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20) P.A 크로포트킨  『만물은 서로 돕는다』 /박경훈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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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크로포트킨 『만물은 서로 돕는다』 김영범 옮김. 르네상스, 2005년.

들어가며

2005년 이 책 《만물은 서로 돕는다》(원제 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 상호부조: 진화의 요인/이후 상호부조론으로 표기)초판이 나왔을 때 필자는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은 바 있다. 그것은 필자만의 경험은 아닐 터이다. 왜냐하면 소위 우리가 진화론하면 떠오르는 몇몇 키워드들이 머릿속에서 어깃장을 놓는다. 흔히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으로는 다윈의 진화론하면 자연선택, 도태, 적자생존, 상호투쟁, 생존경쟁 등으로 인이 박혔다. 이런 주입된 상식과 통설에 이 책은 뒤통수를 후려치는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필자와 같은 연배들이 다 비슷한 상식과 기억을 공유하는 세대라 치면 그들에게도 이 같은 충격은 동시적인 것이었으리라. 사실 이 책은 국내에서 여러 차례 번역되었다. 최후의 아나키스트로 불렸던 허유 하기락 선생이 해방 후 최초로 1983년에 번역하였고(당시 제목은 상호부조론), 현재에는 "만물은 서로 돕는다", "상호부조 진화론" 등의 제목으로 다양하게 번역이 되어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책을 한참 뒤에야 봤으므로 이 책이 쓰인 지 100여 년이 지나서야 본 셈이다. 

흔히 우리나라의 지적 풍토에 대해 어떤 필자가 ‘지식편식증’이란 표현을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의 근대 이후 지식지리학은 확실히 편식증에 걸려 있다. 특히, 역사의 경우 우리는 세계사란 미명하에 서양사를 배운다. 인류 역사의 시작도 서구에서 시작된다. 제국주의시대 이전에는 고대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일부지역, 중세 이후에는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세계사의 극히 일부, 그것도 전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주도적이지도 않은 역사를 우리는 마치 우리의 선사처럼 외우고 답을 써냈던 것이다. 한번 인이 박히면 교정되기 어려운 성장기의 이러한 세계에 대한 지식의 편식증은 웬만한 개인적인 노력이 없다면 교정되기 힘든 법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중년층의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편식증의 환자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러한 편식의 결과는 참담하게도 세계를 가치중립적, 개관적인 입장과 판단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애요인으로 내내 작용한다. 이슬람권에 대한 지식은 불모나 다름없는 것도 이러한 편식증의 결과일 것이다.  

《상호부조론》은 다윈의 진화론과 다윈주의의 사이의 오해와 오독을 바로잡기 위해서 쓰인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진화론에 있어서의 일면적인 편협성을 말이다. 소위 다윈주의자들이 다윈의 자연과학적 지식을 끌어다 홉스의 사회계약론과 버무려, 당시에 한참을 진행 중이던 서구제국주의의 현실적 합리화를 위한 근대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만들어내고자 한 일군의 사상적 흐름에 대한, 한 지식인의 응전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진화론에 대한 다윈주의적 편협성과 이를 수입해 온 우리나라 중등교육을 통해 이루어진 거국적인 편식증의 대척점에서 균형자 역할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의 청소년기에 반드시 읽혀야 할 중요한 고전 중의 하나로 꼽을만하다. 

이 번역판에는 1914년판 서문이 실려 있는데, 이때는 바로 유럽을 전쟁의 참화로 물들인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작성된 서문의 말미에 그는 “세계를 비참함과 고통으로 몰아넣은 이 전쟁의 와중에서도 인간에게는 건설적인 힘이 작동한다고 믿을 여지가 있으며, 그러한 힘이 발휘되어 인간과 인간, 나아가 민족과 민족 사이에 더 나은 이해가 증진될 것이라고 나는 진심으로 희망한다”라고 적고 있다. P.A.크로포트킨은 끝내 인간의 희망을 보려고 한 인간이었다. 《상호부조론》도 사실 그의 이러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낳은 산물이다.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리고 적자생존론

최근 브렉시트로 시끌벅적한 영국은 1980년대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가렛 대처의 소위 <대처리즘>시대 이후 영국적 상황에 처한 선택이었다. 2013년 4월 8일, 87세의 대처가 사망하자 “마거릿 대처의 유산은 인간 정신을 파괴한 사회 분열, 이기심, 탐욕”(영국 일간지 《가디언지》), “대처리즘은 지금도 우리를 파괴시키는 국가적 재난”(《인디펜던트지》의 오웬 존스의 칼럼), “대처는 영국이 오늘날 직면한 모든 문제에 책임이 있다.”(전 런던 시장, 켄 리빙스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국 경제가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처의 유산 때문일 수 있다.”(《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의 평가가 뒤를 이었다. 대처가 사후 이렇게 인색하다 못해 극단적으로 폄훼 당하는 이유는 그녀가 재임기간동안 저질러 논 경제정책이 바로 신자유주의 정책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바로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경제논리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브렉시트 사태에서 영국인들의 선택은 기실 이 ‘신자유주의의 원조’로 불리는 <대처리즘>에 기원을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바로 이 신자유주의의 기원이 바로 진화론의 적자생존론이다. 그리고 그 적자생존론의 이론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찰스 다윈인 것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19세기 근대를 가르는 자연과학의 고전적 이론이며, 자연계와 인류가 진화해 온 종임을 인식시킨 과학적 이론이다. 아직까지 지구행성의 과학계에서는 진화론은 부동의 과학적 진실로 대우받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물리학에서의 뉴턴과 정신분석학의 프로이드와 함께 근대 이후 인류사상의 혁신을 가져와 인류의 자연관과 세계관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이 이론이 처음 나오던 시대는 소위 제국주의가 승승장구하던 시대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과학적 이론이지만, 이 이론은 이후 사회, 경제, 생활 그리고 정치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건설의 합리화를 위한 이론적 배경이 되기에 이른다. 물론 이는 다윈의 원했던 효과는 아닐 것이다. 

‘적자생존’의 진화론 그리고 홉스·스펜서·헉슬리
 
1859년 《종의 기원(정식명칭은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의 출간과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버린다. 진화론에 입각하여 보면 자연은 끊임없는 생존 경쟁과 투쟁의 현장으로 보게 되었고, 자연계 내의 모든 생명체가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승리하는 “적자”가 “선택” 받는 것이 자연의 자명한 법칙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개개인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경쟁을 벌이는 것은 진화론에 의하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는 종교적(?) 믿음이 뿌리 깊게 자리 잡게 된다. 이 믿음은 근본적으로는 다윈에게서 비롯되었지만, 사실 진화론의 자연선택설을 자연계 너머로 확장하면서 제국주의 시대의 이론적 합리화전략과 맞물려 벌어진 사상적 변이이기도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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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윈과 《종의 기원》표지.
진화론의 개념으로 널리 알려진 ‘적자생존론’은 다윈의 것이 아니다. 그는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1859)에서 진화의 원리를 ‘자연선택’으로 설명하면서 “진화는 생존을 위한 경쟁과 투쟁, 가장 유능한 자들의 승리와 생존, 승리한 자들의 선택과 패배한 자들의 도태로 요약된다”라고 했다. 하지만 생물 진화에서 생존경쟁에 대한 다윈의 생각은 다윈의 추종자들에 의해, 당시 제3세계를 식민지로 확장하고 있던 제국주의 유럽의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면서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논리로 강화되고 확산되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은 기본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서 경쟁하는 것이고 경쟁에서 뒤쳐져 도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에서 승리한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의미였다. 기독교적 우월성 위에 과학적 토대까지 갖추는 것이었다. 이러한 당시의 지적 풍토는 유럽에 머물지 않고 중국, 일본 심지어 우리나라의 계몽사상에도 영향을 끼쳤다. 찰스 다윈의 고종사촌인 인류학자인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진화론을 우생학으로 연결시켰다. “사람의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우수한 유전인자”라며 “저능아나 장애인들은 수도원에 격리해 단종(斷種)시켜야 한다”라는 골턴 우생학과 사회적 다윈주의는 히틀러의 독일에서 꽃피웠고 그 결과는 20세기 역사를 가장 반인륜적인 홀로코스트였다.

생존경쟁과 자연선택 또는 적자생존의 진화론에 대해 반박하기 위해 쓰인 트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은 사실 다윈이 이미 자신의 글에서 밝힌 바 있다. 《종의 기원》 출간 12년 뒤 출판된 《인간의 계보, 선택과 성의 연관성》(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 1817)에서 다윈은 “자연 선택에 가장 성공적이었던 종들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서로 돕고 단합할 줄 아는 종들이다. 협력을 잘하는 구성원들이 많은 공동체가 잘 번창하고 가장 많은 수의 자손을 부양한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대의 다윈의 견해에 동의했던 추종자들은 《종의 기원》에서의 진화원리에 더 깊은 영향을 받았거나 다윈의 이론을 편의에 따라 자신의 관심영역에 따라 활용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러한 경향을 확대 재생산하고 이를 부풀린 것은 전적으로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와 토마스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95~1895)의 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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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으로부터 토마스 홉스, 허버트 스펜서, 토마스 헉슬리.
다윈과 동시대인인 ‘허버트 스펜서’는 다윈에 앞서 생물의 진화를 주장한 학자로, 다윈의 생물진화론을 사회학에 도입한다. 그는 “사회는 단순한 상태에서 복잡한 상태로 진화하며, 더 발달된 사회가 덜 발달된 사회를 지배하는 적자생존의 원칙도 적용된다.” 하여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을 주창, 창시자가 된다. 다윈 진화론의 핵심적인 용어의 하나로 널리 알려진 ‘적자생존’은 다윈이 아니 스펜서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하지만 적자생존은 ‘적합한 자가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생물은 또 적합하고, 그래서 살아남는다.’라는 식의 순환논리의 모순에 빠지는 경향과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 되어 결국 우생학(優生學: eugenics)까지 낳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생학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의 기반이 되는 학문이다.  이는 결국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논리와 맥을 같이 한다. 이런 탓에 찰스 다윈조차 “나보다 몇 배는 나은 위대한 철학자”라고 했던 영국사회학의 창시자인 그는,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사회진화론자’이라는 말은 낙인이 되었고, 그의 명성은 학계에서도 급전직하 된다. 물론,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가 국가개혁론의 선구자로 재평가 받으며 21세기에 다시금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칭을 얻은 영국의 동물학자인 ‘토마스 헨리 헉슬리’는 다윈의 진화론을 처음 접하고는 “난 바보야! 이렇게 간단한 생각을 왜 못했을까?”라고 한탄했을 정도로 크게 감탄했고, 이후 다윈의 사상을 보급하는 데 앞장섰다. 과학자이기 보다는 과학지식인으로 불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다윈의 생존경쟁 개념을 더욱 좁혀 인류사회도 그러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문 <인간사회에서의 생존 경쟁>에서는 “동물의 세계란 대체로 검투사의 유희와 같은 수준에서 흘러간다. 생명체들은 곱게 다루어지지만 결국 싸움으로 내몰린다. 그 싸움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교활한 자가 살아남아 또 싸운다.”라는 동물계의 분석을 내놓는다. 이는 인간사회를 포함하는 것으로 크로포트킨이 상호부조론을 집필하게 만든 직접적 동기를 제공한 논문이기도 하다. 번역본의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다. 그는 인류진화라는 민감한 주제로 종교적인 논쟁을 피하고자 했던 다윈이 진전시키지 않았던 인간의 진화를 진화론의 논의 안으로 끌어 들였다. 네안데르탈인이 화석을 직접 연구한 그는 그의 저서인 《자연계에서 인간의 위치》(1863)에서 진화상 중요한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이들보다 2세기전인 1651년에 토마스 홉스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 leviathan》에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특히 “폭력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를 지속적으로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와 같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홉스는 사회계약을 통해 법과 나라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각자 하늘로부터 받은 권리를 일정 부분 스스로 제한함으로써 같이 살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다시 말해 영원히 평화를 유지시킬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이 서로 간에 계약을 맺어 ‘절대 국가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그 명령은 실제로 위반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야 하기에, 국가를 성서에 나오는 거대한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비유하였다. 이러한 홉스의 이론은 오래도록 유럽인들의 뇌리에 남아 있었는데, 다윈 진화론의 시대에 이르러 새로운 동반자를 만나게 된 셈이었다. 이러한 두 사상의 조우는 ‘적자생존’이라는 논리와 만나면서 더욱 확장되고 제국주의 시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만나면서 자연계와 인간사회 모두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는 풍조가 조장된다.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집필되었다. 그는 다윈 진화론의 옹호자였으며 생존경쟁이나 자연선택 같은 개념도 무조건 배척하지 않았다. 그는 종과 종사이의 경쟁인 외부전쟁과 종 내부 개체들 사이의 경쟁인 내부전쟁의 역동적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그는 다윈의 진화론에서 일종의 유행어가 된 ‘생존경쟁’과 ‘적자생존’ 이라는 용어가 당시 유럽사회에서 제국주의의 야만성과 문명의 야만성을 합리화하는 이론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 팽배한 약육강식의 논리를 비판하기 위해서 집필한 것이었다. 그가 상호부조론을 집필을 직접적으로 시작한 것도 바로 ‘다윈의 불독’으로 불리는 헉슬리의 논문에 촉발되었다. 

과학의 이름으로 진화의 다른 방식을 고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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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교시절의 크로포트킨.
이 책은 총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 2장은 동물들의 상호부조, 3, 4장은 야만인과 미개인의 상호부조, 5, 6장은 중세도시의 상호부조, 7,8 장은 근대인의 상부조로 이루어졌다. 1888년 헉슬리의 논문에 자극받아 반박하기 위해 《19세기》지에 발표한 글들(1890~1986 사이 5회에 걸쳐 발표)이 이 책의 모토이다. 이후 6년이 시간이 소요되었고 마침내 집필을 시작한지 13년 만에 《상호부조: 진화의 한 요인》으로 묶여 나오게 된다. 

1, 2장의 동물의 세계에 대한 글들은 군 장교시절 시베리아지 동부와 만주지역의 담사를 통한 조사에서 얻은 것들이다. 그는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가는 조류와 포유류들이 상호협동의 행태를 통해 자연의 폭압을 견뎌내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고 놀라워했다. 우수리 강과 흑룡강변의 광활한 호수에서 함께 살아가는 갖가지 조류의 모습에서 종의 경계를 넘어선 상호부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일반적인 인식은 동물 대부분이 자연 상태에서 상시적인 굶주림으로 고통 받았으며, 따라서 먹이를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이러한 인식은 현재의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크로포트킨에 따르면, 이런 생각은 입증된 바가 없다. 평시에 개체 수는 대부분 자연이 포용할 수 있는 한계치 이하로 머문다. 국지적으로 개체 수가 포화상태에 근접할 경우 한곳에서 머물며 개체 간에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이동을 통해 새로운 지역으로 타 지역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이 동물들의 일반적인 선택이다. 실제로 개체들의 노화 이외의 사망이유는 대부분 경쟁에서 도태되어서가 아니라 급작스러운 환경 변화나 혹독한 질병과 맞닥뜨려서다. 그러므로 자연 상태에서 생존투쟁은 대부분 동물 개체 간의 투쟁이 아니라 혹독한 환경과의 투쟁임을 밝힌다. 토마스 헉슬리의 자연계에 대한 견해는 이 장의 결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3장부터는 인간사회로 옮겨간다. 이 장부터는 자연상태의 인간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벌인다는 홉스식의 견해에 대한 다른 결론이 도출된다. 자연상태의 야만인들에게서는 만인간의 끊임없는 생존경쟁을 위한 격렬한 상호투쟁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초기의 인류 역시 씨족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상호부조를 구현했음을 밝혀낸다. 그가 관찰한 수많은 미개종족은 모두 함께 먹을 것을 구하여 나누어 먹으며 살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소위 홉스의 “사회계약”이 등장하기 이전시대에도 인간은 평화로운 공존을 실현했던 것이다. 결국 그의 사회계약론은 절대군주를 잉태하기 위한 태반이었을 뿐이다. 

이 책은 야만인들의 사회에서부터 촌락공동체가 형성된 시기의 미개인들의 사회, 로마 멸망 이후 농업공동체가 생겨나지만 전사집단에 의해 종속되는 과정, 이후 장원을 중심으로 한 봉건제가 출현하면서 촌락공동체가 와해되는 과정, 뒤이은 촌락공동체와 중세도시인 길드 즉 중세자유도시연합의 시대의 형성과 번영, 그리고 15세기 말에 이르러 강력한 국가권력이 탄생하면서 이들 공동체와 도시가 어떻게 명멸해 가는지, 국가가 모든 공동체의 사회적 권한을 앗아간 이후 공동체라는 서식지를 상실한 인간들이 개인주의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유도시의 ‘시민’들은 이제 국가 안의 편협한 ‘개인’으로 전락한다. 

또한, 이러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상호부조의 역사가 오래도록 이루어져 온 것임을 여러 통계와 역사자료들을 동원해 보여준다. 야만인들의 시대에도 씨족은 상호부조를 행하는 최소의 단위가 존재했으며, 2000년 전 세계적 차원에서 도래한 유래 없는 급격한 건조기후에 의해 많은 씨족사회가 멸족했어도, 살아남은 종족들은 다시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농촌공동체를 형성하고 개인적 불운을 사회적 재난으로 대응하거나 민회를 통해 공동체를 운영하며 상호부조를 이루어갔다. 중세 봉건제 하에서도 토지의 공동소유와 자치사법권을 확보해 공동체의 상호부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정치적인 자유를 보호하는 정치조직임과 동시에 상호원조와 지원, 소비와 생산을 위한 경제적 연합이었던 자유도시 건설을 이룩한 일. 끈질긴 투쟁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해 모든 사회공동체가 유린당한 이후에도 스위스의 경우처럼 공유지와 함께 상호부조에 뿌리 내린 습속과 제도 역시 면면을 이어왔음을 보여준다. 공유의 제도와 상호부조의 전통은 현대 산업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형태로 부활하는데, 노동자 및 서민 계층의 대표적인 공동체가 바로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이다. 그 밖에 다양한 공제회나 국가를 매개로 하지 않고 사회적 관계를 맺어 공동으로 대응하는 상호부조의 전통은 여전히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그는 이 책에서 보여준다. 

이처럼 자연계와 인간계 야만인에서 근대인까지를 관찰한 그의 글들은 당시 다윈주의자들의 오류를 증명하고 남았다. 즉, 자연계에 일상적으로 알려진 생존투쟁이나 소위 국가탄생의 배경이 되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상태”가 얼마나 허울 좋은 논리인지를 이 책을 통해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을 일이었다. 생존경쟁은 상호투쟁이 아니라 상호부조를 통해 이루어져 왔으며, 자연선택이나 적자생존 역시 개체들의 상호부조를 통해 얻어낸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크로포트킨의 이러한 고찰은 사실 자연계와 인간사회의 상호부조의 역사를 그리는 동시에 모든 공동체의 자유를 앗아가 버린 홉스의 리바이어던의 속살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이 책이 아나키즘의 과학적 이론서라 불리는 이유는 거대권력인 국가시스템이 인류의 역사 단계에서 무슨 일들을 벌였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이 국가를 거부하고 무정부를 지향하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아나키즘과 상호부조론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은 다윈주의에 대한 비판과 공박을 위한 이론서가 아니라 당시 사회운동의 형태로만 존재하던 아나키즘의 과학적 토대를 마련해 준 최초의 이론서라는 평가를 얻는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아나키즘은 ‘과학적 사회주의’로 불리는 마르크스주의에 이론적으로 맞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받았다. 아나키즘은 동양에서는 일본을 통해서 수입되면서 ‘무정부주의’라고 번역되었는데, 이는 아나키즘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테러리즘과 함께 연상되도록 하는 일제의 문화전략의 산물이기도 했다.

아나키즘은 창시자인 조제프 피에르 프루동(Pierre Joseph Proudhon; 1809~1865)에 의해 이론화되었는데, 현실에서 ‘아나키’란 표현은 프랑스대혁명 이후 19세기 정치에서 ‘지배자 또는 통치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 즉, ‘폭력과 무질서와 동의어’인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프루동은 교회, 종교 및 독재와 같은 모든 유형의 절대적 힘에 대항하여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고자 의도하였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라도 공공이익 또는 사회정의를 이유로 개인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강정해군기지를 바라보며 푸루동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프루동은 “다양한 자유체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영어로 ‘자치정부’(self-government)로 불리는 체제를 아나키 혹은 개별정부로 지칭하고자 한다.”(《연방의 원리》)라고 말해, 아나키즘 역시 완전한 ‘허무주의’나 ‘무질서한 무정부주의’가 아니라 거대한 권력이나 억압이 없는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자치를 궁극의 정부형태로 보았던 것이다. 프루동은 ‘아나키=자치정부=개별정부’, 즉 궁극적으로 ‘주인이나 주권자가 부재한 통치형태’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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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기의 크로포트킨.
이 책은 이미 아나키스트로 전향한 이후의 크로포트킨이 저술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또 다른 사회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이 책은 쓴 이유가 단순히 헉슬리의 학문적 입장에 대응한 것이 아니라, 다윈을 편협하게 해석하고 당시의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과 착취를 합리화하는 이론으로서의 다윈주의를 공박하기 위해서 쓴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나키즘 역시 반제반독재라는 측면에서 이 시기에는 사회주의 혁명세력과 연대하고 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였던 크로포트킨의 시각으로 쓰인 상호부조론 역시 자연계에 실재하는 현상들 속에서 아나키즘적 가치를 가지는 것을 중심으로 서술한 것은 분명한 일이며, 그런 측면에서 국가를 부정하고 권위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권력에 대한 반감 역시 컸을 것이다. 

《상호부조론》을 통해 볼 때 그의 아나키즘적 관심을 끄는 부분은 ‘중세자유도시연합’이었을 것이다. 이 중세자유도시연합이야말로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의 눈에는 아나키즘적 공동체의 실제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군대와 경찰을 보유하지 않으면서도 공동체적 상호부조와 자치 사법권의 원리를 근간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상호부조론》 6, 7장의 근대국가 항목에서 국가는 단 한 번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이는 그가 현실 속의 아나키즘적 공동체에 가장 근접한 자유도시연합을 붕괴시킨 것이 바로 근대국가였기 때문이다. 근대국가의 출현이 공동체가 수행했던 사회적 기능을 무장해제 시켜, 국민국가를 최소 단위로 하는 전쟁을 도래했기 때문이다. 

크로포트킨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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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년의 크로포트킨.
이 책의 저자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Pyotr Alekseyevich Kropotkin)은 위키백과의 서술을 따르면 러시아 출신의 지리학자이자 아나키스트 운동가, 철학자였다. 원래 신분이 귀족이었던 점과 아나키즘에 지대한 공헌을 한 바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아나키스트 대공’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정작 크로포트킨 본인은 권위적인 어감을 가지는 이 별명을 싫어했다고 한다. 크로포트킨은 모스크바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186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근위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짜르인 알렉산드르 2세의 시종무관과 아무르 강 코사크 기병대의 장교로 근무했다. 1867년 군을 퇴역한 후 지리학자로서 유럽 여러 곳을 탐험하였다. 이 시기의 경험이 그가 이 책을 쓰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때의 연구에 기초하여 산맥구조선 이론을 구상 했으며, 이 연구결과로 지도작도법을 새로 수정했다고 하며, 빙하작용 현상에 대해서도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다.

이후 크로포트킨은 니힐리즘 성향 단체인 ‘차이코프스키단’에서 활동을 했다. 1874년 경찰에 체포되어 병원감옥에 수감되었으나 2년 후 탈출하여, 영국, 프랑스와 스위스의 쥐라에서 아나키스트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아나키스트의 상징적 존재인 미하일 바쿠닌(Michael Bakunin)과 조우한다. 1882년 프랑스에서 폭동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2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그 후 크로포트킨은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 영국으로 건너가 저술 활동에 주력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발발하자 페트로그라드에 돌아와 민중들의 환영을 받았다. 케렌스키의 임시정부에서 교육장관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그는 혁명을 통해 아나키즘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를 했으나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고 독재 체제로 변화하자 이에 항의했다. 아나키스트 운동가들이 체포당하고 많은 단체들이 강제로 해산 당하자 "이것은 혁명의 매장이다"라고 친구에게 말했다고 한다. 크로포트킨은 볼셰비키가 혁명이 전체주의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증명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크로포트킨은 시종일관 《상호부조론》에서 생존경쟁이 없다는 게 아니라 생존경쟁 외에도 상호부조라는 원리가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모두에 맞선 각자의 전쟁은 자연의 유일한 법칙이 아니다. 상호투쟁만큼이나 상호부조 역시 자연의 법칙이다.”라고. 또한, “진화의 한 요인인 상호부조는 어떤 개체가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최대한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종이 유지되고 더 발전하도록 보증해 주면서 그런 습성과 성격을 발전시키기 때문에 어쩌면 상호투쟁보다 더욱 중요할 수 있다.”라고 한다. 그는 상호부조와 개인의 자기주장을 진보의 두 요인으로 꼽는다. 

지난 10년 우리사회는 급격하게 극한 생존경쟁의 사회로 비약했다. 정부가 행하겠다던 국가부조의 약속들은 어김없이 폐기되거나 미루어졌다. 사회적 강자인 부자나 재벌들에게만 더 큰 이익이 돌아가도록 경제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전히 크로포트킨이 증명해냈던 상호부조의 가치관과 철학은 아이들의 교실내로, 우리들의 가정 내로, 지역사회의 공동체 내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소위 학원의 뺑뺑이 학생으로 만들면서도 이는 자기 자식의 극한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부모의 애정이라는 착각하는 속에 우리나라의 사교육 열풍은 연중 호황중이다. 초중등학교부터 입시경쟁, 대학교는 취업준비생들의 준비과정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부모들은 다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미래는 다윈의 진화론이나 헉슬리 스펜서가 얘기했던 처절한 생존경쟁의 장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혹독한 자연계와 거대한 리바이어던의 횡포 앞에서 인간이 살아남는 길은 상호부조의 길밖에 없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경훈 화백

※ 매주 월요일 아침 고정 코너인 BOOK世通 제주읽기가 필자의 사정으로 2주 동안 차질을 빚게 됐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 박경훈 화백

민중미술가, 문화운동가

전 제주전통문화연구소장

전 제주민예총 이사장

현 도서출판 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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