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다시 기승을 부리는 사대주의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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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화 가정과 북한이탈주민을 비롯한 시민들이 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대형 시민태극기를 들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가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시민들과 함께 대형 시민태극기 제작하고 전시하는 행사의 일부다. 가로 21m, 세로 14m의 대형 시민태극기는 시민들이 가져온 2015개의 조각천으로 4괘와 태극원이 그려진 총 5개의 천 위에 한땀 한땀 바느질로 이어붙여 제작됐다. 대형 시민태극기는 청계천 배오개다리 난간에 게시돼 오는 15일까지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성대한 70주년 승전기념식

참 무더운 올 여름. 뜨겁게 달궈진 대지를 조금이라도 식혀줄 한 줄기 비가 아쉽다. 꾸역꾸역 넘기는 삼복더위가 힘겹기만 하다. 그러는 사이 벌써 눈앞에 다가온 광복절이 70주년을 맞는단다. 70이라는 숫자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 금년 광복절은 이례적으로 특별연휴로 지정됐다. 축제분위기 조성에 정부가 각별한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2차 대전 참전국인 유럽과 러시아도 지난 5월 승전기념 7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식을 개최한 바 있다. ‘유럽 승리의 날’(Victory in Europe)로 불리는 이 날 이들 나라들은 외국 정상들을 초대한 가운데 자국군대의 질서정연한 열병식과 화려한 에어쇼를 통해 승전국으로서의 자부심을 맘껏 과시했다.

그리고 우리의 광복절. 물론 기쁜 날이지만 승전국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우리의 주권회복은 본격적인 참전도 못해보고 일본의 갑작스런 항복으로 얼떨결에 이뤄진 것이었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꿋꿋이 지켜온 주권을 최초로 이웃 나라에게 뺏겼으니 더할 나위없는 치욕이었다. 거기에다 독립을 남의 선심으로 선물 받은 듯한 느낌이 한민족의 자부심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너무 기분 상할 필요는 없다. 식상한 자화자찬이겠지만 광복 이후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한민족의 역량은 식민지 통치의 상처를 치유하고 한민족의 자존심을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이제 우리는 세계 강대국인 일본과 견주어도 적어도 마음만큼은 꿇리지 않는다.

그래서 광복절을 맞는 우리들의 이 기쁨은 광복 후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땀 흘린 노력의 과정과 결실에서 나오는 뿌듯함이 아닐까.

천황폐하

그러나 오늘날에도 일부 지도층의 의식은 식민지 시절 신민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들의 과거회귀적인 행태와 발언은 그동안 국민들이 힘들게 일으켜 세운 민족적 자부심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잘 알다시피 한 실례는 대통령 동생이 얼마 전에 일본의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일본의 역대 총리와 천황폐하가 거듭 사과를 했는데도 자꾸 갈등을 빚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거야말로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떡을 줄 필요가 없다”고 먼저 ‘상전에게 아뢰는’ 격이 아닌가. 일본이 언제 우리에게 제대로 사과라도 한 적 있는가. 아니면 진심으로 사과를 하려고 했는가. 현 총리 아베만 해도 중국 등 다른 나라에게는 사과를 해도 우리에게만큼은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게다가 일왕을 파시즘의 산물인 천황폐하로 높여 불렀으니, 한민족의 자존심을 볼모로 그녀 혼자만 인심 한번 크게 쓴 셈이다.

대표성을 지니는 지도층 인사가 이러니 굳이 극우성향의 아베가 아니라 어느 누가 일본 수상이 된들 알량한 자존심 구기며 한국에 과거사 문제로 사과를 하겠는가. 콧대를 세우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한국의 지도층은 이렇게 저절로 무릎을 꿇고 구걸을 해 오는데. 이러다간 남극의 펭귄들이나 태평양의 참치들이 일본에게 사과를 받는 게 더 쉽겠다.

큰절의 진정성

광복절 70주년을 앞두고 모처럼 피어오르던 축제 분위기에 모레를 뿌린 건 여당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여당대표가 된 이후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그는 산 같은 몸으로 행사장 바닥에 납작 엎드려 참전 미군용사들에게 큰 절을 드렸다. 함께 따라간 여당의원들 일행도 처음엔 주저하더니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의 동작을 따라 갔다. 그러나 그의 큰절이 극진한 정성과는 전혀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어느 역사학자는 여당대표의 ‘큰절’ 해프닝을 1883년 민영익의 방미 사절단의 일화에 빗대었다. 그가 머리에 커다란 챙이 달린 삿갓을 쓰고 몸에는 하얀 두루마리 한복을 입은 채 땅바닥에 엎드려 미국인들에게 큰절을 올리자 당시 미국인들의 반응은 “별 희한한 것들 다 보겠네”였다고 한다. 그래도 민영익의 큰절은 동방예의지국의 선비로서 진정성은 있었을 것이다.

꽹과리 굿판

그로부터 140년이 흐른 뒤 우리 여당대표가 미국인들에게 올린 큰절은 어땠을까. 지금은 상대국 문화와 예절이 어떤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지구촌 시대다. 미국의 참전용사들에게 정중히 머리를 숙이고 반갑게 악수를 나누면서 고마움을 표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다간 기독교 문화의 미국에서 한국식 큰절을 올리는 것은 “교회에서 꽹과리 굿판을 벌이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미국인들이 좋아했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실리를 챙기는 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미국인들이다. 즉석에서는 박장대소를 해도 계산에는 냉정한 그들이다. 그들의 실용주의는 실익 없는 허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잖아도 근거 없는 콧대 세우기로 세계인들의 원성을 사는 미국인들에게 그의 시대착오적인 큰절은 국가적인 실속은 없고 결국 한국민들의 자존심만 구긴 ‘오바’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도 제발이 저렸는지 휴가차 놀러온 제주에서도 “나라 구해 준 은인들에게 큰 절 한 게 무슨 잘못이냐”고 변명하느라 피서 대신 땀을 흘렸다.

공자의 70

평소 이해타산에 밝은 그가 이러한 오바를 하는 건 이유가 없지 않을 터. 외교의 불문율을 깨고 “중국보다 미국”이라고 말하거나 “미국 전투기를 얼마든지 사겠다”는 그의 무책임한 발언들을 종합하고 또 여기에다 가장 유력한 차기대권주자로서의 그의 현 상황을 대입해 보면, 한국인들의 정서를 무시한 그의 지나친 행동은 상국으로부터 현대판 “세자책봉”을 받으려는 계산된 의도로나 오해받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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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광복절 70주년에 공자에게 있어서 나이 70의 의미를 검색해 봤다. 공자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지도층의 일부 인사들은 행동하는 것마다 모두 법도에 어긋난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다보니 법도에 어긋난 행동만 골라서 한다.

요즘은 일곱 살 아이라도 자기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지도층이 차라리 일곱 살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빛을 찾은 한민족을 다시 어둠속으로 밀어 넣는 식민주의적 사고가 요즘 와서 다시 기승을 부린다는 느낌이 모처럼의 광복절 70주년을 기쁘게 맞으려 했던 기분을 잡친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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