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예술 본질 확인시켜준 아스퍼거스 증후군 고동우씨


미술의 순기능 중의 하나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아픈 사람부터 멀쩡한 사람까지, 그리고 피부색깔이나 키 크기에 상관없이,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화병에 걸린 사람도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도 아무런 장애물 없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아스퍼거스 증후군을 가진 한 청년이 미술에 입문한 것도 바로 개방적인 예술의 힘 덕택이었다. 좋아하던 골프를 접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만난 창작의 즐거움은 다시 그에게 자신감을 안겨주었고 드디어 <새로운 시작: 고동우전>을 열게 되었다. 

갤러리 비오톱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는 아스퍼거스 증후군이 천재들이 앓는다는 병이라는 속설을 증명하는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보통 사람이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몰두하는 이 병의 특성 때문인지 작품의 성숙도가 놀라울 정도이다. 본격적으로 미술선생 아래서 배운지 2년,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 애완동물을 그린 회화, 드로잉, 도자기뿐만 아니라 스티커로 제작하여 전시하고 있고, 찾아오는 관람객에게 제빵 기술을 십분 발휘한 빵을 대접한다. 전시공간에 펼쳐진 고동우의 세계는 예술의 상상력이 길들여지지 않는 상태와 몰입의 시간 속에서 일취월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불어 손으로 무엇인가를 그리고 만드는 일이 한 사람을 얼마나 변하게 하는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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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앞에 선 고동우 작가.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예술이 개방적이며, 모두에게 평등하기는 하지만 현대의 미술계에 들어가면 평가의 잣대를 피할 수 없다.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 무슨 재료를 사용하는지, 어디서 전시한 경력이 있는지, 시시콜콜 족보를 캐내어 평가한다. 그 평가는 바로 미술시장에서의 가치를 매기기 위한 작업이며, 다른 예술가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드러내려는 과정이기도 하다. 평화와 공존을 외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미술계란 전문적인 미술교육과 미술이론교육을 받은 이들이 주축이 돼 만든 장이다. 그들은 화랑, 미술관, 비엔날레, 미술대학, 미술잡지 등 미술계의 핵심기관을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예술가의 작품을 평가하고 전시하고, 한 시대를 대표할 만한 대가를 발굴한다. 이 제도는 파리, 뉴욕, 런던, 서울, 도쿄 할 것 없이 성숙한 사회를 구축한 곳이라면 공통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도시 간 교류를 통해 이런 제도를 국제화하고, 다른 곳으로 확산시키는 역할도 한다.

이런 미술계 주변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최소한의 교육만 받은 이들, 또는 어린 아이나 은퇴한 노인, 아니면 자폐증으로 아픈 이들, 단지 그림이 좋아서 그리기 시작한 보통 사람들이 그린 그림은 어떻게 될까? 미술계는 이런 그림들을 부르는 명칭을 따로 만들어 두었다. 독학 작가,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 아르 브뤼(Art Brut) 등등이 그것들이다. 이름을 들여다보면 어딘가 불편하기 그지없다. ‘독학 작가’는 말 그대로 선생을 두지 않고 혼자 서툴게 그림을 배운 작가라는 말이고, ‘아웃사이더 아트’는 미술계 내부인이 아니라 외부인이 그린 예술이라는 뜻이고, ‘아르 브뤼’는 ‘거친 예술’ 즉 아직 정련되지 않은 상태의 예술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명칭들이 불편한 어감을 주기는 하지만 정작 미술의 역사에서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던 프랑스에서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켰던 전쟁의 기억을 극복하려던 예술가 장 뒤뷔페(Jean Dubuffet)는 회복의 실마리를 정신질환자, 죄수,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서 찾았다. 제도권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순수한, 고독한 상태에서 그린 그림이야말로 새로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비슷한 시기에 코브라 그룹도 어린아이들의 그림을 흉내 내면서 인간의 순수함을 배우기도 했고,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이 만든 예술을 공부하면서 영감을 얻고자 했다. 

이후 원주민, 어린아이, 아픈 사람들이 그린 예술은 현대미술계에서 작은 지류를 형성하면서 지금까지도 맥을 잇고 있다. 그 지속력은 바로 ‘정상인’과 이성을 강조하는 사회가 비켜간 세계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힘에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정상인이 보지 못하는 세계가 그들의 예술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참여하는 미술시장 ‘아웃사이더 아트 페어’는 뉴욕과 파리에서 열리는 데 올해 25주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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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저너리 아트 뮤지엄 볼티모어.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용어에도 변화가 불기 시작했다. 아웃사이더 아트 외에도 ‘직관적 예술(intuitive art)’과 ‘비저너리 아트(visionary art)’라는, 보다 긍정적인 명칭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런 예술을 주로 전시하는 화랑이 있는가하면, 수집하는 컬렉터도 늘고 있고, 미술관까지도 생겨났다. 위에서 언급한 장 뒤뷔페가 수집한 작품들이 현재 스위스 로잔에 ‘아르 브뤼 컬렉션’이라는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고, 시카고에 가면 ‘인튜이트: 직관적 아웃사이더 미술센터’가 있고, 볼티모어가 가면 ‘미국 비저너리 아트 미술관’이 있는데, 모두 비정상, 비주류의 예술을 기리며 그들의 유산을 널리 알리고 있다. 

제주의 ‘비저너리 아트’ 작가 고동우의 전시는 3월 29일까지 계속된다.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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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 미술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영어교육학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예술과 철학에 대한 호기심을 포기할 수 없어서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까지 공부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졸업한 뒤 서울, 뉴욕 등 세계를 다니며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그동안 큐레이터, 갤러리 디렉터, 프로젝트 매니저, 교수 등 미술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하면서 예술과 사회의 역학관계를 체험하고 연구하고 있다. 11년간 체류한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조명한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를 저술했으며, 『개념미술』(2007)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는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를 돌면서도 언제나 마음은 고향을 향해 있었다. 특히 요즘 문화예술의 섬으로 떠오르는 고향 제주를 주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를 통해 글로벌 시대의 제주의 문화예술 비전을 고민하는 일은 또다른 고향사랑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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