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춘 칼럼] <이코노미스트>가 왜 ‘최악의 유엔 사무총장’이라 평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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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5월 26일 제주포럼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구호도 메아리를 남기고 사라졌다. 2013년 타계했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는 것’을 가르치고 떠났다. 폭력에 저항하면서도 비폭력을 일관하였다. 진정한 분노가 사랑이라는 가르치고 떠났다. 아쉽고 아프다.

세상은 1%의 힘으로 다스려진다. 정치권력과 대기업이 결탁하고 그들의 횡포를 언론이 비호하며 사법부와 대학 교수가 금권유착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정치가와 재벌과 사법부와 교수가 바로 1%의 기득권층이다. 기득권층의 단결로 인해 99%의 서민들은 그들의 가축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스테판 에셀은 진단하였다. 그래서 뉴욕에서는 ‘점령하라’라는 구호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 월가를 점령하라는 메시지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나서서 큰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듯하다 이내 시들고 말았다. 아쉽고 아프다.

세상이 전쟁과 기아, 폭력과 살육으로 몸살을 앓고 있음에 스테판 에셀은 분노했다. 달라이 라마와 함께 대담한 내용이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돌베개, 2012)라는 책으로 엮여 나왔다. 거기서 둘은 세계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유엔의 역할을 강조하고, 유엔 사무총장의 임무를 다시 일깨웠다. “유엔 사무총장의 소임은 평화를 지키는 일, 평화가 널리 확산되도록 돕는 일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망 있는 인사들, 인류의 안영에 관심을 두는 인물들로 이루어진 ‘현자(賢者)위원회’ 같은 기구가 출범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거기서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논의와 결정이 유엔 기구를 통해 실현되기를 바랐다. 

달라이 라마와 스테판 에셀은 “유엔 헌장 99조에 따르면 유엔 사무총장에게는 이런 기구가 전향적으로 발전하도록 할 책무가 있습니다.(73쪽)라고 말했다. 반기문 총장은 이런 양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였던 것일까. 세계는 폭력과 전쟁으로 슬퍼하는데 그 목소리를 유엔 사무총장은 듣지 못하고 미국의 목소리만 들었다. 미국의 논리를 옹호하는 데 8년을 소비했다. 세상이 분노하고 있는데 반기문 총장은 어떤 조치도 내놓지 못했다. 그래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반기문을 ‘최악의 유엔 사무총장’이라고 평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유엔 사무총장이 나왔다는 것이 자랑이었는데 지금은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반기문 총장이 차기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이 되는데 어떨까. 대한민국이 이 지경까지 왔나 하는 회한에 사로잡힌다. 유엔이 사무총장의 퇴임 직후 정부직 진출을 제한하는 결의를 공식 채택하였는데도 대선에 나온다면 이는 국제적 망신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엊그제도 시리아 테러로 150 여명이 사망했다. 시리아 사태로 수백 만 명이 난민이 되어 떠도는데도 아무런 해결책이 없고, 유엔도 속수무책이다. 달라이 라마와 스테판 에셀은 우리에게 정신적 지도(地圖)를 권했다. 우리의 정신 속에 있는 분노와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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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춘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 제주참여환경연대 이사 ⓒ제주의소리
민과 관용과 용서와 공감, 이런 상호 소통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정신의 지도야말로 유엔 지도자가 가져야 할 지도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세계인들로 하여금 지구의 저편에서 벌어지는 기아에 아파하고 전쟁을 평화로 바꾸도록 다독거려야 하는데 그런 세계적 지도자는 유엔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시리아 전쟁을 평화로 바꿀 정신의 지도를 가지고 남은 임기를 분투하길 기대한다. 그가 조국에 떳떳하게 돌아올 마지막 기회다. 이 시급한 때 제주를 다녀갈 여가가 어디 있단 말인가. 답답하다. / 허남춘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제주참여환경연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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