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내 원도심 최대 상권으로 꼽히는 중앙지하상가를 두고 말들이 많다. 제주시는 안전을 이유로 올해 말부터 지하상가의 대대적인 개·보수에 돌입할 예정이고, 상인들은 여기에 숨은 의도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갈등의 배경으로 지목된 ‘전대’(轉貸) 문제를 놓고도 말이 무성하다. <제주의소리>는 현재 지하상가를 둘러싼 논란을 짚어보고, 다른 지자체의 사례를 통해 합리적인 해결책은 없는지 찾아보려고 인천, 서울, 대전, 창원, 부산 등 전국 주요 지하상가 현지 취재에 나섰다. [편집자 주]

▲ 12일 오전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비교적 이른 일요일 아침 시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 제주의소리

[제주지하상가 논란, 해법은?] ③ 대전 중앙로 vs 역전 지하상가…“자율권” 차이

대전시 중앙로지하상가는 충청권을 대표할만한 ‘잘되는’ 지하상가로 꼽힌다. 1일 평균 유동인구는 5만명 남짓. 주말에는 하루 10만명에 이른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을 위해 꼭 거쳐 가는 유명 상가다. 2008년 전국우수시장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경력도 있다.

길이 1014m, 면적 4만737㎡ 규모에 601개 매장으로 구성된 대전시 중앙로지하상가는 1990년 1단계 1구간을 시작으로, 1991년 1단계 2구간, 1994년 3단계 구간이 준공됐다. 길게는 25년, 짧게는 20년을 넘기고 있다.

이곳의 특징도 부평역지하상가와 마찬가지로 지자체나 시설관리공단 등 관에서 운영하는 게 아니라 상인회가 직접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20년 기부채납 기간이 끝나기 훨씬 전인 2001년부터 상인회가 계속 운영을 맡아왔고, 대전시는 상인 자치가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기부채납 후에도 5년 단위로 운영권을 연장해주고 있다.

최근 <제주의소리>가 대전시 중앙로지하상가를 찾아 상가 활성화의 주된 요인을 현장 취재하고, 상인과 시민들의 생각도 들어봤다. 

 "관 제시 기준 내에서 상인회 자율운영 주효"

우선 정인수 대전시 중앙로지하상가운영위원회 회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 상가는 충청 중부권에서 최고의 상가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며 “이렇게 된 데는 상인들이 상권활성화에 대한 의지가 대단해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는데도 있지만, 대전시에서도 상인회의 노력을 인정해 운영권을 맡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운을 뗐다.

정 회장은 무엇보다 관 주도가 아닌, 관이 제시한 기준 내에서 상인회가 자율적으로 상가를 운영한 게 상가 활성화에 가장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 정인수 대전시 중앙로지하상가운영위원회 회장. ⓒ 제주의소리
그는 “지자체에서 직접 관리·운영할 경우와 상인회가 직접 관리·운영했을 때의 상가 활성화 또는 위축에 대한 실제 사례는 전국의 많은 지하상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면서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을 전제로 시장(市場)은 시장 자율에 맡겼을 때 활성화된다는 사례는 무수하다”고 덧붙였다.

고객들의 민감하고 다양한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마케팅 의지, 선호 브랜드 유치 노력, 상가에 대한 재투자 의지 등은 ‘관(官)’과 ‘민(民)’이 다르고, 관리·감독하는 ‘공공기관’의 입장과 직접 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입장이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기자가 불쑥 찾아가 만난 대전시 중앙로지하상가 상인 김제술(51) 씨의 이야기도 같은 취지였다. 20대 중반에 꿈을 안고 이곳 상가에 입점한 그도 벌써 이곳에서 자신의 청춘을 불사른지 25년째란다.

김제술 씨는 “관과 민의 가장 큰 차이는 상가에 대한 ‘주인의식’의 강도 차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상인들이야 안정적인 기간 동안 자기 점포로 운영권을 보장받는다면 그 공간이 생존 문제가 달린 곳인데 당연히 제 점포에 투자하고 상가를 살리는데 최선을 다하는게 당연하지 않냐”며 “반면, 관이 관리·운영할 경우 이런 의지와 노력은 상인들과는 아무래도 비교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같은 상권이지만 불과 100m 거리에 있고 대전시(시설공단관리공단)가 직접 관리·운영 중인 역전지하상가가 중앙로지하상가에 비해 크게 위축된 현실을 설명하는 듯 했다. 
  

 같은 상권 100m 인근 역전지하상가는 썰렁

실제로 대전시 중앙로지하상가와 불과 100m 정도 떨어진 역전지하도상가는 상황이 달랐다. 역전지하도상가를 찾는 인구는 평일 하루 2만명 남짓. 바로 근접한 중앙로지하상가에 비해 약 1/3수준. 상가가 상대적으로 썰렁했다.   

고객층도 역전지하도상가가 중앙로지하상가에 비해 소비욕구가 큰 젊은이들이 상대적으로 덜 눈에 띄었다. 입지 탓만으로 보기엔 설명이 어려웠다. 젊은 소비자 계층이 선호하는 브랜드 입점 빈도도 차이가 있었다.

대전시의 입장에서도 불과 100m를 사이에 두고 대전시 중앙로지하상가와 역전지하도상가의 소위 ‘대차대조표’가 달랐다.

실제로 대전시는 중앙로지하상가를 통해 연 30억원의 임대수익을 얻고 있지만, 대전시에서 1년에 시설 보수 등을 통해 중앙로지하상가에 투입하는 금액은 임대수익에 1/10 수준인 3억원대.

반면 역전지하상가로부터는 연 6억원 정도의 임대수익을 얻고 있지만, 상권활성화를 위해 대전시가 역전지하상가에 투자하는 시설보수비와 각종 지원 금액은 연 12억원에 이른다. 배보다 되레 배꼽이 더 큰 셈이다.

당연히 역전지하상가 상인들은 중앙로지하상가 운영 모델을 더 선호했다. 역전지하상가 상인 강모(59)씨는 “대전시 시설공단관리공단이 직접 관리하는 역전지하상가와 상인회가 직접 관리하는 중앙로지하상가의 가장 큰 차이는 행정의 제재가 많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시로부터 운영권을 보장받아 상인자치로 운영할 경우 상권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찾는데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하지만, 시가 운영하는 경우엔 아무래도 상인들은 수동적일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는 제재도 훨씬 많다. 중앙로지하상가와 역전지하상가가 바로 그런 경우다”라고 토로했다.   

▲ 12일 오전 대전 역전지하상가. 바로 옆 중앙로지하상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한산한 모습이다. ⓒ 제주의소리

“양도양수·전대, 상가 활성화 도움” vs “공유재산 사유화 변질 안돼”

부평역지하상가와 마찬가지로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역시 양도·양수와 전대를 허용하고 있었다. 대전시는 2001년 상인회에서 운영을 시작할 때부터 이를 허용해주고 있었다. 취지는 상가활성화 차원.

한민호 대전시 건설도로과장은 “기부채납이 이뤄진 후에는 공개입찰을 통해 상가를 운영하는게 맞다”고 전제, “그러나 임대료를 현실화하고 투명한 공개운영을 전제한다면 상가를 상인회 자율운영에 맡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과장은 “양도·양수와 전대를 막으면 상인들의 자기점포에 투자한 노력과 권리금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일정한 기준 내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허용했다. 그러다보니 우리 시에서는 지하상가 관련한 잡음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며 “중앙로지하상가의 경우 많은 상인들이 한 장소에서 이십여 년 간 장사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점도 고려됐다. 자율권을 주니 상인들이 똘똘 뭉쳐 각종 이벤트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상가활성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양도·양수와 전대가 공유재산의 사유화를 조장하는 게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곳 상인들은 적극 항변했다.

지하상가가 처음 생길 때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했던 문준영(61)씨는 “20여년전 처음 분양받고 왔을때 여기 5평 짜리 점포 하나가 당시 대전시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그 비싼 돈을 투자했는데 20년 기부채납 기간이 됐다고 나가라고 하면 과연 여기에 투자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 다행히 대전시에서 상가를 이만큼 활성화시킨 상인들의 노력과 권리도 인정해주었고, 대신 임대료를 현실화하는 등의 다양한 대안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상인 이규현(53)씨도 “20년전에 투자 결정을 해서 분양을 받았다. 상인들도 당연히 일정 수익을 보기위해 분양 받은 것”이라며 “양도양수나 전대를 무조건 막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면 상가는 반드시 죽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제도의 허용범위를 벗어난 불법적인 양도양수나 전대가 이뤄진다면 그것은 안되지만 허용범위 범위 내에서 양성화시키는 것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곳에도 많은 젊은 창업자들이 권리금을 투자하더라도 여기 상가에서 장사하고 싶어 하는데 이를 무조건 막는 다면 기회를 박탈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양도·양수나 전대를 허용하자는 것에 동조하는 의견만 있는 건 아니다. 중앙로지하상가의 성공을 단순히 양도·양수와 전대를 허용했거나 상인자치에 맡겼기 때문이라는 건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시민단체의 지적도 있다.

대전경실련 관계자는 21일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중앙로지하상가가 활성화 된 것은 10년전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이 생기면서 부터였다.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 반드시 지하상가를 통과해야 한다”며 “원도심 일부가 살아났고, 중앙로역이 생긴 게 중앙로지하상가가 활성화 된 데 결정적”이라고 풀이했다.

또 양도·양수와 전대 행위에 대해서도 “공유재산이 개인 사유재산화 되어버린 꼴이다. 양도·양수와 전대를 허용하면 권리금이 오고가게 되는데 대전시가 그와 관련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라며 “그들의 재산권을 인정해주면서 비싼 곳은 돈 10억원을 줘야 입점할 수 있게 됐다”고 꼬집기도 했다.

‘경제정의’ 측면에서도 공유재산에 대한 양도·양수와 전대 허용 등이 자칫 ‘사유화’로 변질될 우려가 있고, 공유재산에 대한 시민정서와 맞지 않다는 지적인 셈이다.

제주시 중앙로지하도상가의 ‘불법 전대’ 문제 등을 다른 지자체의 사례를 면밀히 비교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과, ‘양도·양수’와 ‘전대’ 허용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냉철하게 판단해 공유재산의 공정한 관리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가지 명제에 부합할 수 있는 제도개선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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