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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22) 통점 / 강연옥

마음이 수직과 수평으로 교차할 때 바람이 붑니다

열두 번의 값을 미리 치르고 등록한 쑥찜방, 두 번 사용했는데 밥줄이 끊긴 듯 갈 때마다 닫혀 있는 문틈에 고지서만 잔뜩 껴 있고, 몇 달 지나서 드디어 만난 주인,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게 괘씸하여, 완강하게 항의를 하고 환급 대신 받은 전기돌뜸

돌아오는 길에 당당한 입안이 까끌까끌합니다. 가슴엔 모래바람이 일어 쌓여가고, 돌뜸의 무게로 발이 푹푹 꺼집니다, 계산상 내가 손해 본 것이라 불편한 마음을 머리로 유인해도, 쑥찜방을 놀이방 삼아 걸음마 하는 주인 딸이 자꾸 아른거립니다

차라리 입이 없고 싶은 날입니다

깊어지는 발자국마다 흘러드는 모래, 모래가 모래를 자꾸만 덮고 있습니다


강연옥 : 월간 시사문단으로 등단. 시집으로 『새는 발바닥으로 앉는다』, 『젖고 마르고 또 젖는』, 『물마디꽃』등이 있음.

차라리 입이 없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상대방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돌아서면 부끄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을 변명하려 하지만 한번 내뱉은 말로 인해 입안의 모래가 탑을 쌓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벗들과 어울려 술 한잔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잔뜩 핏대 올리고 
정작 계산을 할 때는 죄 없는 신발끈 매듭만 만지작거리는
결국 뿔뿔이 헤어져 비틀비틀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 
거울 속에 게슴츠레하게 서 있는 저 인간이 도무지 인간 같지 않은 그런 날이 있습니다.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강연옥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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