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아카데미-나침반교실] (9) 안상진 부소장 “좋은 습관이 '수학체력' 키운다”
처음엔 미심쩍어 했던 부모들도 시간이 지나자 점차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일반 사교육 시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얘기들. 그러나 막상 들어보니 다 수긍이 간다는 얼굴이다.
17일 오전 10시 제주벤처마루에서 열린 제주도교육청(교육감 이석문)과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2015 부모아카데미-나침반 교실’ 열한 번째 강연에서 나온 반응들이다.
이 날 연단에 선 이는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 잘 나갔던 교사에서 교육시민운동가로 변신한 그는 그는 “수학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반사적으로 ‘습관’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공부하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라며 이 날 강의에서 ‘지혜로운 수학 학습법’을 풀어놓았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사교육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문법과는 전혀 달랐다. 먼저 무리한 선행학습에 일침을 가했다.
그는 “단언컨대 상위 학년의 과정 중 1년 앞 과정도 이해할 수 없다”며 “몇 년을 앞서나간다는 학생들? 그건 학원에서 해주는 거다. 학원에서 베껴쓰고 필기하고 외우고 그건 공부가 아니다. 남는 게 하나없다. 진짜 공부는 스스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해 안가는 것을 고민하고 안되는 것을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꼬집었다.
또 “선행학습의 결정적 문제는 아이들이 정작 수업시간에 흥미나 호기심을 못하는 데 있다”며 “어설프게 듣고 와서 결론은 다 안다. 공식만 알면 다 안다고 생각한다. 정작 중요한 ‘과정’을 설명할 때 아무도 관심이 안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사교육 시장에서 끊임없이 ‘선행학습’을 강조하는 건 자본의 논리가 숨어있다는 지적도 가했다.
그는 “(학원 입장에서) 선행학습은 비용이 적게든다. 복습 중심이면 학생 별로 수십가지의 경우를 분석해야겠지만, 선행학습은 학생들이 모르는 걸 그냥 (일괄적으로) 얘기하기 때문”이라며 “또 선행학습의 효과를 확인하는데는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책임에서 자유로운데다, ‘몇 년 선행학습을 한다’ 치면 좋은 이미지 효과를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복습의 힘’. 이른바 수학의 ‘기초체력’을 키우라는 조언이다.
그는 “복습과 예습의 중요성을 비교하면 9대1”이라며 “복습이 분명하지 않으면, 밑바탕이 탄탄하지 않으면 절대 위로 못 올라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권을 한 번 보는 것보다 한 권을 여러 번 보기 △하나의 문제로 고민할 시간 충분히 주기 △매일 복습하기 △예습을 할 경우 훑어보기만 하고 공식은 외우지 않기 △방학 때 전 학기 내용 심화 복습하기 △문제집을 고를 때 전체의 70%를 풀 수 있는 수준의 난이도를 고르기 △문제집 한 권을 풀고나서 틀린 문제만 모아 오답노트 만들기를 구체적 방안으로 제시했다.
또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부모 등 제 3자에게 다시 설명해주는 방식도 좋은 접근이라고 덧붙였다. 단 이 과정에서 부모가 리액션을 넘어서 개입한다거나 아예 설명을 들어주지 않으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중3까지 학습을 하면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이 붙어있을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된다. 진도 욕심을 낼 필요가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학체력’이 강하면 고등학교에서 같은 내용을 익혀도 이해가 빠르다”고 덧붙였다. 사교육은 그 다음에 이용하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거듭 “스스로 수학하는 힘이 키워지기 전에 학원을 보내면 잘되도 문제, 안되도 문제”라며 “잘되는 경우를 따져봐도 앞으로 스스로 공부하고 고민하는 대신 학원에 가서 답을 얻으려고 할 것이고, 나쁜 경우 ‘내가 수학적인 머리가 없나봐’하고 자책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모들이 학원에 의존하는 이유가 수학에 대한 공포감이 있기 때문”이라며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라. 아이들을 신뢰하라”고 강조했다.
이날 그가 마지막으로 던진 메시지는 어떤 비법이나 방법론이 아닌 ‘더 좋은 제도를 함께 고민하자’는 호소였다. 그는 퇴직 전 마지막 수업에서 가혹한 경쟁 구도 속으로 아이들을 몰아넣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학생들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그는 이 날 강의에서 각박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비법을 말해준 셈이지만 결국 이 ‘각박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게 그의 궁극적인 메시지였다.
“그 동안 저는 교사하면서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안하면 사회 나가서 뭐가 되는 줄 아느냐’며 무한경쟁에 몰기에 바빴다. 애들이 힘들다고 할 때 ‘다 힘들다 너만 힘드냐’고 얘기만 했다. 훨씬 나쁜 제도를 물려줬지만 기성세대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 수업, 퇴직 전 아이들에게 사과를 했다. 우리 세대를 용서해달라고.
우리 아이들이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거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 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우리의 자녀다. 지금까지 저는 각박한 제도 속에서도 수학을 잘하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하지만 그것과 함께, 우리 아이들이 의미없는 무한경쟁과 교육 속에 있는 걸 바꿔가는 데 함께 갔으면 좋겠다”
※ 나침반교실 ‘지혜로운 수학 학습법 2부’는 소리TV를 통해 시청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