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스테 네팔, 희망의 르포]②양철판 임시교실, 다시 웃는 아이들

대지진 참사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 소중한 가족도, 삶의 터전도 모두 잃었다. ‘신의 나라’ 네팔은 그렇게 울고 있다. 지진 피해 8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백만 명의 이재민들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와 사단법인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제주네팔커뮤니티가 공동으로 지난 11월8일부터 17일까지 열흘간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중북부에 위치한 신두팔초크(Sindhupalchok) 지역을 찾아 구호활동을 폈다. 신두팔초크는 가장 큰 피해지역 중 한곳이다. <제주의소리>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의 기부금과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제주네팔커뮤니티가 지진피해 나눔운동 모금 등을 통해 모은 성금 등 약 2000만원을 네팔 신두팔초크 지역의 초·중·고 다섯 개 학교를 복구하는데 지원했다. 네팔 현지에 전한 아름다운 제주의 나눔활동을 송년기획으로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글> 

이곳에 온 지도 6일째. 일정이 꼬여버렸다. 네팔 최대의 축제 중 하나인 디왈리(燈明祭[등명제], Diwali)로도 알려진 디하르 축제 기간과 겹친 것이다. 명절과 다름없는 분위기라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결국 예정보다 이틀이나 더 늦춰졌다.

짐을 싣고 이동할 트럭도 수소문 끝에 겨우 빌렸다. 서둘러야했다. 하나라도 더 싣기 위해 몇 명의 장정이 달라붙었다. 마치 블록 쌓기를 하듯 아이들에게 나눠줄 옷과 학용품을 빼곡하게 채웠다. 마지막으로 책상과 의자, 칠판까지 짐칸에 가득 실었다.  

행선지는 카트만두에서 북동쪽으로 약 65km 떨어진 신두팔초크(Sindhupalchok). 지난 5월 지진의 최대 피해 지역 중 한곳이다. 가는 길은 몹시 험난했다. 전형적인 산악지대의 험로였다. 짐을 잔뜩 실은 우리의 트럭은 계단식 밭과 깎아지른 절벽 옆을 아슬아슬하게 내달렸다. 2차선 너비도 되지 않아 맞은편에서 대형 차량이 올 때면 마음을 졸여야했다. 지붕까지 사람들로 가득 채운 버스가 이곳을 지나갈 땐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아찔했다.

 # 대지진 휩쓴 지난 4월로 멈춰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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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시간이 대지진이 일어난 지난 4월에 멈춘 것처럼 손도 대보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제주의소리 김제남 PD

일단 베이스캠프로 신두팔초크 초입 멜람치(Melamchi)읍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피해학교 방문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이미 이틀이나 지체된 탓에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머리를 맞댔다.

이곳에서 언뜻 둘러본 멜람치의 모습은 여전히 지난 4월에 멈춰있었다. 지진이 휩쓸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부서진 건물들은 여전히 복구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으스러지고 무너져 내린 벽돌과 금이 간 콘크리트, 건물 잔해 더미들 사이에서 사람들은 태연하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이제 학교를 향하는 길. 비포장도로는 좁고 울퉁불퉁했다. 카메라를 계속 잡고 걷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바로 옆은 수 백 미터의 낭떠러지다. 차량으로, 두 발로 걷기를 두 시간 남짓, 드디어 비피초등학교에 도착했다. 다들 따뜻한 미소로 환대했지만 우리 일행은 미소 짓기가 힘들었다. 처참한 광경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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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의 모습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만 건물. 무너진 잔해가 지난 4월 대지진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제주의소리 김제남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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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가 무너진 후 임시로 쓰고 있던 가건물. ⓒ제주의소리 김제남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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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가 무너진 후 임시로 쓰고 있던 학교 건물. ⓒ제주의소리 김제남 PD

임시로 대나무를 엮어서 가건물을 하나 만들어 놓았고, 양철 지붕으로 반원을 만들어 1, 2, 3학년 교실을 마련했다. 그 옆에는 부서진 건물의 파편들이 당시의 참혹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진 당시 상황이 머리에 그려졌다. 군데군데 겨우 버티고 서 있는 벽에 걸려있던 칠판과 학습용 알파벳 포스터가 이곳이 교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지금 보더라도 이토록 먹먹해지는데, 그 공포가 얼마나 컸을까. 지진 당시 학교가 무너지는 장면을 보기만 해야 했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젊은 교장의 배웅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 새 칠판과 책걸상, 다시 피는 꿈

네팔에 온지 7일째인 15일 오전 8시,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은 이곳의 일주일이 시작되는 일요일이다. 네팔은 토요일이 우리나라의 일요일과 같다. 오늘 학교를 찾으면 아이들도 만날 수 있을 터였다. 아이들을 만날 설렘과 동시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제 겪었던 그 험난한 낭떠러지 옆을 차로 이동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긴장감이 몰려왔다.

일종의 안도감과 아슬아슬함 사이. 이 위험한 산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무너질지 모르는 금이 간 건물 사이에서도 평온하게 웃으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해맑게 웃는 아이들이 우리 일행에게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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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진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천만다행히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아이들의 미소는 곧 네팔의 희망을 의미하는듯 했다. ⓒ제주의소리 김제남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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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이들을 보자 경계하는 듯했던 아이들의 표정. 선물 보따리에 금세 미소를 띠며 우리 일행을 반겼다. ⓒ제주의소리 김제남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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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철 건물에 칠판을 새로 걸고 책걸상도 갖다놨더니 예전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제법 교실 분위기가 갖춰졌다. ⓒ제주의소리 김제남 PD

어제 들렀던 비피초등학교에 다시 도착했다. 휴일이라 텅 비었던 어제와는 달랐다. 100여명의 학생들이 나란히 앉아 우리를 반겼다. 학교 측에서 성대한 환영행사를 준비했다. 우리를 맞이한 아이들은 다소 얼떨떨해 하면서도 연신 눈을 반짝였다.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제주네팔커뮤니티 그리고 <제주의소리>의 로고가 새겨진 현판이 양철로 된 임시건물에 달렸다. 학교 관계자가 감사의 뜻을 담은 목걸이를 걸어주자, 아이들의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이윽고 아이들에게 이 선물을 나눠줄 차례가 돌아왔다. 선물 포장을 뜯는 광경을 보며 들뜬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외지인들이 전한 뜻밖의 선물에 아이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옷을 입혀주고 학용품을 전달했다. 처음엔 어색해하다가도 금세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데 꼭 필요한 칠판과 책걸상이 교실에 들어서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다시 웃는 아이들. 땅은 무너졌지만 이곳 아이들의 꿈은 무너지지 않았던 것이다. <③편에 이어집니다> / [ 네팔 현지취재 = 김제남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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