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UAE 사디야트와 일본 나오시마가 제주에 주는 교훈은?

작년부터 여기저기서 ‘문화예술의 섬 제주’라는 말이 들려온다. 도지사의 공약이라는 홍보가 나오는가 하면, <‘제주 문화예술의 섬 조성 전략모색’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언론은 기대하는 만큼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질책이다. 원도심 문화예술프로젝트에 투자한 만큼 활성화가 되지도 않고, 전체적인 컨트롤 타워도 없고, 예술단체도 미온적이라고 비판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재고해야 할 것은 ‘문화예술의 섬’의 방향이다. 현재 들리는 소식들은 모두 도내의 문화예술향유의 기회를 강화하고 원도심 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러다가 ‘문화예술의 섬’이 ‘관광의 섬’ 제주처럼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구호에 그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문화이주민이 증가하면서 변모한 제주의 모습을 재정립하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문화예술의 섬’을 확장하고, 기존의 문화예술생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또한 비슷한 개념을 표방한 다른 지역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제주가 내걸 수 있는 모험적인 예술은 무엇인지, 질적으로 성장한 글로벌 문화관광의 핵심지로 부각될 수 있는 점은 무엇인지 검토할 때이다. 왜냐하면 ‘문화예술의 섬’이라 불리거나 표방한 다른 지역이 없었다면 제주 역시 이 모토를 내걸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남서쪽에 위치한 섬 나오시마는 1987년부터 ‘예술의 섬’으로 성장하고 있다. 조용한 어촌이었던 마을에 인구가 줄고, 산업시설만 섬을 점유하던 1980년대, 베네스 사의 회장 후쿠타케는 섬의 남쪽 땅을 구입한다. 저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고용해 섬에 미술관을 짓고, 마을의 빈집에 예술 프로젝트를 입히기 시작했다. 섬이 가진 자연과 풍관을 지키고자 안도는 지하로 파고드는 미술관을 지었고, 그 안에는 건물과 호흡하는 예술작품을 설치했다. 인상파 화가 모네의 <수련>, 제임스 터렐의 빛 설치 등 유수한 현대예술가의 작업이 그 안에 들어갔다. 나오시마는 최근에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숙박시설이 보강됐고 이우환 미술관이 들어섰는가 하면, 나오시마 섬 인근에 있는 다른 섬들로 프로젝트를 확장해서 이누지마와 테시마 섬에도 예술작품이 설치됐다. 
나오시마의 예술 이제는 이 섬의 상징이 되버린 야요이 쿠사마의 작업.JPG
▲ 나오시마의 예술, 이제는 이 섬의 상징이 되어버린 야요이 쿠사마의 작업.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나오시마가 유명하게 된 것은 미술 관람, 숙박, 휴식을 모두 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해하기 힘든 현대미술을 고도로 정련된 공간에서 보여주면서도, 음식, 잠자리는 섬세하기 그지없는 서비스로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소수의 현대미술 매니아 층만 찾는 곳이었다. 당시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은 손님의 평온함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그림자처럼 보이지 않게 움직이면서 신발정리, 음식대접, 실내온도 조절 등을 배려하던 서비스를 종종 언급한다. 자연의 소리 이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필요할 때 부르면 어디선가 스탭이 나타나는 서비스는 당시로서는 놀라울 정도였다고 한다. 나오시마의 사례는 일본이라는 틀에 빠지지 않고 세계의 예술가들을 포용할 수 있었던 한 기업가의 비전과 고급예술, 일본 특유의 서비스 정신이 만나서 만든 낙원과 같은 ‘문화예술의 섬’이다. 

문화예술을 모토로 내거는 도시와 국가도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지역경쟁력 확보와 마케팅 차원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문화예술을 도구로 삼아 그 도시와 지역을 활성화시키려는 의도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중동에 건립되고 있는 사디야트 섬 프로젝트이다. UAE(아랍 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관광청이 주도하는 계획으로 문화시설, 마리나, 리조트, 호텔 등이 들어선 종합관광휴양예술 섬을 지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디야트 문화지구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그리고 영국의 대영박물관이 협력한 자예드 국립박물관, 대형 공연센터를 유치하고 현재 건물을 건축 중이다. 구겐하임 아부다비는 스페인의 빌바오에 위치한 구겐하임 빌바오처럼 저명한 캐나다 출신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했고 2006년 시작돼 2017년 완공될 계획이다. 공연센터는 서울의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가 참여하고 있고, 장 누벨이 루브르 아부다비를 설계한다. 완성된 모습은 마치 신기루처럼 황홀한 건축과 문화예술의 향연일 것 같다.
사디야트 문화지구의 조감도. 왼쪽 하단의 복잡한 구조물이 구겐하임 아부다비이다. 출처 아부다비 www.tdic.ae.jpg
▲ 사디야트 문화지구의 조감도. 왼쪽 하단의 복잡한 구조물이 구겐하임 아부다비이다. 출처=www.tdic.ae ⓒ제주의소리

이 사례는 유럽과 미국의 유수한 미술관과 박물관의 분관 등 괄목할만한 문화시설을 한곳에 결집해서 글로벌 문화지구를 표방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시설을 유치할 수 있는 자본력, 설득력도 놀랍지만 세계의 문화를 수용해 한 자리에서 선보이려는 개방적인 태도도 부러운 데, 자본이 빠르게 움직이며, 문화를 매개로 성장과 변화를 모색하는 글로벌 시대에나 볼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제주는 사디야트 섬처럼 대규모 국가차원의 재정과 계획을 세우기에는 재원확보가 어렵다. 이미 제2공항, 신항구와 같은 큰 계획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오시마 섬처럼 거대자본을 보유한 자본가 1명의 낙원이 될 수도 없다. 이미 제주의 문화예술계를 지탱하고 있는 수많은 주체들이 구축한 자산이 크고, 현재 진행되는 크고 작은 자생적 프로젝트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 두 사례에서 배울 점은 바로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력, 창의력을 토대로 앞서갈 수 있는 기획력이다. 모든 것이 빨리 변하는 우리 문화의 속성상 ‘문화예술의 섬’ 화두도 곧 사라질지 모른다. 그전에 머리를 맞대고 글로벌 문화예술계에 기여하고 자랑할 수 있는 2-3가지 획기적인 시설이나 프로젝트를 만들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필자 양은희는...

169487_192547_5404.jpg
중고교 시절 미술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영어교육학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예술과 철학에 대한 호기심을 포기할 수 없어서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까지 공부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졸업한 뒤 서울, 뉴욕 등 세계를 다니며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그동안 큐레이터, 갤러리 디렉터, 프로젝트 매니저, 교수 등 미술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하면서 예술과 사회의 역학관계를 체험하고 연구하고 있다. 11년간 체류한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조명한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를 저술했으며, 『개념미술』(2007)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는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를 돌면서도 언제나 마음은 고향을 향해 있었다. 특히 요즘 문화예술의 섬으로 떠오르는 고향 제주를 주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를 통해 글로벌 시대의 제주의 문화예술 비전을 고민하는 일은 또다른 고향사랑의 시작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