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㊱> 이런 군인이 있다면 미사일도 두렵지 않다

#1.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세계가 시끌벅적하다. 김정은의 무모한 전쟁놀이는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해 가고 있다. 서른 한 살(?)의 철부지 동키호테가 벌이는 위험한 도박으로 세계가 떨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필자는 ‘때가 차매…’라는 성서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천방지축, 구제불능 독재자의 마지막 발악은 몰락이 가까워졌음을 예감케 하는 것이다.

#2. 1972년 신병훈련소를 졸업하고 백골부대(3사단)에 갓 도착한 나는 전입신고식에서 사단장 박정인 장군의 훈시를 들었다. 훈시 도중 갑자기 그가 질문했다.

“2차 대전 중에 독일군이 쏘련을 침공했을 때, 스탈린이 자국민들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는 사람…?”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서 외쳤다.
“슬라브 민족이여, 단결하라!…입니다”
그가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면서 부관에게 명령했다.
“저 놈, 휴가 보내!”

아무 빽도 없고 제주도 촌놈인 내가 훈련소 동기 중에 가장 먼저 특별휴가를 받은 사유가 이렇다. 사단장의 훈시는 연설이 아니라 차라리 웅변이었다. 6.25 당시 백골부대의 혁혁한 전과에 대해 사자후를 토한 다음, 자신은 병영의 야전침대에 늘 권총을 걸어놓고 잔다면서 북진통일을 강조했다.

#3. 내가 백골부대에 전입한 이듬해인 1973년 3월 7일 DMZ(비무장지대) 표지판 보수작업을 하던 아군에게 북한군이 기습사격을 하자, 사단장은 즉각 적 진지를 향한 포격을 지시했다. 이 포격으로 30명의 북한군이 사망했다. 일촉즉발의 비상사태에 돌입한 장병들은 완전군장으로 대기하면서 명령만 떨어지면 출동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최전방의 우리 부대원은 모두 죽게 될 거라는 불안과 공포가 우릴 짓누르고 있었다. 최후의 순간에 떠오를법한 그리운 얼굴들-부모님, 형제, 친구, 짝사랑했던 기집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4. 그러나 한 달 뒤, 북한군의 도발에 과감하고도 신속한 응징을 가했던 사단장은 상부의 허락 없이 임의로 대응사격을 했다는 이유로 보직 해임됐고 5개월 후에는 강제 예편(전역)되었다.

쫄병의 눈으로 사단장을 봤을 때, 그는 매우 호전적이고 용맹한 군인으로 외포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를 새롭게 평가했고 “대한민국에 이런 지휘관 몇 명 쯤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박 장군은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직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군 지휘관은 상부의 눈치만 볼 게 아니라 교전상황에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요즘 군인답지 못한 장군이 너무 많다”고 일갈했다.

#5. 어떤 사람이 군인다운 군인일까? 전통적인 분류법으로는 장수를 용장·지장·덕장으로 나누었다. 세 가지 덕목을 다 갖춘 사람이 훌륭한 장수이겠으나 완전한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군대에는 용장도 지장도 덕장도 다 필요한데 최소한 투철한 군인정신의 소유자가 지휘관이 돼야 마땅할 것이다.

한국 군대에서 1990년대 들어 정책통들이 군 수뇌부를 독차지하면서 강골 야전군인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정치나 행정에 밝은 군인은 정부 부처에서 일하게 하고 박 장군 같은 진짜 군인들을 야전에 배치해야 한다. 미국 영화 <패튼>을 기억한다. 2차대전 때 전차부대 지휘관으로 이름을 날렸던 패튼 장군도 강골이다. 그와 육사 동기인 마셜 장군은 약골이지만 지장으로서 참모로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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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사람에게는 저마다 깜냥, 쓰임새, 그릇이 있기 마련인데 그릇에 맞는 직책을 부여하는 게 임명권자의 안목이요 통찰력이다.

#6.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마당에 그 어느 때보다 이 나라를 굳건하게 지킬 군인다운 군인이 절실한데 그 표상인 박정인 사단장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 맥아더 장군이 그랬지.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고…. 80대의 노병, 우리 시대의 거인 박정인 장군은 죽지 않고 우리들 기억의 샘 속에서 ‘진짜 사나이’로 거듭 솟아날 것이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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