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⑫ 기대, 아쉬움 교차한 4.3미술행사..."편안함 대신 경계로"

전쟁 같던 선거철이 끝났다. 보기 힘들었던 정치인들이 마을에서 마을로 돌아다니고,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방의 흠을 찾아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곤 했다. 숨통을 조이는 공격성과 잔인함이 적나라하게 표출된 시간이었다. 유채꽃이 피고 벚꽃이 피는 계절이 왔는데도 봄의 훈훈함은 용광로처럼 타는 선거철을 달래기에 한참 부족했다.   
전쟁 같던 4월, 예술가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들은 선거의 뒤안길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시간을 탓하지 않고 조용히 자기 몫을 하고 있었다. 특히 4월에는 굵직한 행사가 많이 있었다. 동아시아문화도시 개막행사는 제주의 문화현장을 일군 사람들의 땀으로 만든 행사였다. 공예가를 비롯한 신보헤미안들이 만든 벼룩시장이 ICC 로비를 가득 채웠고, 개막 행사도 무난히 끝났다. 다만 아시아의 다른 도시와 문화를 견주는 장에서 중국의 닝보와 일본의 나라가 준비한 프로그램과 비교해서 왠지 부족해 보인 것은 아쉽다.    

4월의 미술에서 4.3을 빼놓을 수 없다. 그동안 제주의 미술인들은 4.3의 역사적 기억을 더듬고 보듬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올해에는 4.3을 기리는 중형 전시 2개가 나란히 열렸는데, 탐라미술인협의회가 주관하고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제23회 4.3미술제: 새다림-세계의 공감>과 제주4.3 평화기념관에서 열리는 <4.3 초대전: 평화, 슬픔에 핀 소망의 꽃>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 두 전시에는 각각 25명과 43명의 작가와 1팀이 참가했고 전시 기획자들은 두 전시의 작가가 겹치지 않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의 두 전시를 보면서 앞으로 미술계가 4.3을 추모하는 방식, 그리고 내용과 장소의 측면에서 재고할 시점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작가가 겹치지 않는 두 개의 전시를 따로 만들 필요가 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차라리 68명의 작가와 1팀이 참가하는 대형 전시 하나로 기획하는 협업을 했더라면 보다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 번째는 회화와 평면 작업이 대부분인 전시를 보면서 드는 아쉬움이다. 참여한 작가마다 심혈을 들여서 가꾼 각각의 예술의 세계에 대한 미적 판단은 보류하겠지만 얼마 전 제주의 한 문인이 한 말을 상기시키고 싶다. 번역가로도 유명한 그 소설가는 제주문학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무엇보다도 “자기혁신이라는 용기와 모험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필자는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그동안 조용하게 활동하던 제주의 예술인들이 한번쯤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자기 혁신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4.3을 기리는 전시의 공간 역시 재고할 때이다. 23회를 맞는 4.3 미술제는 4.3문화예술축전의 한 행사이다. 원래 1990년대 초 민예총을 중심으로 시작된 4.3예술제가 성장한 것이다. 그동안 4.3 문제를 이슈화하고 중앙정부의 인정을 받는 과정에서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데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23년의 시간 동안 4.3 미술제를 유지한 것만으로도 상을 받아 마땅하다. 

올해 열린 4.3문화예술축전은 초심을 지키려는 듯 광장과 거리, 시민이 모이는 장소에서 거리예술제, 굿판을 벌였다. 그런데 미술제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미술관, 화이트 큐브의 상징인 도립미술관에서 열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미술제도중에서도 보수적이며, 닫힌 공간인 미술관을 왜 4.3미술제가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아직도 치열하게 4.3의 재평가 문제를 두고 싸워야 하는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기보다 보통의 여느 전시처럼 편안하게 미술관의 벽 안에 스스로를 갇히는 것 같아 아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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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립미술관에서 열린 4.3 미술제. 사진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4.3 초대전: 평화, 슬픔에 핀 소망의 꽃>역시 마찬가지다. 기념관이 미술을 통해 추모의 시간을 갖고자 한 시도는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4.3 희생자를 기리는 평화공원과 기념관이 넓고 광활한 들녘에 펼쳐져 있는데 굳이 공원을 뒤로 하고 기념관 2층 로비와 전시실에 갇힌 미술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소극적이다. 그나마 로비에 설치된 대형 작업 2개가 아픈 상처를 상징하듯 처연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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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평화공원 기념관에서 열린 전시 장면. 김기대와 이지현의 설치 작품. 사진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아직도 4.3의 역사적 평가에 대해 갈등하는 상황에서 중요한 정치적 사건을 기억하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예술로 승화하고, 아픈 기억을 가슴에 묻은 시민들과 그 기억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창작인과 기획자들은 편안한 공간보다 경계의 공간에 서야 한다. 길거리에서, 광장에서, 묘지에서, 시장에서 예술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정형화된 틀을 탈피해야 하며, 해마다 자기를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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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사무소와 인근에서 열린 전시 <가파도의 푸른 생명>. 사진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그런데 바로 그런 가능성을 보인 전시 하나가 조용히 열렸다. 가파도에서 열린 <가파도의 푸른 생명>전은 8명의 작가와 5명의 과학자가 협업한 전시로 가파도의 리사무소와 인근에서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고자 기획되었다. 갤러리 비오톱에서 1차 전시를 가진 후 가파도로 건너가 청보리 축제기간을 전후로 2차 전시를 연 것이다. 마을 주민의 소극적인 반응 때문에 다양한 장소를 활용할 수 없었다는 점은 아쉽다. 그러나 내년에는 가파도의 바람이 부는 들녘에서, 소담한 가옥이 들어선 마을 곳곳에서 가슴을 울리는 예술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제주의 생태예술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장소에서 막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동아시아문화도시 개막식에서 본 나라의 아스카 공연단이 보여준 무태고는 전통과 현대를 세련되게 이으면서도 통쾌함을 주는 빼어난 공연이었다. 타 분야와 달리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해야 하는 예술의 운명을 잘 아는 일본 예술인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교류와 만남의 장을 독려하는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제주의 예술계도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때인 것 같다. 

▲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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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 미술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영어교육학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예술과 철학에 대한 호기심을 포기할 수 없어서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까지 공부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졸업한 뒤 서울, 뉴욕 등 세계를 다니며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그동안 큐레이터, 갤러리 디렉터, 프로젝트 매니저, 교수 등 미술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하면서 예술과 사회의 역학관계를 체험하고 연구하고 있다. 11년간 체류한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조명한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를 저술했으며, 『개념미술』(2007)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는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를 돌면서도 언제나 마음은 고향을 향해 있었다. 특히 요즘 문화예술의 섬으로 떠오르는 고향 제주를 주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를 통해 글로벌 시대의 제주의 문화예술 비전을 고민하는 일은 또다른 고향사랑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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