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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교포 시인 김시종 선생은 최근 펴낸 회상기 <조선과 일본에서의 삶-제주도에서 이카이노로> 일본 아사히신문사가 선정하는 올해 제42회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郎)’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지난 11월 일본 오사카시 쯔루하시 국제시장의 어느 식당에서 <제주의소리>와 인터뷰 당시 선생의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재일동포 김시종 시인, 회상기 <조선과 일본에서의 삶> 오사라기 지로상 수상

재일동포 시인 김시종(87,金時鐘) 선생. 

그에게 ‘제주4.3’은 얽매인 옥쇄처럼 평생을 괴롭히면서, 동시에 자신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동력원이 됐다. 한국과 일본, 그 사이에서 ‘경계인’으로 살아가며 4.3이란 끈을 놓지 않은 문인에게 일본 문단이 경의를 표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사는 올해 제42회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郎)’상 작품으로 김시종 선생이 펴낸 <조선과 일본에서의 삶-제주도에서 이카이노로>를 선정했다고 20일 발표했다. 

오사라기 지로상은 일본 작가 오사라기 지로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아사히신문사가 1974년 그의 이름을 빌려 창설한 문학상이다.

아사히신문사는 형식을 불문하고 일본어로 쓴 뛰어난 산문 작품 가운데 ▲인간 정신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포함한 작품 ▲역사·현대 문명 비판으로서의 의의가 높은 작품에게 매년 오사라기 지로상을 수상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大江 健三郎), 시바 료타로(司馬 遼太郎)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일본의 대문호들도 이 상을 받았다. 제1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인 소설가 김석범 선생도 <화산도> 작품으로 1984년 제11회 상을 수상했다. 

김시종 선생의 <조선과 일본에서의 삶>은 일종의 자서전이다. 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어머니 고향인 제주도, 광주를 거쳐 1948년 4.3에 휘말리며, 1945년 5월 일본으로 밀항해 지금껏 살아온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냈다.

아사히신문은 “회피하지 않고 토해낸 지나온 세월”이라는 기사 제목으로 김시종 선생의 수상 소식을 보도했다.
▲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김시종 선생의 수상 소식. (사진출처=아사히신문 인터넷 홈페이지) ⓒ제주의소리
▲ 지난 11월 <제주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오사라기 지로상 수상작 <조선과 일본에서의 삶-제주도에서 이카이노로>와 책 소개 기사를 보여주는 김시종 시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아사히신문은 기사에서 “시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스무 살 나이에 청산가리를 품고 일본으로 밀항, 부모도 고향도 버리고 ‘자이니치’ 조선인이 됐다. 일본에서 계속 살고 있는 그는 청년기의 인생의 분기점을 정면으로 마주하기까지 67년이란 세월을 거쳐 이제야 책으로 엮을 수 있었다”고 수상자를 소개했다.

특히 <조선과 일본에서의 삶>에 대한 일본 문단의 평을 빌려 “시인의 문장에는 시가 거의 없다. 자신의 시업에 대해서도 말한 바가 드물다. 무엇보다 여분의 말이 한 마디도 없다”며 “쓰라린 심정을 본래보다 아주 세밀하고 정확한 묘사로 말하고 있다”고 극찬을 보냈다.

4.3과 자이니치의 삶을 시로서 풀어낸 선생은 일본에서도 이미 문학적 수준을 인정받았다. 제40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1986년, 재일의 틈에서), 오구마 히데오 상 특별상(1992년, 원야의 시), 제41회 다카미 준 상(2011년, 잃어버린 계절) 등 굵직한 상을 거머쥐었다.

매년 일본에서 가장 우수한 시인에게 주어지는 다카미 준(高見順) 상의 첫 재일한국인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선생은 아사히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방의 한 구석에서 서투른 일본어로 시를 써 온 사람의 추억이야기가 산문의 커다란 상을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밤송이의 가시 덩어리 같은 (제주에서의) 아픈 추억은 가슴 속 깊이 묻었다. 볼품없는 지난 세월을 쓸 생각은 없었다”면서 “카타르시스의 어원은 토사, 배출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실감하고 있다. 마음이 무거운 회상기였는데, 섬(제주도)의 역사에 도움이 돼 다행”이라고 제주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제42회 오사라기 지로상은 일반추천을 포함한 후보작의 공모, 예선 전형을 거쳐 심사위원 5명의 협의로 최종 선정됐다. 시상식은 내년 1월 29일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시종 선생이 펴낸 시집으로는 <지평선>(1955), <일본풍토기>(1957), <장편시집 니이가타>(1970), <이카이노 시집>(1978), <화석의 여름>(1999), <경계의 시>(2005), <잃어버린 계절>(2011) 등이 있다. 번역 시집으로는 <윤동주시집 하늘과 바람과 시>(2004), <재역 조선시집>(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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