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8717.JPG
▲ 송인길 제주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제주의소리
[인터뷰] 송인길 제주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제주, 문화예술적 가능성 무궁무진"


중학생 시절부터 정년퇴임 이후까지 국악 하나만을 보고 살아온 남자가 있다. 모든 과정을 국립기관 코스를 밟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뒤늦게 알게 된 제주 자연에 빠져 낯선 남쪽 섬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고, 그동안 자신이 누린 것을 제주도민들에게 돌려주겠다며 국악 전파에 발 벗고 나섰다. 바로 송인길(69) 제주국악관현악단 예술 감독이다.

4일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초록생명마을 '에코파티'에서 만난 송 감독은 평생 해온 것은 국악 하나 뿐인 외길 인생이다.

국립국악중학교, 국립국악고등학교라는 자타공인 ‘국악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국악 중에서도 궁중음악을 다루는 정악(正樂) 가야금 분야를 전공했다.

나이 40을 지나 배움의 필요성을 느껴 서울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국악 전공)에 입학할 만큼 국악을 대하는 자세는 누구보다 진지하다. 

이후 대한민국 국악의 최고 기관인 국립국악원에 들어가 수석단원을 거쳐 예술감독이라는 중책까지 맡았다. 정년퇴임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출강하며 후진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악인 가운데서도 손에 꼽힐 만한 실력과 경력이다.

송 감독이 제주에 정착한지는 6년 8개월째. 많은 정착민들처럼 그를 사로잡은 것은 제주의 자연이었다. 정년퇴직 후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온 제주도는 국악의 대가를 사로잡기에 충분할 만큼 아름다웠다. 

제주와 만난 시간은 짧았지만 인상은 오래 남았다. 서울 생활을 과감히 정리하고 온 가족과 함께 제주로 내려왔다. 제주에서는 제주교사국악관현악단을 만든 故 최광석 교사와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송 감독은 “제주에서의 첫 국악 활동은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국악관현악단이었다. 당시 제주중앙여고는 특별활동으로 국악관현악단을 운영했는데, 학교 측에서 지도를 요청해왔다”고 밝혔다.

그렇게 제주에서 새로운 국악 인생을 시작하면서 송 감독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부족한 국악 인프라.
IMG_8737.JPG
▲ 송인길 감독. ⓒ제주의소리
IMG_8727.JPG
▲ 가야금을 연주하는 송인길 감독. ⓒ제주의소리
국악과 관련된 기관, 교육시설 모두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사실상 전무한 상태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송 감독은 “이 상태로 지속되면 제주도에 국악이 제대로 뿌리내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제주도민들이 제대로 된 국악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겠다고 판단했다”며 지금까지 국립국악원 제주분원을 신설하기 위해 혼자서 ‘설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국립국악원은 신라시대의 음성서로부터 지금까지 1000년이 훌쩍 넘게 이어오는 대표적인 문화예술기관이다.

서울 본원과 함께 남원 민속국악원, 진도 남도국악원, 부산국악원 등 3개의 지역 분원을 두고 있다.

국립국악원 제주분원은 송 감독의 노력으로 제법 구체화된 상태다.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신화역사공원 부지를 기꺼이 내주겠다는 의사를 송 감독에게 전했고, 국립국악원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송 감독은 “강원도, 충청도 등 다른 지자체도 국립국악원 분원을 추진하려고 하지만, 국립국악원이 안고가야 할 경제적 부담이 상당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만약 제주에서 분원을 새로 만들겠다고 하면 우선적으로 (진행)하겠다고 제가 직접 국립국악원장에게 답변을 받았다. 국립국악원과의 업무협약까지 논의가 진행됐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다”고 설명했다.

제주도가 공식적인 분원 유치 의사를 국립국악원에 전달해야 하지만, 아직 그 정도까지 이어지지 않은 상태다. 사실상 혼자 힘으로 추진하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전임 도백, 제주대학교 교수들까지 만나면서 그야말로 ‘발버둥’ 치는 중이지만 문화, 그리고 국악에 대한 도민사회의 낮은 관심이 발목을 잡고 있다.

다만 조금씩 송 감독의 진심을 알아가는 도민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유치위원회까지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희망을 품게 한다. 

초록생명마을을 운영하는 홍성직 외과의원 원장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국립국악원 제주분원 추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4일 초록생명마을에서 열린 에코파티에서 만난 홍 원장은 "국립국악원 제주분원은 제주문화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욱이 제주에서는 많은 국내외 회의가 열리는데 회의에 참가하는 문화공연과 관광프로그램까지 고려한다면 국립국악원 제주분원은 문화, 교육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지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70이 다되도록 국악 하나만 배우고 가르쳐온 음악인이 낯선 제주 땅에서 본인의 말마따나 ‘설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이 제주를 사랑하기에 보다 많은 제주도민들이 국악의 참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번째는 제주가 가진 문화예술적 가능성이다. 송 감독은 “제주에는 유무형의 문화예술 유산이 어느 지역보다 많다. 그런 유산을 종합적으로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정비하면서 무대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려면 전문 교육기관이 필요하다. 국립국악원이 그래서 필요하다. 하다못해 전라북도처럼 도립국악원이라도 있어야 지역의 문화예술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열변은 계속됐다. 제주처럼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관광지라면 이미 운영 중인 남원, 진도, 부산 국악원과 다른 운영이 가능하다고 피력한다. 가칭 제주 국악원 차원에서 종합예술적인 수준 높은 공연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한다면, 본래 목적인 국악의 저변 확대를 넘어서서 지역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에 서양음악에 지나치게 치우진 제주지역 음악예술 환경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제주 국악원 신설은 더없는 기회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송 감독은 단지 이름값 만으로 일을 벌이지 않았다. 5년째 제주국악관현악단을 운영하면서 이미 제주에 국악의 향기를 조금씩 퍼트리고 있다.

그는 “국악에 대한 인식이 아직 낮아서 관객 동원도 어렵고 육지와는 반응도 다르지만, 국악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퓨전곡, 창작곡, 가요 등을 국악으로 변환해 선보이고 있다. 물론 깊이 있는 정악도 빠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송 감독은 제주도에 대한 사랑,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송 감독은 “제가 돈을 벌 나이는 이미 지나지 않았냐. 제주도민들에게 봉사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봉사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국악원을 만들어서 후학을 양성하고 싶은 소박한 활동”이라며 "국악은 1000년 이상 이 땅에서 내려온 예술이다. 국악에는 들으면 들을 수록 빠지는 매력이 있다. 제주도민들과 함께 더 큰 국악의 매력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Untitled-1.jpg
▲ 송 감독이 이끄는 제주국악관현악단의 공연 모습. 사진출처=제주국악관현악단 카페. ⓒ제주의소리

IMG_8771.JPG
▲ 4일 납읍리 초록생명마을에서 예지영 제주도립 교향악단 첼로수석연주자(오른쪽)와 협연을 펼치는 송 감독. ⓒ제주의소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