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람선 여행'을 뜻하는 크루즈는 제주에서 더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올해 제주에 기항 예정인 크루즈선은 482회. 유라시아 대륙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제주는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의 크루즈 기항기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 100만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크루즈를 통해 제주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앞으로 제주 관광은 크루즈 여행객들이 제주에서 지갑을 열도록 하는 게 관건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려면 이들에게 만족감을 줘야 하고, 출입국 수속 등에서도 최대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제주의소리>는 이 점에 주목해 직접 한·중·일 국제크루즈선을 타고 3박4일의 여정을 승선 취재했다. 두 차례에 걸쳐 체험기를 싣는다. <편집자주>


[한·중·일 크루즈선 직접 타보니] ② 한.중.일 면세점 '지역상생'이 답이다!

◆ 크루즈 타고 온 큰 손 '유커'...면세점은 필수 코스

지난 18일 오후 10시 제주항에서 출발한 크루즈선 코스타 세레나호가 이튿날 오전 10시 일본 후쿠오카 하카타항에 도착했다. 

간소한 입국 시스템 덕분에 항 밖으로 금방 나올 수 있었다. 기항지인 후쿠오카에서 머무는 시간은 약 8시간. 8시간 동안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

크루즈선에서 내려 가이드의 안내로 관광버스에 올랐다. 첫 번째 관광지는 다자이후텐만구.

다자이후텐만구는 일본 전통 신사(神社). 일본인들은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학업에 관한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유명한 관광지로 매년 수백만명이 이곳을 찾는다.

특히, 일본 대입 시험이 가까워지는 명절에는 하루 100만명이 찾기도 한다.

▲ 일본 후쿠오카 다자이후텐만구. 주차장과 신사와의 거리는 걸어서 약 15분이 걸린다. 걸어가다보면 길 양쪽에 각종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 관광이 마무리 된 후 점심 식사가 이어졌다. 식사 후 이동한 곳은 면세점. 간판도 없는 중소 면세점이었다. 그럼에도 수십대의 버스가 쉬지 않고 면세점을 오갔다.

품목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면세점과 다른 점이 많았다. 일본 전통 과자나 생필품, 학용품, 심지어 일본에서 소문난 주방용 '식칼' 등도 판매했다.

이곳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은 장시간 줄을 서서 양손 무겁게 물건을 사들였다.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은 제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면세점 주차장 한 켠에서 노점상들이 타코야키 등 일본 길거리 음식을 팔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중국 상해를 모항으로 한 크루즈선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중국 관광객들이었고, 이들이 갈 수 있는 면세점은 기항지인 제주와 후쿠오카 뿐.

물론 자국으로 돌아간 뒤 일정 기간 동안 면세점 이용이 가능하지만, 구매 한도가 우리나라 돈 80만원 수준이어서 중국인 관광객 대부분은 해외에 나간 김에 다량으로 물품을 구매하는 편이다.

우리나라 관광객들도 해외에 나가면 대체로 공항 면세점이라도 들르기 마련이다. 미리 구입 품목을 정했다기 보다는 시중보다 값이 싸고 품질을 믿을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일단 둘러보고 ‘살만한 물건’이 있나 살피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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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후쿠오카의 중소 면세점. 간판도 없는 작은 면세점이지만,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면세점은 또 하나의 관광지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기자가 방문한 중소 규모의 면세점에서 직원들 대부분이 중국어를 구사했다. 그만큼 일본 면세업계에서도 중국인 관광객 유커(遊客)들은 '큰 손'으로 통했다.

유커 등 외국인 관광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 일본처럼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도 면세점 확대 정책을 펴고 있다. 바야흐로 '유커 모시기 한·중·일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는 셈.

우리나라는 서울 시내 면세점 2~4곳을 추가 허용하고, 면세점 특허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또 부가가치세를 면제해주는 ‘Tax Free Shop’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입경면세점 19곳을 신설하고, 내국인 면세점 구매 한도를 5000위안(4월25일 기준 한화 88만원)에서 8000위안(한화 140만원)으로 상향 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해외에서 지출하는 관광객들의 지갑을 국내로 돌리겠다는 취지다.  

일본도 도쿄 시내면세점 2곳을 추가 신설하고, Tax Free Shop 약 2만개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중국와 일본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면세점 사업권을 대부분 국·공기업에 내주기 때문에 사업 허가를 얻으면 사실상 영구적이라고 볼 수 있다.

◆ 우리나라 면세 시장은 '유커'를 유혹할 수 있을까?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이 1~2위를 다투는 우리나라의 면세사업은 최근 중소기업의 면세사업 진출로 춘추전국시대(?)와 같다. 면세 사업 특허권도 5년마다 갱신해야 하기 때문에 업체 모두가 전전긍긍이다.

춘추전국시대를 맞으면서 다양한 문제점도 도출되고 있다. 대기업 독점에 따른 대안으로 제시된 중소기업 면세사업권 특허 부여가 얼마나 실효성을 거두고 있는가다. 당장 중소기업 면세사업자가 해외 각종 명품 브랜드를 유치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봉착한다.

실제 롯데·신라면세점도 해외 유명 브랜드를 유치하기 위해 꽤 애를 먹어왔다. 면세사업이 유통사업 분야 중 가장 어렵다는 평가도 이 때문이다.  

국내 중소면세점 기업은 지난 2012년 4곳에서 2015년 24곳으로 증가했다. 점유율은 2012년 10% 수준에서 50%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중소면세점 점포 1곳당 수익은 오히려 감소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 2012년 중소면세점 매출은 약 3000억원에서 2015년 약 6000억원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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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후쿠오카 중소 면세점이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하지만, 중소 면세사업장이 2012년에 비해 6배나 증가한 상태에서 전체 매출 2배 상승은 오히려 예전보다 면세사업장 1곳당 매출이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면세사업장과 여행사간의 ‘리베이트’도 문제도 있다. 여행사가 관광객들을 자신과 관계된 면세사업장에 안내하고, 관광객들이 물건을 많이 구매할수록 면세사업장에서 매출의 일정한 비율을 여행사에 수수료 명목으로 건네주는 '리베이트'도 사라져야 하는 문화다.

롯데·신라면세점 등 국내 대기업 면세점도 수수료 출혈이 크지만 고객유치를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리베이트를 지출할 수 밖에 없다. 이미 브랜드 가치가 높아 하나의 관광지 역할을 해내고 있는 면세사업장도 리베이트 해결은 난제 중 난제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 부분의 해결책을 찾고 있었다.

일본 후쿠오카시 경제관광문화국 크루즈 담당 요시타카 코야나기 과장은 “크루즈를 타고 오는 관광객을 여행사들이 특정 면세점에 데려가는 것이 고착화되는 것은 일본도 고민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런 고착화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단체 관광객이 많지만, 갈수록 개인 관광객들이 증가한다. 결국 단체로 찾은 관광객들의 재방문율을 높이는데 집중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요시타카 과장은 “재방문한 관광객은 자신이 갔던 관광지 말고 새로운 곳을 찾게 된다. 자연스레 고착화된 관광코스, 면세사업장 이익이 사라진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재방문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관광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의 면세사업장들이 하나의 관광지로서 공생하며, 자리 잡기 위해서는 서로 간 협력도 필요하고 정책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대기업 면세점과 중소 면세점간 판매 물품도 서로 다르게 특화 시켜나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매년 100만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크루즈를 타고, 제주에 관광 온다. 이들 모두가 면세점에서 명품 지갑을 사진 않는다. 어떤 관광객은 제주 특산품을, 또 다른 관광객은 우리나라 특산품을 원할 수 있다.

또 면세 특허 기간을 제한하는 추세에서 과감히 규제를 풀어 기업들이 면세사업장에 대한 투자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면세사업 기업들도 면세점 주변 재래시장이나 지역상권과 상생을 위한 연계 물품 판매 등을 고민해야 한다. 

‘대기업 면세점만 이익을 보고, 제주도민에겐 어떤 이익도 없다’는 부정적 의견도 바로 면세기업과 지역상권 간의 상생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외국인관광객들에게 면세점은 필수코스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쇼핑인프라다.

결국 정책적 지원과 적절한 규제완화 등을 통해 면세점도 살고, 면세점의 이익이 도민사회에 적극 환원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 일본 후쿠오카·상해 우송코 현지 취재 = 글 이동건 기자, 영상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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