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공항대란 막자]③ 2박3일 '사라진' 원 지사 "재발하면 도지사 사표"

1월 기록적인 한파로 제주공항은 장장 42시간동안 항공기 이착륙을 금지하는 사상초유의 비상상황을 맞았다. 사흘간 관광객 7만여명의 발이 묶이고 수천여명이 공항에서 노숙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제주도와 한국공항공사는 대응 매뉴얼 부재로 즉각적인 대응에 나서지 못했다. 저비용항공사의 미숙한 대처로 승객들 항의도 잇따랐다. <제주의소리>는 설 연휴를 맞아 공항대란의 교훈과 향후 과제를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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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설주의보와 강풍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1월23일 오전 11시30분 일본 출장을 취소한 원희룡 제주지사가  제주도청 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모습. ⓒ제주의소리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로 제주공항이 42시간 폐쇄되고, 제주를 찾은 관광객 9만여명의 발이 묶이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지만 제주도정을 책임지는 원희룡 지사는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항공대란이 발생한 지 10여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뒷얘기가 무성하다. 

32년만의 폭설과 강풍으로 관광객 수천명이 제주국제공항에서 종이상자를 깐 채 풍찬노숙을 했다. 공중파를 비롯한 중앙언론들은 이 소식을 1월24일부터 25일까지 톱뉴스로 쏟아냈다. 

한마디로 국가적 비상 사태에 준하는 엄중한 시기에 원희룡 지사는 항공기 운항이 재개되고서야 제주공항에 모습을 보이는 실기(?)를 범했다.

호사가들은 2박3일 동안 원희룡 지사가 보이지 않자 폭설에 실종(?)됐다고 했고, 그 기간에 제주에 없었던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도대체 원희룡 지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원 지사는 1월23일부터 25일까지 2박3일간 재일본제주도민협회 신년인사회 참석차 일본 도쿄와 오사카 출장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제주지역에 대설경보가 발령된 23일 오전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다시 내려 제주도 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고, 이곳에서 폭설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는 공무원들에게 폭설과 강풍 대비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는게 제주도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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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3일 오후 5시부터 25일 오후 3시까지 제주공항에서는 관광객 수천명이 노숙했다. ⓒ제주의소리
23일 오후 5시부터 폭설과 강풍으로 제주공항은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됐고, 수천명이 공항에 대기하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린 제주공항은 아수라장이 됐다. 한국공항공사 제주본부와 제주항공관리청, 제주도는 속수무책이었다. 

공항이 폐쇄된 23일 오후 5시부터 밤 12시까지 제주도와 공항공사가 공항 24시간 개방과 난방, 모포·식음료 제공 등의 문제로 협의를 벌이고 있었다는 소식은 나중에 알려졌다.

그  사이 일부 관광객들은 폭설을 뚫고 숙소를 찾기 위해 눈보라를 헤치며 다녔고, '택시비 10만원', '종이상자 1만원'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24일 0시부터 제주공항에 남아있던 1000여명에게 빵과 음료가 모포 등이 제공됐다.

날이 밝은 후에는 이재열 제주경찰청장을 비롯한 도내 기관장들이 제주공항을 방문해 자원봉사자를 격려하거나 관광객을 위로했다. 

그럼에도 원 지사는 24일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재난대책본부에도 들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 지사는 25일 오후 3시부터 항공기 운항이 재개된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에 도청 기자실을 방문, 뒤늦은 해명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일부 언론이 원 지사의 '폭설 행보'에 관한 취재에 들어간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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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희룡 제주지사가 항공기 운항 재개 소식이 알려진 1월25일 오후 3시 제주공항을 방문, 자원봉사자를 위로하고 있는 모습. ⓒ제주의소리
결론적으로 원 지사는 눈 폭탄 3일 내내 제주에 있었지만, 대부분 집무실에서 머물렀다.

뒤늦게 원 지사는 "(공항 방문 시점과 관련해)실기한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도 "한국공항공사와 제주공항 24시간 개방 문제, 관광객들에게 빵과 음료를 제공하는 문제 등을 협의하느라 (공항 방문이)여의치 않았다"고 해명했다.

원 지사의 공항 방문을 놓고는 참모진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고 한다. 도정 책임자로서 당연히 제주공항을 찾아 관광객을 위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당장 도지사가 공항에 간다고 해서 뚜렷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데 성난 관광객들에게 혹시 모를 불상사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는게 제주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전언이 사실이라면 이 의견을 제기한 참모들의 안이한 상황 인식은 혀를 찰 지경이다. 수만 국민의 안위 보다는 도지사의 안위만 챙겼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차 대권을 노린다는 지사인데도.

어차피 실기한 마당에 24일 뒤늦게 공항을 찾을 경우 언론플레이로 잘못 비쳐질 수 있어서 방문 일정을 미뤘다는 얘기도 있다. 원 지사는 평소 언론플레이에 능하다는 평가가 많다.  

원 지사의 2박3일 행보에 대해 일각에서는 '하늘이 준 기회'를 걷어찬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제주정가 한 인사는 "도지사가 집무실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고 하지만, 도정은 공백상태였다"며 "말로는 대권주자라고 하면서 9만명의 난민을 방치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평소 언론 노출을 중시하는 원 지사의 스타일 상 전국 언론의 관심이 제주공항에 쏠려있는 상황에서 원 지사의 행보는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다"며 "정치 감각이 떨어진 것인지, 말못할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의아해했다. 

원 지사도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여러차례 자책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1일 정례직원 조회에서 원 지사는 "행정에서 미흡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도지사부터 다시한번 점검하고 반성하면서 다시는 관광제주의 안전문제가 대두되지 않도록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4일 제주웰컴센터에서 열린 2016년 간부워크숍에서도 원 지사는 "이번 공항 사태에 대해 뼈아프게 반성한다. 공항공사, 국토부와 싸워서 나부터 몸을 던졌어야 하는데 아쉽다"며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면 도지사가 사표를 내야 한다"고 자책했다.

정치적 감각의 유무를 떠나 제주도정을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온 섬이 고립되고, 이로인해 수만명의 국민이 불편을 겪는 상황에서 너무 늦게 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원 지사의 처신은 두고두고 뒷말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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