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자치 10년, 어디까지 왔나] ③ 번지수 잘못 찾은 행정시 강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전의 4개 자치 시·군과 같은 완전체의 기초자치단체를 부활할 수 없다면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행정계층 구조를 지금과 같은 ‘어정쩡한’ 3단계가 아닌 2단계로 과감하게 축소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역시 제주특별법 제8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특별법 8조는 “지방자치법의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에 관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따로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주도의 지방의회 및 집행기관의 구성을 달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한마디로 제주도의 정치 환경에 맞는 제도의 선택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자치재정권, 자치입법권 등 법인격을 갖지 못하지만 도민 총의만 모은다면 행정시장 직선제 뿐만 아니라 대동제, 책임읍면동제 등 얼마든지 새로운 ‘제주형 자치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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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행정시 기능강화는 ‘저비용 고효율’을 내건 특별자치도 출범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차라리 행정시를 없애고 대동제, 책임 읍면동제 등 일선 하부행정기관을 강화하는 ‘도-읍면동’ 단층제를 고민해볼 수도 있다. ⓒ제주의소리
◇ 특별자치도 자치모형 용역은 ‘도-읍면동’ 단층제…행정시 끼워 넣은 대가가?

특별자치도 출범 이전인 2005년 7월27일 진행된 주민투표는 혁신안-점진안을 놓고 진행됐다. 혁신안은 도와 법인격이 없는 행정시, 읍면동의 어정쩡한 3단계 행정계층 방안이었다.

하지만 이 혁신안은 그 이전까지 진행된 ‘제주특별자치도 행정체제 개편 모형 연구용역’에는 없던 모형이었다. 당시 용역에서 제시된 ‘진짜’ 혁신안은 행정시가 없는 도-읍면동 단층제였다.

도와 읍면동 사이에 낀 행정시는 일종의 과도 체제라고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조직도에서 사라져야 할 체제라는 얘기다.

행정구조 개편은 ‘저비용 고효율’을 달성하자는 것으로, 특별자치도 출범 당시 행정시 기능은 복지 업무 등으로 최소화하는 ‘장구형’(○〓○) 모양을 지향했다.

그런데 특별자치 10년 앞둔 지금은 행정시 기능강화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행정체제 모형은 점점 행정시가 배불뚝이가 되면서 ‘항아리’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다.

15일 열린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의 ‘제주도 조직개편안’ 심사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이 지적됐다.

고정식 행정자치위원장은 “행정시 기능강화에 포커스를 맞추는 이유가 뭐냐. 도의회에서 읍면동 강화방안을 도출해줄 것을 주문했는데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권한과 사무를 이양하고, 그에 따른 인력을 읍면동에 배치해야 행정서비스의 질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계층 단순화, 주민서비스 현장서 가까운 데서 수행하는 게 세계적 추세”

행정구조 개편 ‘전도사’로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전에 진행된 행정체제 개편 모형 연구용역에 참여했던 최영출 충북대학교 교수(행정학)도 현재의 행정시 체제에는 아쉬움이 많다.

‘도본청-읍면동’ 단층제를 주장했던 그로서는 2006년 출범한 현재의 행정체제 설계자라는 지적에 억울함을 토로한 바 있다.

최 교수는 영국 사례 연구를 통해 “지방정부 행정구조는 단층화 추세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제주도처럼 행정시와 같은 중간단계의 하부행정기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최 교수는 ‘대동(大洞)제’가 대안모델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인구 5만~7만명 수준인 하부행정기관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의 모델을 눈여겨본 것. 이를 제주도에 도입한다면 현재의 43개 읍면동을 통합해 대략 8~10개 정도의 대동(大洞)제를 통해 현장 민원행정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기대할 수 있다.

대동제의 밑그림도 얼추 나온 바 있다. 행정시장 직선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출범한 민선 5기 우근민 도정에서 추진된 용역(제주도 행정체제 개편 도입모형 연구)에서다.

특별법에 명시된 주민자치위원회가 일정한 범위에서 의사결정의 주체로 서면 ‘준 자치단체’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 동장은 주민자치위원회가 복수로 추천하면 이 중에서 도지사가 최종 선택하고, 도의회가 승인하는 등 추진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창조해낼 수 있다.

◇ 타 지역에선 대동제, 책임읍면동제…제주‘특별자치도’보다 앞선 혁신행정 도입

이를 위해서는 일단 제주도의 의지가 중요하다. 지난 2008년에도 읍면동 기능강화를 위해 대동제가 추진됐지만 과소 동(洞) 통폐합에 따른 주민반발에 부딪혀 중단됐다.

제주도가 특별자치도 출범 10년에 맞춰 개편하려는 조직개편(안)에도 인근 읍면동을 하나로 묶어 대표성을 띤 1개 읍면동에 행정시 업무를 처리하는 주민밀착형 ‘책임 읍면동제’를 배제시켰다.

반면 부천시는 7월1일부터 4개의 일반 구(區)를 폐지해 대동제를 전환키로 해 제주와는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오히려 제주도는 이런 상황에서 인구수 증가에 따른 분동, 분통을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도 양주·남양주시와 경북 경주시 등도 지난 2014년 4월부터 자치 시·군·구의 민원을 읍면동에서 처리하는 주민밀착형 ‘책임 읍면동제’를 시행, 특별자치도보다 한발 앞선 현장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양영철 제주대학교 교수는 “과감한 혁신이 없이는 국민 및 중앙정부로부터 특별자치도에 대한 지지를 받기 힘들다”며 끊임없는 혁신을 주문했다.

양 교수는 “지금의 행정시 강화는 특별자치도 출범 취지를 감안하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라며 “세계적 추세는 계층을 단순화하고, 주민서비스를 현장과 가까운 데서 수행하는 것이다. 행정기관의 접근성을 높이고 하부행정기관으로서 읍면동이 자기 완결적 민원해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행정구조 개편은 ‘작은 본청’, ‘행정의 효율화’, ‘대주민 서비스의 질 향상’이 기본방향이 돼야 한다. 특별자치 10주년을 계기로 제주형 자치모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토론과 공론화를 거쳐, 2년 후 지방선거 때는 구체화된 공약으로 진검승부를 내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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