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내 원도심 최대 상권으로 꼽히는 중앙지하상가를 두고 말들이 많다. 제주시는 안전을 이유로 올해 말부터 지하상가의 대대적인 개·보수에 돌입할 예정이고, 상인들은 여기에 숨은 의도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갈등의 배경으로 지목된 ‘전대’(轉貸) 문제를 놓고도 말이 무성하다. <제주의소리>는 현재 지하상가를 둘러싼 논란을 짚어보고, 다른 지자체의 사례를 통해 합리적인 해결책은 없는지 찾아보려고 인천, 서울, 대전, 창원, 부산 등 전국 주요 지하상가 현지 취재에 나섰다.[편집자 주]

▲ 부산 대현지하상가 상인들은 시설공단 이관을 반대하며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 제공=대현지하상가 비상대책위원회 ⓒ 제주의소리
[제주지하상가 논란, 해법은?] ⑤ 부산 대현지하상가 기부채납 앞둬 갈등

요즘 부산시는 지하상가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다. 최근 부산시청 앞에서는 부산진구 부전동에 위치한 대현지하상가 상인들의 집회가 끊이지 않는다.
갈등의 핵심은 기부채납 기간 만료 때문.

부산 대현지하상가는 총 길이 403m, 면적 4622㎡ 규모에 327개 점포가 들어서있는 상가다. 지하상가 전문 개발업체인 ‘대현프리몰’에서 관리·운영 중인데 내년 4월이면 33년간의 사용 기간이 만료돼 부산시로 기부채납된다. 부산시는 당초 계획대로 내년 4월 이후부터는 부산시설공단을 통해 상가를 관리·운영할 계획이다.

그러나 상인들은 민간업체가 아닌 부산시(시설공단)가 관리하게 되면 상가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작년 12월 시작된 집회는 현재 해를 넘겨 8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 ‘잘되는’ 대현지하상가는 8개월째 집회 중, 왜?

대현지하상가 상인들이 이토록 반발하는 이유는 뭘까?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인 홍왕곤(64)씨는 시설공단이 상가를 운영할 경우 현재 활성화된 상가가 침체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홍 위원장은 “상인들 입장에서는 시설공단보다 민간이 맡는 게 좋다. 시설공단은 시장과 실물경제에 대해 전문성이 낮고, 단지 이곳을 관리대상인 ‘시설’로만 본다”며 “게다가 양도양수 제한 등 독소조항이 너무 많다. 시장경제 원리에 맞게 시장 자율에 맡기는게 상가활성화에 분명한 도움이 된다”고 확신했다.

전문성과 경쟁력, 공격적 마케팅 노하우 등을 갖춘 민간업체가 지자체보다 훨씬 시장에 대응하는 능력이 높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러나 부산시는 기부채납 시점이 돌아온 만큼 원칙대로 시에 귀속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현프리몰은 지난해 10월, 약 560억원의 신규 투자를 통해 상가 리모델링과 추가 구간을 개발하는 내용의 제안서를 부산시에 제출했지만 거절당한 상태다.

이에 상인들은 부산시 귀속이 아닌 대현프리몰을 포함한 민간기업들이 관리·운영할 수 있도록 공개입찰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자체가 직접 관리운영하는 방식보다 민간업체가 관리·운영해야 상가가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이 골자. 상인들은 그 예로 인근 ‘서면지하상가’를 꼽는다.

 # “서면지하상가 지자체 귀속되면서 침체”, 맞아?

‘서면지하상가’는 대현지하상가와 맞닿아있다. 412m 길이, 4763㎡의 규모에 338개 점포가 들어서 있는 서면지하상가의 분위기는 대현지하상가와 물씬 다르다. 기자가 현장을 방문한 날이 주말 휴일임에도 유동인구나 상가 전반적인 분위기가 대현지하상가와 차이가 느껴졌다. 고객층도 소비욕구가 높은 젊은 고객들보다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부산시민 고모(34.여)씨는 “쇼핑할 때 종종 이곳에 나온다. 대현지하상가는 20~30대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매장들이 즐비하고, 매장 인테리어나 상품도 트렌드에 맞춰 변화하는 반면, 서면지하상가는 그에 비해 시대가 뒤쳐졌거나 변화가 없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고 말했다. 

지하상가에서 직접 점포를 운영 중인 상인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20대에 서면지하상가에 들어와 27년째 장사 중인 윤모(55)씨는 “처음엔 ㈜서면지하상가가 운영해오다 기부채납 기간이 끝나면서 2013년 3월부터 부산시 시설공단이 서면지하상가 관리를 맡고 있다”며 “민간 관리에서 지자체 관리로 변경되면서 관리비는 줄어들었지만 상인들에게 제약은 늘었다”고 평가했다.

윤 씨는 “종전 상인들이 행사하던 자율적 권리가 제약 당하면서 상인들이 상가활성화 의지가 현저히 떨어졌다”며 “상가활성화가 되려면 자유롭고 유연하게 시장흐름에 대응해야 상가가 사는데, 시설공단이 관리하면서 여러가지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소비자가 선호하는 브랜드 유치를 위해선 안정적인 임대기간이 필요하고, 적극적인 마케팅과 자유로운 공간 활용 등이 상가활성화의 주된 요인인데, 이는 관 주도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관리운영 주체가 민간에서 지자체로 넘어가면서 상권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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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오후 대현지하상가의 모습. 젊은이들이 눈에 비교적 많이 띄었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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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오후 서면지하상가의 모습. 대현지하상가에 비해 다소 한산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 제주의소리

 # 양도·양수, 전대 허용여부가 갈등 핵심

부산시 대현지하상가와 서면지하상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양도·양수와 전대의 허용 여부에 있다.

부산시설공단의 지하상가 운영규정에는 ‘임차인은 임차한 점포를 어떠한 경우에도 전대 및 양도하지 못한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기 때문에 공단 소속 서면지하상가에는 양도·양수와 전대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1982년 완공시부터 현재까지 자율권을 보장받은 대현지하상가는 양도양수와 전대가 다 가능하다. 대현지하상가를 개발할 당시 부산시가 개발업체인 대현실업와 협의한 ‘대현지하도상가 무상사용·수익 허가조건’에 양도·양수와 전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으나 부산시는 법률자문 등을 통해 ‘무상사용 기간 내에는 양도·양수, 전대 등을 강제하거나 단속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시는 ‘지자체(공단)가 관리하면 상권이 죽는다’는 상인들의 주장에 적극 반박한다.

부산시는 2008년 7월 기부채납돼 시로 귀속된 남포와 광복 지하상가의 공실률을 비교한 결과 2008년 4월에는 19%였던 것이 2014년에는 2.4%로 크게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부산시 관계자는 “대현지하상가가 서면지하상가보다 활성화돼 있는 것은 그 쪽에 유동인구가 많은 데 이유가 있다”며 “서로 연결돼 있긴 하지만 대현지하상가가 위치한 부전동이 서면지하상가가 위치한 범내골 지역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상가활성화 측면이 단순히 민이냐, 또는 관이냐 하는 운영주체에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안종수 부산시설공단 과장은 상인들의 주장에 대해 “기존 업체에 대한 특혜소지가 있고 타 지하상가와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무상사용 기한이 끝나면 부산시로 귀속하는 게 원칙”이라고 거듭 못을 박았다.

안 과장은 또 “결국 대현지하상가 상인들이 원하는 건 양도·양수와 전대를 자유롭게 보장해달라는 게 아니냐. 이는 시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선을 긋고, “공유재산 사유화를 통해 수억원의 이익을 벌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문제다. 대현지하상가의 경우, 잘 되는 점포엔 약 2억원에 이르는 권리금까지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관리운영 권한과 주체를 놓고 상인들과 행정당국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러나 양측의 주장이 무조건 불합리하거나 일방적인 억지는 아닐 것이다. 민간에 자율성을 최대한 부여하는 것이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만, 공유재산에 대해 무조건 양도·양수나 전대를 허용할 순 없는 상황. 그래서 시민들은 ‘솔로몬의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양미숙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제주의소리>와 전화 통화에서 “부산시와 상인들의 갈등이 더 깊어지기 전에 지금 시점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지하상가의 기본 성격과 조성취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 봐야 할 것”이라고 주문한다.

양 사무처장은 “지하상가는 서민들의 밥벌이 수단인 동시에 공유재산이다. 지자체와 상인 모두 이에 대한 배려와 고려가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서민들이 쉽고 저렴하게 장사도 하고 쇼핑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중요하다. 합리적 해법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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