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유용한 의제는 자기부정적인 패러독스를 안고 있다

올 8월에는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국가적 의제가 많았다. 생태계 파괴 논란에도 불구하고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이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조건부로 통과되었다. 노동개혁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위해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로 지목한 규제들이다. 전국을 태극기로 수놓고 애국주의 열기가 넘쳐나게 한 광복 70주년 행사가 열렸다. 북한의 지뢰도발로 야기된 일촉즉발의 충돌위기는 남북 고위급 접촉의 결과로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이들 이슈와 관련 경제 불황, 한일 갈등, 북한 위협 때문에 이성적인 논쟁보다는 감성적인 주장이 크게 부각되었다. 사안마다 냉철한 분석과 깊은 음미가 필요하다. 공동체와 개인, 국가 관계에서 이념, 가치관과 이익은 항상 일치하지 않으며 패러독스를 낳는다. 울리히 벡이 말한 “지나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역설은 ‘사탄의 맷돌’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존한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위험 발생도 커진다. 핵에너지 기반의 물질적 풍요, 자연 환경을 파괴한 개발은 성장의 패러독스다. 소득 불평등과 복지, 소비와 저축, 유가와 전기절약, 지구온난화 부정의 역설은 성장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단골메뉴로 사용된다.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과감하게 철폐되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의 주술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장집착증은 과도한 규제완화로 이어져 세월호와 같은 대형참사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경제성장의 역설은 힌두교의 신 주거노트의 신상을 실은 수레에 깔려죽으면 극락에서 환생한다는 믿음과 비슷하다.

과학과 기술발전이 경제발전을 이끌고 있지만 일자리를 없애는 역설이 발생한다. 일자리 부족은 소비를 위축시켜 성장을 정체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킬 묘안이 서비스산업에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설악산을 비롯한 전국의 모든 국립공원에 인공구조물을 설치하여 성장목표를 달성한 이후에 또 무엇을 파괴할 것인가.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당장의 경제효과보다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 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노동개혁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고용보장의 역설이 작용한다. 청년 일자리 창출과 고령자 및 저성과자의 노동시장 퇴출이라는 대척점에서 합의가 어려운 문제다. 청년고용 문제는 베이비부머들이 모두 퇴장하는 2023년까지는 해결 전망이 밝지 않다. 따라서 치열한 논쟁으로 양보와 타협을 한다면 성장과 복지에 순기능을 할 것으로 본다.

태극기는 애국을 상징하는 기호다. 애국주의는 개인을 국가의 틀안에 가두어 일체감을 형성할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공동체 및 개인의 권리와 의무가 엇갈리는 역설이 존재한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강조하는 애국은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옥죌 수 있다. 정부와 언론의 일방적인 애국주의 캠페인은 국민의 동의를 강권하고 반대편을 배제하는 극단주의, 전체주의를 낳기 십상이다.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논란도 애국의 패러독스를 야기한다. 애국심은 개인의 일방적 희생이 아닌 개인과 국가의 목표가 합치될 때 극대화 될 수 있다. 국가 및 개인의 권리와 의무의 상호 의존성에 대한 심도있는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남북회담 결과에 대해서 극우와 극좌를 빼고 국민 대다수는 지지하는 분위기다. 북한은 대화와 협력의 상대이지만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는 적이다. 북한이 매설한 목함 지뢰 도발에 북측의 유감을 받아낸 것에서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남북관계의 역설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단호한 대응과 남북 합의를 이끌어내는 모순된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북한 내부의 굳건한 군사 우월체제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북측의 극단적 선택을 제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남측도 군산복합 체제의 교묘한 기득권 지키기 전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위기를 먹고 사는 적대적 공생관계의 불편한 진실을 정교하게 관리하고 남북관계에 반영한다면 위기를 해결하고 굳건한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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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경제성장, 애국주의, 남북관계에는 모순되는 역설이 숨어있다. 패러독스의 관점에서 이슈들을 관찰하는 것은 핵심에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의제는 자기부정적인 패러독스를 안고 있다. 패러독스는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패러독스를 이해하고 숨겨진 본질을 통찰할 수 있다면 이슈에 내포된 역설은 사회적 도약을 위한 촉진제가 될 것이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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