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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27) 섬들의 꿈 / 김순남


섬은 바다의 향기로
잠이 들고
바다는 섬의 꽃으로 잠을 깬다
섬은 수평선에 목을 매고
바다는
섬에 엎드려 비로소 몸을 푼다

섬은 한 번도 그립다 말한 적 없다
바다가 제멋에 파도를 일으키고
수평선을 그린다
섬은 한 번도 갇힌 적 없었다
바다가 섬을 가둔 적도 없었다
섬과 바다는
처음부터 한 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다는 분명 섬을 위해 펼쳐진 날개일 거다
섬은 바다라는 날개를 달고
오대양 육대주를 가고픈 만큼 날아갈 수 있다
섬의 그리움은 수평선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바다가 섬을 놓아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섬은 제 스스로
그리움을 만들어 바다에 뿌린다
아름다운 구속
너로 인해 나는 존재한다


김순남 :『문학세계』로 등단. 시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외출』, 『남몰래 피는 꽃』, 『누가 저 시리게 푸른 바다를 깨트릴까』등이 있음.

바다와 섬의 관계를 아름다운 구속이라고 말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섬은 한 번도 그립다 말한 적 없고, 한 번도 갇힌 적 없다고 말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섬과 바다는 처음부터 한 몸이었다고 말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바다는 분명 섬의 날개였을 거라고 말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바다로 나가보시는 건 어떨는지요?
지금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는 건 섬이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어화漁火가 점점이 켜진 밤이면 더욱 아름다운 비행이겠네요.
섬의 연착륙을 위해 바다는 안간힘을 다해 불을 밝히고 있을 겁니다. / 김수열

김수열: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순남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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