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수확이 한창이어야 할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의 한 콩 밭. 이 마을 주민 이태신(65·감산리)씨가 나지막한 언덕에 걸터앉아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댔다.
같은 시간 안덕농민회에서는 현장에서 제주지역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농민의 고충을 조금이라고 헤아려 달라고 호소했다.
이씨는 올 여름 파종한 콩나물 콩이 무럭무럭 자라자 전례 없는 대풍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작물은 잘 자랐지만 수확을 못하는 상황이 한 달 가까이 이어졌다.
눈물을 머금고 폐작을 결심했다. 눈 앞에서는 트랙터 여러 대가 3000㎡가 넘는 콩밭을 순식간에 갈아엎었다. 잘 자란 작물이 트랙터 장비에 갈려나가자 이씨가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이씨는 과거 큰 수술을 받았지만 흙을 떠나지 않았다. 동네에서 게으르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 몸이 불편해 남들이 하루에 처리하는 일을 나흘에야 끝내지만 묵묵히 일해 왔다.
4년 전 9000㎡ 땅에 양파를 심었지만 1kg당 가격이 150원까지 곤두박질쳤다. 21t을 생산했지만 인건비는 커녕, 종자값도 건지지 못했다. 남은 건 수 천만원의 빚더미였다.
이듬해 8000㎡ 밭에 감자 농사를 지었지만 장마가 20일이나 일찍 찾아오면서 밭 전체가 썩은 감자밭으로 변했다. 그나마 건진 감자도 썩어 전분용 감자로 팔아 넘겼다.
이씨는 “올해 콩 농사는 대풍인줄 알았다. 비 날씨가 이어질 줄 누가 알았냐”며 “썩어가는 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열심히 일할수록 빚이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늘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어 “늙은 농사꾼이 농사만 잘 지으면 되는 것 아니냐. 우리가 마케팅하고 판로도 개척해야 하냐”며 “손주들에게 책가방은 못 사줘도 자식들에게 빚은 물려주지 않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전국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제주 콩나물 콩의 풍작과 지난해 재고량까지 겹치면서 가격 폭락 사태가 현실화 되고 있다. 최근 비 날씨로 수확까지 못하면서 곳곳이 아우성이다.
올해 산 제주지역 콩 재배면적은 6409㏊로 지난해 6062㏊에 비해 5.7% 증가했다. 당초 올해 제주지역 콩 수확량은 평년 6000t 대비 30%이상 증가한 8000t으로 예측했다.
문제는 11월 비 날씨가 이어지면서 7~8월 파종한 콩 수확 자체가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실제 제주시 기준 11월 중 비가 내리지 않은 날은 단 8일에 불과했다. 사흘 중 이틀은 비가 내렸다.
수확을 위해서는 비가 그친 다음에도 사흘간 햇볕에 말려야 한다. 비날씨가 이어지면서 콩이 썩고 알맹이에도 주름이 생기면서 상품성이 크게 떨어졌다.
2014년 제주산 콩 수매가격은 40kg 한 포대에 22만원이었지만 올해산 콩 가수매 값은 10만~12만원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 가수매 가격 15만원과 비교해 최대 30%가량 떨어졌다.
제주산 콩 가격 폭락은 재고물량이 700t에 달하고 대기업의 매수가 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산 콩의 90% 이상이 콩나물 콩이다. 제주는 국내 콩나물 콩의 80%를 공급하고 있다.
농민들의 하소연이 이어지자 제주도는 콩나물 콩 가격안정 차원에서 현재 농협에 보관중인 2014년산 콩 714t을 조기 처리하기 위해 6억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수급조절을 위해 정부수매고시 가격과 가공용처리에 따른 가격 손실 차액의 50%를 도비에서 긴급 보전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정부는 콩 수매가격으로 40kg 가마당 16만680원을 고시했다.
강우식 농협중앙회 제주지역본부 경제지원단장은 “11월 비 날씨로 콩의 수확량을 예측하기 조차 힘들어졌다”며 “콩나물 콩 수요마저 줄면서 재고량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강 단장은 “지난해 생산한 재고량 700여톤은 올해 연말까지 처리할 것”이라며 “올해산도 최대한 처리해서 최저가격 지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