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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귤이 매달린채 죽어가는 감귤나무들. ⓒ제주의소리
가격 하락, 기상 악화에 상인들 수확포기...“나무 살리려면 열매 따줘야”

[기사 보강 : 14시20분] 서귀포에서 감귤농사를 짓는 A씨는 요즘, 근심이 가득하다. 포전 매매, 일명 밭떼기로 상인에게 넘긴 노지 감귤 나무에 설날이 지나도록 열매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확을 제때 하지 못한 감귤나무들이 시름시름 죽어가면서 올해 농사까지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A씨는 “전정도 하고 다시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감귤 농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서귀포 읍면 지역 곳곳을 다니다보면 열매가 매달린 채 방치돼 있는 감귤밭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상당수는 농가가 상인에게 밭떼기로 넘긴 곳이다.

상인들이 감귤을 따지 않고 방치하면서 나무까지 말라죽어가고 있다. 가격 하락에다 유례 없는 한파, 폭설이 연이어 닥치면서 수확을 포기한 것이다. 

기상 이변 등의 이유로 따는 시기를 놓쳤거나, 감귤 값 반등을 노리고 일부러 수확을 늦추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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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귤이 매달린채 죽어가는 감귤나무들. ⓒ제주의소리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음 농사를 준비해야 하는 농민들의 입장이다. 앞으로 전정, 간벌 등을 준비해야 하지만 열매가 달린 상태에서는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

하우스가 아닌 노지감귤 기준으로, 농가들은 3월이면 감귤나무에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비료를 주거나 전정 작업에 나서야 한다.  

4월이면 날이 따뜻해지면서 새순과 꽃이 나오는 시기라 병해충 방제에 집중한다. 2월 중순을 앞둔 지금까지 밭에 열매가 달려있다면 이런 과정들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 자칫 한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서귀포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11일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출장, 지도를 다니다 보면 밭떼기 문제로 고심하는 농가들이 제법 많다. 정확한 피해 사례는 파악 중이지만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기온이 오르는 3월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문제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금도 센터 직원들이 나서서 도움을 주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일단 나무를 살려야 농사를 또 지을 수 있으니 농가들은 답답하겠지만 감귤 수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근본적으로는 밭떼기 거래가 사라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제주감귤농협 관계자는 “단순히 볼 상황이 아니다. 정확하지 않지만 서귀포지역 노지감귤 농가의 10% 이상이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예측이 어려운 기상 이변이 주요 원인이기도 하지만 유통질서를 어지럽히는 밭떼기는 없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3월이 지나면 감귤나무가 더욱 빠르게 고사할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열매를 따고 질소가 포함된 요소비료를 투입해 영양분을 보충시켜야 한다”면서 “또 가지를 절단하는 전정을 피하면서 최대한 나무의 생기를 보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어쩔 수 없이 밭떼기로 감귤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다. 일손 구하기가 어려운 마당에 밭떼기는 일종의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감귤 농가 오모씨(토평동)는 “밭떼기 하는 농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나이가 많은 분들이다. 계약서도 제대로 작성하지 않고 넘기는 경우가 많아 이번처럼 곤란을 겪기도 한다”며 “일손 구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인데 밭떼기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제도적인 틀 안에서 밭떼기 거래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13년 3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밭떼기 거래에 대한 법적인 근거가 마련됐지만 현재는 양파와 양배추만 해당된다.

제주도는 양파, 양배추뿐만 아니라 감귤도 밭떼기 거래 때 표준계약서를 활용하도록 농가들에게 홍보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표준계약서가 얼마나 널리 사용되는지 알 수 없다.

정부가 정한 표준계약서는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http://law.go.kr)에 접속해 행정규칙' 메뉴로 들어가 '포전매매'를 검색해 내려받을 수 있다. (표준계약서 양식 다운로드: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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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제공하는 포전 거래(밭떼기) 표준계약서.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읍면사무소, 동주민센터에서 문의해도 구할 수 있다. ⓒ제주의소리

결국 장기적인 안목에서 밭떼기 거래를 근절하는 유통구조 일대 혁신과 함께 눈앞의 현실을 고려한 제도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현재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밭떼기 품목(양파, 양배추)에 감귤도 포함시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도내 감귤농가의 절반 이상이 밭떼기를 한다고 본다”며 “감귤 품목의 경우 표준계약서가 강제력이 없지만 얼마든지 참고해서 사용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농가들이 표준계약서를 더욱 많이 알고 사용하도록 홍보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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