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㉚> 사진쟁이 김영갑의 삶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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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MYOUNGGAP GALLERY DUMOAK

우연히 마흔 아홉에 세상을 떠난 김영갑의 사진과 글이 담긴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게 되었다. 단숨에 책을 독파하는 동안 파스텔 톤의 은은한 풍경사진에 매료되어 나는 그를 ‘카메라를 든 화가’ 또는 ‘풍경화를 그리는 사진가’로 부르고 싶었다. 그의 사진 속에는 대자연의 교향악과 시정(詩情)이 넘쳐 흐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년이나 제주섬의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았던 이 치열한 작가정신과 투철한 예술혼을 지닌 동시대의 진정한 예술가, 김영갑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고 한스러웠다.

□ 김영갑은 누구인가?

1957년 충남 부여 태생. 1982년부터 서울-제주를 오가며 사진작업을 하다가 1985년 아예 섬에 정착. 섬 곳곳을 누비며 제주의 자연을 찍다가 1999년 루게릭 병 진단. 고통과 시련에 굴하지 않고 2002년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개관. 투병생활 6년만인 2005년 5월 29일, 숨을 거두었고 그의 뼈는 갤러리 마당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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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MYOUNGGAP GALLERY DUMOAK

□ 김영갑의 삶-찢어지는 가난, 견고한 고독-

생전의 김영갑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지독하게 고독했다. 양식이 떨어지면 굶었고 라면마저 여의치 않으면 냉수 한 사발로 끼니를 대신했다. 온종일 들판을 헤매고 다니다 당근·무·고구마밭을 지날 때면 슬쩍해서 허기를 때웠다. 필름이 떨어지면 전당포로 가서 카메라 두 대 중 하나를 맡겼다.

그는 섬에 둥지를 튼 순간부터 외톨박이로 지냈다. 중산간 마을 외딴 집에서 외부와 접촉을 끊고 가족은 물론 친구·친지와도 연락을 단절했다. 결혼도 포기했다. 한 여자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할 수 없는 한, 결혼하지 않으리라 결심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촬영, 밤엔 현상을 했고 비 오는 날은 집안에 틀어박혀 인화 작업을 했다. 신문도 TV도 없이 오직 사진에만 몰입했던 것이다.

가난과 고독은 그의 예술을 만들어 낸 원천이다. 만일 그가 시류와 영합하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았다면 그처럼 빼어난 작품들은 태어나지 않았을 거다. 아마도 그의 삶에서 가장 큰 시련은 루게릭병과의 싸움이었으리라. 10만 명 가운데 1~2명이 발병하고 치료약도 없이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불치병. 하루에도 몇 번씩 호흡곤란으로 죽음과 맞닥뜨려야 했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그는 섬사람들의 유토피아 ‘이어도’를 만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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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MYOUNGGAP GALLERY DUMOAK

□ 김영갑의 예술-삽시간의 황홀=오르가슴-

그러나 그의 삶이 아무리 곤고한 것일지라도 그의 탁월한 작품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한 예술가의 삶은 그의 작품으로 인해 빛나게 된다. 김영갑의 사진은 ①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②남들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는 “일출과 일몰 사진을 통해 내가 감상자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 것은 둥근 해가 떠오르고 넘어가는 과정의 풍경뿐만이 아니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그 감동까지 함께 나누고 싶다”고 한다. 그는 또 “사진은 사진가의 감정을 통과해 해석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김영갑의 사진은 대상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는 말이다. 표면적으로 제주의 자연(산·바다·오름·들판…)을 피사체로 삼았지만 내면적으로는 제주의 영혼(아름다움·슬픔·평화·고요…)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는 뜻이다. 이건 서양 미술가들이 말하는 ‘데포르마숑’보다 한 차원 높은 경지의 세계다.

김영갑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배면에 ‘삽시간의 황홀’이 놓여 있다. 그는 엑스타시를 느끼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셔터를 누르는 건 사정행위와 같다. 그러나 오르가슴 뒤에 찾아오는 건 허전함과 씁스레한 비애뿐이다. 아름다움의 극치는 슬픔이다. 김영갑의 작품들은 ‘조용한 슬픔의 건너편에 고요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환기해 준다. 처절하게 고통과 대결해야 했던 그에게 사진찍기는 간절한 기도였고 수행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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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슬픔의 미학적 구도자였던 그는 루게릭병을 앓고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두려움 없이 기쁘게 이 세상을 하직할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구원은 우리가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다 잃은 후에야 찾아온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삶도, 죽음도, 모든 인간 실존의 귀결점은 슬픔이라는 걸. 그래서 슬픔이 아름다움에게 묻는다.

“아름다운 이 세상은 왜 이다지도 슬픈가요?”……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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