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유아 보육과 관련해 맞춤형 보육이 논란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의 명명은 참 유별나다. 현 정부가 하는 일들은 다 맞춤형이고, 선진형이며, 창조형이다. 그 일에 반대하면 엉거주춤형이 되고, 후진형이 되며, 모방형이 되는 꼴이다.

소위 ‘맞춤형 보육정책’도 그렇다. 내용은 대강 이렇다. 어린이집에서는 12시간 이용할 수 있는 종일반과 6시간만을 이용할 수 있는 반으로 나뉜다. 종일반은 맞벌이 가정·다자녀가정(3명에서 2명까지 할지는 모르지만)·다문화가정 등에 적용하고, 6시간 이용은 전업주부 가정의 어린이들이 이용하게 된다. 추가로 사정에 따라 바우처 사업으로 월 15시간 내에서 더 다닐 수 있도록 되어있다.

비록 엉거주춤형이라 하더라도 맞춤형 보육정책을 반대한다. 또한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과 협의가 덜 되어 있다고 보기에, 정책 시행이 국민적 공론화가 이뤄질 때까지 철회돼야 한다.

많은 교육 관계자들이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과 비례 한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게 있다. 교사의 질을 발휘할만한 ‘여건과 처우’가 전제돼야만 한다.

필자가 종사하고 있는 요양원의 경우만도 그렇다. 직원들은 나름의 국가 공인 전문 자격증을 가지고 성심성의를 다 하고자 하나, 적정수가가 보장되지 않아 직원들 처우가 열악하다. 그런데도 그들에게만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아무리 직원의 질이 높고 일하고 싶어도 힘들어서 자기 능력과 소명을 펼칠 수가 없다면 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어린이집 교사들도 격무와 열악한 환경이라는 것은 대부분 인정한다. 교사의 질이 높아도 천사 같은 얼굴과 넉넉하며 사랑스런 보육을 닥달할수 없는 처지다. 교사들만 탓할 수가 없다. 염치가 있어야 한다.

필자는 늦둥이 만2세의 쌍둥이 아들이 있다.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주말은 그야말로 녹초가 된다. 하나님이 준 귀한 선물이지만, 이내 헐크가 되기 십상이다. 온 식구가 달려들어 천방지축 그 악동들을 제어한다. 그래서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주중이 그립고 기다려진다.

그런데 그런 악동들을 한명의 교사가 7명을 보육한다. 만 5세반은 20명을 커버한다. 어느 한 교사가 휴가나 병가를 받는 날이면 말이 보육이지 관리와 통제(?)만 있을 뿐이다.

반면 읍내 모 초등학교에 다니는 5학년 조카가 있다. 한 학년에 1개 반만 있는데, 학생수가 15명이란다. 어린이집 5세반, 정원 20명에 현원이 10명이라면 그 반은 곧바로 해체되든지, 통합 되든지 할 수밖에 없다. 운영이 안 되기 때문이다.

국가와 지자체는 ‘0세부터 5세까지 무상보육’을 홍보한다. 그런데 시설장에게 ‘원장’이 아니라 ‘사장’이 되도록 강요하고, ‘교사’에게는 ‘영업사원’ 노릇을 하게 한다. 완전히 시장에 내 맡겨 버린 꼴이다.

초등학교 5학년 1개 반에 15명이 되더라도, 소중한 아이들에게 1명의 담임교사를 법정 배정해 준다. 마찬가지로 어린이집의 보육에도 공공성 확대가 더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급여 등도 개선돼야 하지만 1명의 교사에게 정해진 정원의 수를 대폭 낮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보육이 이뤄진다. 그래야 부모들은 아이들은 안심하고 맡기고, 아이들은 선생님들의 부드럽고 사랑스런 보육을 받을 수 있으며, 교사들은 이직을 고민하는 일자리가 아니라 즐겁고 행복한 사명의 일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전국적으로 어린이집 관계자들이 처절한 몸부림으로 간절한 의사표현을 하고 있다. 여러 대안들이 제안되고 논의하고 있음을 안다. 아이들을 12시간 기준으로 가를 것이 아니라, ‘무상보육과 보편적 복지’의 큰 틀에서 전향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일일 8시간 근로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다. 가정형편이나 주부의 취업여부 등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8시간을 기준해 더 필요한 가정은 추가비용을 정산하고 덜 필요한 가정은 지원액 삭감 없이 사정에 따라 일찍 귀가토록 하는 대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맞춤형’이 영유아복지와 보육의 ‘마침형’이 돼선 안 된다. 맞춤형이라는 미명하에 어린이집 운영에 재정적 타격을 주고, 교사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복지효율이라는 명분하에 차등적이고 선별적이며 편 가르기를 해서도 안 된다. 보육예산 삭감을 통해 구조조정의 재원을 마련하고자 꼼수를 부려서는 더더욱 안 된다. 절박함에 따른 고통의 몸부림을 불법이라 하면서 엄정 대처만을 거론하며 무덤속의 침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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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창권. ⓒ제주의소리
보육예산을 확충하되, 관리감독은 더 강화해 민간어린이집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등 보육정책에 대한 철학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시행일이 다 됐다고 할지라도, 매몰 비용보다 손절매의 필요성이 더 크다고 보기에, 맞춤형 보육정책은 철회돼야 마땅하다. / (사)제주자치분권연구소 송창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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