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40) 나의 뜰 나의 감나무 / 이재봉
바싹 마른 콩크리트 틈새에 서서
계절을 싱싱하게 걸어놓고 간다
탄생이라 적어주고 간 봄 가지에
유년의 때 묻은 바지와 터진 고무신이 걸리고
성숙이란 노래를 들려주고 떠난 여름 넓은 잎에
가출한 민달팽이 애처로운 더듬이
파란 하늘에 빵빵 주황색으로 마침표를 찍은 가을이
세상에 올 때 받은 편지 한 장 찢는 소리
덮으며 하얗게 웃는 겨울
당신의 소리가 있어
빌딩 숲이 휘갈기는 바람을
정연하게 읽는다
이재봉 :『문예사조』로 등단. 시집으로 『빈들에 서다』,『파랗게 웃다』, 『껍질에 묻다』등이 있음.
얼마 전 지인의 과수원을 찾았다가 창고 옆에 서 있는 주렁주렁 감나무와 마주 선 적 있었지요. 수백의 동그란 달덩이가 청한 하늘을 배경으로 활짝 피어 있었지요. 손에 잡히는 몇 개의 달덩이를 따다 거실에 옮겨 놓았지요. 불을 켜지 않아도 거실이 환해졌습니다. 저 달덩어리 속에는 봄길에서 만난 촉촉한 이슬 몇 점이 있고 지난 여름밤의 비바람들이 새록새록 아로새겨져 있고 수백 아니 수천 년 동안 밤하늘을 다녀 간 달덩이들이 오종종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가을 감나무를 본다는 것은 달의 이면을 훔쳐보는 일이고 당신의 뒷모습을 생각하는 일입니다. / 김수열 김수열: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 시·시낭송 / 이재봉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