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 칼럼] 강정에 웃음을 찾아주길 바라며 / 신부·천주교제주교구 복음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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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강정생명평화대행진 마지막날인 지난 8월1일 강정마을 운동장에 주민과 평화운동가들의 미소를 그린 걸개그림이 설치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해군기지 건설 갈등으로 9년여 시름이 깊은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의 얼굴에 실로 오랜만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대천동 한마당체육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한 기쁨의 파안대소였지만 주민들의 가슴 속에 새겨진 생채기를 씻어내는 웃음은 아니었기에 여전히 아쉽고 안타까움이 크다.  

제주 서귀포시 대천동은 강정동을 포함해서 4개 동으로 이루어진 행정동(洞)이다. 동민들의 단합을 위해 격년마다 한마당 체육대회를 꾸준히 열어오고 있다. 올해는 10월 25일 강창학 종합경기장에서 윷놀이와 함께 5개 종목으로 체육대회를 다채롭게 준비했다. 

이번 체육대회에서 강정마을은 남녀줄다리기를 비롯해 3개 종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결과는 당연히 종합우승이다. 승패를 떠나 마을공동체의 화합과 서로의 우애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오래 전부터 마을간 경계를 넘어 선후배, 친구, 이웃형제자매들로 얽히고설킨 관계로 살아와서 인지 우승의 감격도 있었지만 서로 얼싸안고 반기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특별히 강정주민들의 얼굴에서 한 때라도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게 되어 눈물이 핑 돌았다. 

강정마을은 설촌(設村)된 지 수 백년도 훨씬 넘는 공동체다. 현재 미수(米壽)가 훨씬 넘으신 어르신에서 이제 갓 태어난 아가에 이르기까지 후손대대로 영원할 것이다. 예부터 주민들은 여러 면에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 백미는 선조들이 남겨주신 ‘혈연공동체’란 유산 때문이다. 

그들은 조상님들의 삶을 현재화(化)하여 추억하고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을공동체를 남기려는 열망이 매우 강하다. 비록 성(姓)은 달라도 모두가 삼촌이고 아우다. 누가 아프면 같이 아파해주고 기쁜 일이 있으면 마치 자기 일처럼 축하해주며 오순도순하게 살아왔다. 이에 주변 마을에서까지 제주도 최고 마을이란 뜻으로 ‘일강정’이라 칭송하며 부러워마지 않았다.

바로 이런 곳에 9년 전부터 군기지 건설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것은 주민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앗아가 버리고, 순박한 마음에 큰 돌덩이를 안겨주었다. 마을공동체가 그야말로 가뭄의 논바닥 갈라지듯 쪼개지고 깊게 패였다. 

대놓고 말하자면, 이는 어떤 이유와 명분을 대도 용납될 수 없는 국가의 잘못이다. 항간에 어떤 이들은 국책사업을 추진하다보면 불가피한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해서 만일 그런 일이 자신에게 닥친 일이었다면 어땠을까. 

여기다 더해 뜬금없이 애국심 부족(?)을 거론한다. 군기지 건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강정주민들 중에는 6.25 참전용사도 있고, 적어도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살아온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백성들이다. 
     
그렇거늘, 이제라도 정부는 주민들의 원의가 무엇인지를 성심껏 헤아려봐야 한다. 편협한 이념의 잣대와 값싼 경제적 논리를 내세워 주민들을 함부로 몰아세워선 안 된다. 조상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대의(大義)와 자존심에 더 이상 금이 가게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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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병수 신부 / 천주교제주교구 복음화실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우선 무엇보다도 추진과정에서의 절차적 잘못이 있다면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급선무다. 그런 후에 겹겹이 쌓아둔 고통의 편린들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겸손하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그들의 닫힌 마음은 서서히 열릴 수 있고 신뢰의 씨앗이 조금씩 싹틀 수 있으리라. 
    
이 시점에서 원희룡 도지사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전임 지사들과 정치인들의 행태는 반면교사다. 그들 모두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과 이해관계로 접근하다 결국 부메랑을 맞아 크나큰 정치적 타격을 받은 사실을 염두에 두자. 

솔직히 주민들은 여러모로 원 지사와 가까운 고향 선후배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누가 뭐래도 기대와 신뢰가 각별하게 보인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큰 법이다. 이럴수록 지사께서는 깨어 있는 자세로 더욱 세심하게 주민의 입장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 그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을 찾아주길 간곡히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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