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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38) 내 먼 곳의 숨소리 / 김문택

오그라드는 육신을 부둥켜안고

며칠을 앓고 난 후
새로운 혈액을 채우니 몸이 가볍다
숨길을 따라
새싹처럼 솟는 기운을 느낀다

저 숲의 길을 따라가면
안 가슴 속에 녹아들던
따뜻한 사랑이 보인다
헐떡거리던 삶의 길도 보인다

메마른 대지 위
피어난 꽃들에게도
조리개에서 쏟아지는 물이 필요하듯이
몸의 먼 길에도 마른 먼지 적시는
피 한 방울, 한 방울의 사랑이 필요하리라
작은 숨소리가 땅을 울리고
작은 숨소리가 하늘에 구름을 띄우면
구름 건너 먼 길로 가는
구름 건너 먼 길에서 오는
그 숨의 길에
햇빛처럼 눈부신 사랑이 필요하리라


김문택 : 『제주작가』로 등단. 시집으로 『세상으로 보내는 공중전화』, 『내 먼 곳의 숨소리』 등이 있음.

숨에도 길이 있습니다.
숨이 지나다니는 길을 사람들은 숨길이라 합니다.
숨이 길을 지나다닐 때 나는 소리가 숨소리겠지요.
숲에도 길이 있고 숲에서 나는 소리가 숲소리이듯 말입니다.
늘 곁에 있어 소중함을 모르듯 숨소리 또한 그러합니다.
만약에 그 소리가 끊기면, 내가 내 숨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면....
살아있다는 건 숨이 살아 있어 소리가 난다는 말이겠지요.

새로운 혈액을 채우지 않으면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숨소리의 소중함을 미처 모르겠지요.
피 한 방울 한 방울의 절절한 사랑을 모르겠지요.
햇빛 한 줌의 눈부신 사랑을 어찌 알까요? / 김수열

김수열: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문택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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