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가 봅주]  김영갑갤러리 10주기 추모전 '오름'..."변한 것은 땅위의 사람들"

‘제주가 과연 문화예술의 섬인가?’ 이런 질문에 선뜻 동의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삶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기에 문화예술은 생존 다음의 문제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금언처럼 문화예술의 섬으로 가는 첫 번째 발걸음은 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더욱 가깝게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개개인의 일상에서 문화가 더 이상 ‘큰 맘 먹고 하는 존재’가 되지 않을 때 제주도는 문화예술의 섬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제주의소리]는 누구나 환영하는 유명 공연뿐만 아니라 소소하지만 그만의 매력을 간직한 공연, 전시, 공간 등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한다. 무엇이든 먼저 체험하고 나서 소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문화적 소양이 깊지 않은 문화부 기자의 솔직담백하면서 쉬운(?) 설명이 사족이 아니길 바란다. [한번 가 봅주]는 '(공연·전시·공간에)한 번 가보자'는 의미다. <편집자주>

김·영·갑, 세 글자는 이제 제주에서 하나의 아이콘이 된 이름이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기 시작한 1982년부터 루게릭 병으로 생을 마감한 2005년까지, 20여 년간 그가 찍은 제주 사진은 개발 광풍에 위협받는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상징이 됐고, 성산읍 삼달리 구석진 곳에 지은 두모악 갤러리는 정부가 인정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렸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만큼 유명해진 김영갑두모악갤러리에서 올해 12월 31일까지 특별한 전시를 진행한다. 2005년 5월 29일 한 줌의 재로 변해 자신이 만든 갤러리 마당에 뿌려진지 딱 10년이 되는 해를 맞아 추모전이 열린다. 생전 작가가 그토록 사랑했던 제주의 오름을 기억하며 전시회 제목도 ‘오름’이다.

이번 오름 추모전이 특별한 이유는 1980년대 그가 제주에 처음 발디딜 당시 찍은 흑백 작품들을 여럿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고화질을 거뜬히 소화할 최신 디지털카메라 기종이 쏟아지는 지금 시대에, 얼추 엽서 크기 속 흐릿한 흑백사진은 작고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닌 내용이라고 했던가, 김영갑의 흑백사진은 쉽게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완만한 오름을 뒤로 한 채 펼쳐진 중산간 들판에서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은 ‘이곳이 정말 내가 아는 제주가 맞나’라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수많은 소떼들이 벌렁 누워 휴식을 취하는 광경은 흡사 영국 이민자들의 침략 전 북미 대륙이나 아프리카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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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갑두모악갤러리는 김영갑 작가 10주기를 맞아 추모 전시회 '오름'을 올해말까지 개최한다. 김영갑이 찍은 1980년대 제주도의 오름 모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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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갑이 찍은 1980년대 제주도의 오름 모습. ⓒ제주의소리
오름 안 물웅덩이를 돌아다니는 말(馬) 가족사진은 세상에 없는 유토피아(Utopia)를 떠올리게 할 만큼 평화롭다. 누구의 위협도 받지 않고 어미와 새끼 가축이 목을 축이는 장면과 이들을 감싸듯 아우르는 오름의 배경은 절묘한 구도를 형성한다. 

김영갑이 오로지 흑백의 음영(陰影)으로 표현한 30년 전 제주는 담백한 사찰음식처럼 한 입 한 입 곱씹으며 음미할 만한 맛이 있다.

초창기 흑백사진과 함께, 갤러리 다른 한 쪽에서는 파노라마 카메라 작업을 시작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오름 사진이 전시돼 있다.

아담하게만 느껴지던 제주 오름은 파노라마 카메라와 만나면서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한라산과 비교할 때 늘 뒷동산 같던 친근함을 던져버리는 반전 매력이 드러난다. 

무엇보다 사계절의 변화를 놓치지 않은 작가의 정성은 감탄에 앞서 ‘이걸 찍기 위해 얼마나 현장을 누볐을까’라는 연민을 먼저 일으키게 한다. 초록에서 황금색,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흰색에서 다시 초록으로… 숭고한 자연의 순리를 카메라 속에 담아내면서, 밥은 굶어도 필름과 인화지 사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는 작가정신을 다시 한 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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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갑의 파노라마 사진 작품.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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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과 함께 놓여진 제주돌 장식이 인상적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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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름' 전시회 내부 모습. ⓒ제주의소리
기자가 김영갑두모악갤러리를 다시 찾은 것은 약 12년 만이다. 당시 갤러리는 허름한 건물 한 동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근사한 정원과 분위기 좋은 무인 찻집까지 갖췄다.

폐교된 삼달분교를 개조해 만든 김영갑두모악갤러리는 작가 사후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합쳐지면서 더 많은 이들이 방문할 수 있는 장소로 진보했다. 주차장, 휴식공간 등 기본적인 편의시설 뿐만 아니라 돌담을 미로처럼 쌓아 만든 정원은 갤러리의 또 다른 볼거리다.

김영갑의 제자 박훈일 김영갑두모악갤러리 관장은 “나무, 꽃 모두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대로 관리했다. 인위적인 조경을 최대한 줄이면서 독특한 모습을 가진 정원이 탄생하게 됐다. 그래서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마다 갤러리 정원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런 매력을 눈여겨보며 계절에 맞게 방문하는 사람도 제법 있다”고 남다른 애정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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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갑두모악갤러리 모습. ⓒ제주의소리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김영갑은 제주 출신이 아니다. 1957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다가 제주로 내려왔다. 제주 출신이 아님에도 이곳에서 눈을 감을 만큼 그는 제주 자연을 아끼고 사랑했다. 

김영갑이 생전 찍은 작품은 매우 많다. 아직도 많은 사진들이 공개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김영갑두모악갤러리는 새로움에 매달리지 않고 변함없는 의미를 전달하려 한다. 작가가 인생을 바꿀 만큼 소중하게 여긴 제주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아달라는 것이다.

갤러리 안쪽에 적혀있는 작가의 말 한 꼭지를 소개한다.

‘관광산업이 제주 사람들의 생명산업이 되었다. 제주사람들은 이제는 이어도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방목장으로 사용되던 드넓은 초원은 골프장으로 변하고, 아름다움이 빼어난 중산간 들녘은 리조트와 펜션으로, 별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제주사람들의 마음에서 이어도는 지워지고 있다. 이 땅에서 제주다움이 사라질수록, 제주인의 정체성을 잃어갈수록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어도의 비밀은 잊혀지고 있다.’

김영갑이 허름한 차림새로 오름과 초원을 누비던 30년전 제주와 지금의 제주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봉긋하게 솟은 오름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여름이면 무성한 풀과 나무도 그대로다. 변한 것은 이 땅 위에 사는 우리들이다. 

골프장, 리조트, 호텔… 우리가 필요하다는 대로 자연은 제 몸을 내어줬다. 그러면서 속으로 앓고 있던 자연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인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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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갑두모악갤러리 내부 전시실에 적힌 작가의 글. ⓒ제주의소리

앞서 이번 전시회가 특별하다고 했지만 사실 김영갑과 김영갑두모악갤러리는 결코 특별하지 않다. 그는 '제주 자연은 지켜야 한다'고 생의 절반 동안 사진으로 부르짖어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누구도 관심갖지 않았던 제주의 땅과 오름은 어느새 영원히 간직해야 할 소중한 자원이 됐다.

토박이보다 더욱 제주를 사랑했던 김영갑의 마음은 결국 시대를 훨씬 앞서갔기에 두모악갤러리는 특별하지 않으면서 어느 장소보다 특별하다. 

하루 방문객이 20명도 되지 않아 운영을 걱정해야 했던 이곳이 입소문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주다움'을 일찌감치 깨달은 김영갑의 마음을, 남아있는 자들이 소중히 간직해나갔기 때문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김영갑은 한결 같다. 낡은 우의를 걸쳐 입고 오름 한 가운데 서 있던 그때나 제주와 하나가 된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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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김영갑의 작업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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