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15) 사슴벌레, 집으로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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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닐하우스에서 만나 집에서 키우게 된 사슴벌레. ⓒ 김연미

난데없이 귤나무 이파리에 매달려 있는 사슴벌레 한 마리. 집게를 머리에 단 직사각형 몸뚱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아무 것도 없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뭐하는 거지. 일단 조심스레 손으로 잡아본다. 갈퀴발로 붙잡고 있던 이파리를 놓고 내 손에 잡혀왔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허 참 신기하다. 얼마 만에 만나보는 거야.

예전에는 참나무 밑둥치에서 곧잘 발견되곤 하던 사슴벌레였다. 자신이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사슴벌레는 참나무 둥치에만 연연해 있었다. 작은 나뭇가지 같은 걸로 녀석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녀석의 화를 돋우기 위해서였다. 인내심이 바닥난 녀석이 집게를 바짝 치켜들었다. 무엇이든 잡히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완강한 의지가 집게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우린 그 모습에 환호성을 지르며 더 약을 올렸다. 집게에 걸리지 않도록 나뭇가지로 툭툭 치다 빠지는 아이들과 그 나뭇가지를 붙잡아 분질러버리겠다는 사슴벌레의 실랑이가 한참 이어졌다. 우리들의 순진함 한 켠에 자리 잡은 잔인함이 그렇게 표출되던 시기였다.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서 이렇게 뜬금없이 사슴벌레를 다시 만난 것이었다. 

근데 어떡하지? 하우스 밖으로 버리기에는 아깝고, 그대로 놔두자니 뭔가 손해 보는 기분. 일단 바구니에 넣었다. 집으로 갈 때까지 그대로 있으면 가져가 키워보고, 도망가 버리면 할 수 없고.

사슴벌레는 가끔 날아다니기도 한다는데, 하루 종일 바구니 안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바구니 안에 놓인 모자 밑으로 약간 이동 했을 뿐이었다. 집으로 가져왔더니 아이들이 뛸 듯이 좋아한다. 사슴벌레 책자를 가져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연구를 한다. 물에 닿으면 안 된데. 야행성이라서 얘는 지금 자야돼. 아, 그래서 애가 낮에 꼼짝을 안한 것이구나. 딸은 인터넷을 뒤져가며 사슴벌레 사육에 필요한 상자와 먹이들을 검색한다. 상자와 먹이는 오일장에 가서 사기로 하고, 일단 플라스틱 통 안에 화장지를 깔고 놓아주었다. 사과 몇 쪽 잘라서 넣고 잠시 두었더니 화장지를 다 걷어내고 그 안에 들어가 사과를 부둥켜안고 꼼짝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또 그 모습에 호들갑이다.

며칠 후에는 오일장에 가서 암컷 한 마리를 샀다. 기골이 장대한 수컷과 달리 암컷은 작았다. 생각 같아서는 잘생긴 수컷 두어 마리 더 사다 놓고 싶은데 주인여자가 말린다. 수컷은 절대 한 공간에 두 마리 이상 놓는 게 아니란다. 저들끼리 서열싸움 하느라고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것이었다. 수컷들의 세상은 참 무섭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신학기가 되어 새로운 반이 결정되면 남자아이들은 한동안 치고 박고 정신이 없단다. 서열을 정리하는 과정이란다. 그렇게 서열 정리가 끝나면 반에 평화가 찾아온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집은 아직 서열정리가 끝나지 않았다. 늘 남편과 아들이 서로 티격태격한다. 아들에게 유독 이기려는 드는 사람이나, 그런 아빠한테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아들이나 수준이 똑 같다.

서열을 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슴벌레 통 안에는 평화가 늘어져 있다. 새로 넣어준 톱밥과 먹이통 사이에 굴을 파고 드러누워 있는 수컷과, 톱밥 깊숙이 숨기를 좋아해 종종 행방을 알지 못하는 암컷이 서로의 존재를 아는 듯 모르는 듯 무심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자연에서 혼자 외롭게 살던 녀석을 데려와 먹이 걱정 없이 대 주고, 짝을 지어주고 그 어떤 자연적 위협에서 벗어나 살게 해 주었으니 이 녀석은 행복 할까.집에 데려와 며칠을 버티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톱밥 사이로 숨어버린 사슴벌레의 행방을 따라가다 문득문득 드는 생각이다.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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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서귀포시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부’인 그는 <제주의소리>에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를 통해 하루하루 직접 흙을 밟으며 겪은 일상의 경험들을 풀어놓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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