는 것"이라며 "제주도 스스로 4.3평화재단의 역할을 묶어버리는 이상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당 제주도당 역시 "화해와 상생의 평화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각고의 노력 끝에 어렵게 설립된 4.3평화재단은 도민 전체를 아우르는 독립적인 공익법인으로 유지돼야 마땅하다”며 “도지사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산하기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제주도 관계자는 "출자·출연법 제정에 따라 4.3평화재단의 경우 고시가 안될 경우 운영비를 줄 수 없고, 사업비는 줄 수 있는 데 공모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평화재단이 출자·출연기관으로 들어와도 재단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하겠다는 게 지사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평화재단 운영비는 솔직히 도민 세금으로 나가는 것이니 만큼 당연히 관리감독을 받아야 하는 게 맞다"며 "일부 이사들은 지나친 이상론에 사로 잡혀 있는데 현실에 맞춰야 한다"고 출자·출연기관 지정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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