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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립미술관이 주최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부설 한국문화연구원이 주관한 국제학술심포지엄 <아시아 미술의 현장과 네트워크 분화의 지점>이 27일 제주도립미술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제주의소리
제주도립미술관 국제학술심포지엄, “젊은 작가 역사의식 전승은 공통 과제” 한 목소리 


근대 서양 제국주의의 침탈과 권위주의 정권의 철권통치에 오랜 시간 상처 입은 아시아 국가들. 칠흑 같은 정세에도 미술(예술)은 ‘어둠 속 한 줄기 빛’처럼 시대를 비추는 역할이었다. 대만,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제주 등 아시아 미술인들은 엄혹한 현실에서 시대정신을 알린 미술의 역할이 지금의 젊은 작가 세대에도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며 활동과 가치를 공유하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도립미술관이 주최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부설 한국문화연구원이 주관해 27일 열린 국제학술심포지엄 <아시아 미술의 현장과 네트워크 분화의 지점>은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의 현대사에서 미술이 어떤 역할을 했으며,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행사는 두 개의 세션에서 각각 두 명의 발표를 듣고 사전에 정해진 인원이 발표자에 질문을 던지면 마지막 종합토론 순서에서 질문에 답하면서 의견을 나누는 순서로 진행됐다. 

대만 국립타이난예술대학 교수 공저우쥔(Gong Jow Jiun), 인도네시아 독립큐레이터 아리프 바거스 프라스티요(Arif Bagus Prasetyo), 싱가포르 국립 미술관 큐레이터 셩위진(Seng Yu Jin), 제주도 미술평론가 김유정이 발표를 맡았다.

발표는 각기 지역별 차이는 있어도 권위적인 시대 흐름에 저항했던 미술의 방향은 동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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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심포지엄은 4명의 주제 발표자와 4명의 질의자가 나서서 프로그램을 진행됐다.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가운데 있는 인물은 종합토론 좌장을 맡은 김영훈 한국문화연구원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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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출신 김유정 미술평론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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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요배 화백의 작품 <제주민중항쟁사>를 소개하는 김유정 큐레이터. ⓒ제주의소리

셩위진은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1970년대 벌어진 학생운동과 미술운동을 조명했다. 아리프는 1900년대 중후반 엄혹했던 인도네시아의 아픈 역사와 그 문제적 현실을 알린 예술인들의 활동을 소개했다. 

공저우쥔은 동남아 고지에서 무정부적인 공동체로 살아가는 소수민족에 빗대, 공기관과 기업 지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진 대만 예술계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김유정은 제주 근현대 미술의 시기별 특징을 설명하면서, 국내 민중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제주화가 강요배의 <제주민중항쟁사>를 소개했다.

# 권위주의 시대, 저항의 상징이었던 미술

셩위진 큐레이터는 사회비판적인 미술 운동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확산된 1970년대를 주목했다. 냉전과 베트남 전쟁(1955~1975)이란 중요한 국제정세를 거치면서 이데올로기가 화두로 떠올랐고, 경제발전 정책과 권위적인 군사정권 통치가 각국으로 확산된다.

대학생, 순수예술 아카데미 학생 등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층이 사회 속에서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점차 학생운동으로 진화한다.

이들은 처음에 지배층의 개발주의적 정책에 공감했지만 통치 체제가 더욱 독재화되고 부패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반대 쪽으로 돌아선다. 이 과정에서 비판적인 미술 운동도 본격적으로 생겨났다.  

셩위진은 1974년을 동남아시아의 비판적 미술 운동이 태동한 해로 꼽는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대표적인 민주화 투쟁인 ‘말라리 사건’(Malari Incident)과 14명의 작가들이 인도네시아 문화예술 당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암흑의 12월 사건’(Black December Affair) 모두 1974년에 일어났다.

태국은 사회참여적인 예술인으로 구성된 모임 TAFT(The Artists Front of Thailand)가 군사 독재정권이 무너진 1973년 10월에 결성됐다. TAFT는 이후 군사정권 붕괴를 기념하는 내용의 회화와 포스터 1000여점을 거리에 전시하는 등 공공장소를 전시 공간으로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필리핀은 1974년 진보적인 이념의 예술인으로 구성된 모임 NPAA(United[필리핀어: Nagkakaisang] Progressive Artists and Architects)가 도시에서 지방으로 조직을 옮기며 새로운 예술 운동을 시도한다.

이 가운데 제주4.3만큼 끔찍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미술 운동이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965년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쿠테타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집권세력은 공산당과 관련된 국민을 대거 학살하는데 그 수가 최대 1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술을 당 홍보 목적으로 적극 활용한 공산당이었기에 예술인들의 피해도 매우 컸다. 당시 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상파악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아리프 큐레이터는 현재 하르소노(F.X. Harsono), 모엘요노(Moelyono), 다당 크리스탄토(Dadang Christanto), 만구 푸트라(Mangu Putra) 같은 미술인들이 1965년 대학살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사회문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소개했다.

# 어두운 현실 비춘 미술, 역할 계승 이뤄지나?

아시아인들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대변했던 미술. 그렇다면 2016년 20~40대인 젊은 미술인들도 이런 무게와 역사의식을 공유하고 있을까? 심포지엄 패널들은 이 질문에 모두 회의적인 대답을 내놨다. 전통적인 문화와 관습이 빠른 속도로 허물어져 가는 지금에 미술 역시 변화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리프 큐레이터는 “1950~60년대에 태어난 인도네시아 예술인은 ‘예술에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중요성을 알고 사회·정치적인 상황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이에 반해 지금 젊은 예술인은 예술 속에서 개인적인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공공의 문제를 작품 속에 담으려는 모습이 비교적 약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셩위진 큐레이터 역시 “싱가포르 사회는 매우 강력한 자체 검열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며 “다만 일부 젊은 미술인은 동성애 같은 정부가 반대하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도전하려는 모습을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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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가포르 국립 미술관 큐레이터 셩위진. ⓒ제주의소리

공저우쥔 교수는 자신이 가르치는 어느 학생의 일화를 소개했다. 

학생이 발표한 논문 제목은 ‘어머니(Mother)’다. 학생의 어머니는 중국 혈통인 인도네시아인으로 1965년 대학살 시기에 대만으로 넘어와 정착했다. 일종의 이주민인 셈이다.

학생은 어머니가 평소 가정에서 보여 온 폭력적인 모습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원인을 찾아보니 대만 사회에서는 외국인 결혼 이주민에 대해 오랫동안 경멸한 분위기가 있었고 학생의 어머니는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을 신분 상승의 기회로 선택해 어렵게 살아온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공저우쥔 교수는 “그 학생은 과거 자신의 어머니가 겪은 고통이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많은 대만사람들도 마찬가지”라며 대만 역시 젊은 예술인들의 역사 의식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예술이 역사 속에서 보여온 중요한 역할을 젊은 세대들에게 전승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구축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꼽았다.

화가 양미경 씨는 “나라 안팎으로 네트워크를 어떻게 만드는지가 현 시점에서 예술계의 가장 큰 숙제라고 본다. 행정이 주도하던지 혹은 민간이나 개인까지 나서서 자발적으로 왕복할 수 있는 분화된 지점이 많아진다면 비판적인 예술 정신들이 모여서 하나의 거대한 힘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며 “이번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계기로 보다 구체적인 국제 네트워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심포지엄은 제주도립미술관이 4월 15일부터 7월 10일까지 진행하는 <한국현대미술작가 초대기획전-강요배; 시간 속을 부는 바람>의 연계 행사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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