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교과서 국정화로 나라가 들끓고있다. 각종 조사에서 반대 여론이 확인됐는데도 정부는 대통령까지 나서 "국정화!"를 외치고 있다. 범위를 좁혀, 제주에서는 4.3 왜곡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정화 추진의 배경과 몰고올 폐해 등을 릴레이 칼럼을 통해 짚어본다. <편집자 주>


[한국사 국정화 ③] 역사는 끊임없이 부끄러워하고, 반성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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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제주시청 일대에서 열린 제주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촛불문화제. 대학생들이 국정화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대통령까지 나서서 역사교과서를 국가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난리다. 2003년 검인정제도를 성취한 역사교과서를 다시 국가 공권력 아래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정권의 속셈은 무엇인가. 설마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을 미화하려 하겠는가? 역사교과서 문제는 교과서 문제가 아니라 정치공작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비밀스럽게 장악하고, 싸움을 부추기며 이익을 챙긴다. 지속적으로!’라는 한 마디 말 속에 그 속내가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 시대의 정치를 말하련다.

‘비밀스럽게’ - 이미 교육부가 오랜 전부터 비밀스럽게 준비한 사안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비밀 TF팀이 가동되어 좌편향 교과서를 공략하는 논리를 개발해 왔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때 ‘국정원 댓글녀’의 비밀스런 행보와 너무 닮아 있다. 정보력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등에 업고 비밀스럽게 무언가를 꾸민다는 이 음모에 몸을 떤다.

‘장악하고’ - 구국의 결단으로 나라를 살린 그 역사적 쿠데타의 배후에 일본군의 경력과 노하우가 있다고 하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들고 나오진 않을 것이다. 이승만 끼워 팔기를 하면서 독재를 미화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정권이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역사적 결단에는 공과가 있다고 물타기 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 정권이 결단한 바가 있다. 그것은 역사와 문화를 지배하는 일이다. 역사를 소유하는 일이다. 재벌과 결탁하여 공고한 정경유착의 틀을 마련하고 언론을 시녀로 삼았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학자와 지식인의 무릎을 꿇리고 역사와 문화를 장악하면 그야말로 온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행보다. 이런 장악의 음모에 몸을 떤다. 

‘싸움을 부추기며’ - 우리의 권력자들이 매일 일어나며 감사하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북한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틈만 나면 북한 때리기를 하면서 국가적 명분을 세운다. 세월호 집회든 노동 집회든 문제가 생기면 북한의 소행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역사교과서 문제도 북한의 지령을 들먹이면 먹힌다. 이따금 일본 때리기를 끼워 싸움을 부추기면 온 국민이 분노하며 일어서서 하나로 선다. 이 얼마나 손쉬운가. 남북의 단합으로 통일을 이루고 일본과 화해하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는 역사교과서는 그들에겐 정권을 단축시키는 위험한 일인 듯하다. 그들의 이런 싸움질에 몸서리를 친다.

‘이익을 챙긴다’ - 나라에 산적한 일이 많다. 가장 시급한 일은 청년실업 문제다. 시골 노인네로 영화 주인공이 된 <워낭소리>의 노인네가 한 말이 떠오른다.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과 논에 물 들어가는 모습이 생애에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우리 젊은 자식들 입에 밥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역사는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구상하는 일이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짓밟혀 5포, 7포, N포 세대가 나오고 우리의 학생들은 규격화된 지식으로 봉합된다. 그리고 1%가 99%를 지배하는 지독한 극단화 현상이 지배한다. 이런 밥상 독차지 욕심에 눈물이 난다.

‘지속적으로’ - 이 이익이 2대 3대로 이어지도록 조정하고 있다. 권력도 재벌도 모두 차세대로 상속된다. 위에서 한 말을 아래서 받아 숭배한다. 다음 정권의 선두주자도 예외는 아니다.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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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남춘 제주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교육이 잘못되어 ‘헬조선’이란 자기비하적 용어가 만연하고 있다고 말한 김무성 여당 대표의 세계관은 너무 몰상식이다. 다음 정권도 희망이 없다. 

왜 이 지옥 같은 나라가 만들어졌는가. 재벌 독식구조를 권력이 용인하고 언론이 동조하는 지배의 틀에서 젊은이들이 자학하고 있지 않은가. 염치도 없으면서 호통을 치는 정치인들이 부끄러움을 배우려면 역사책을 들여다보고 거울처럼 여기며 오늘을 반성해 볼 일이다.
역사가 무언지 아는가.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반성하는 일이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밤이 낮을 사랑하듯이. / 허남춘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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