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⑬ 신문물의 상징 카페, 제주의 새로운 명소 '주목'

카페, 커피하우스는 근대 서구의 산물이다.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콩을 볶아 만든 검은 음료가 아랍을 거쳐 유럽인이 좋아하는 최고의 기호품이 되는데 수백 년이 걸렸다. 이후 식민지의 커피콩을 공수해 음료로 만들어 마시는 장소가 바로 카페였다. 18세기 말 런던과 파리의 생겨난 카페는 지식인, 계몽주의자들, 혁명을 바라는 공화주의자들이 몰려들어 커피 음료를 마시며 토론을 벌이곤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카페가 새로운 사고를 퍼뜨리는 공공장소로 떠오르면서 억압과 착취에 신물이 난 사람들이 유럽의 왕정을 무너뜨리고 약화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커피에 어떤 힘이 들어있다는 당시의 추측이 사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이 되면 파리, 베니스, 런던 등 유럽의 주요 도시의 카페는 예술가, 문인 등이 모여 자신들을 키운 부르조아 및 귀족계급을 비웃으며, 자유와 사랑의 대변자임을 자처하곤 했다. 그들은 카페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고, 영화를 상영했으며, 퍼포먼스를 통해 세상을 풍자하며 ‘예술’이라는 근사한 분야를 더욱 근사하게 만들었고, 아름다움과 퇴폐스러움, 혁신성과 낯설음을 오가며 근대문화를 꽃피웠다. 

카페는 일제 강점기 한국에 들어와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어울리는 핫한 장소이자 전근대적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의 이동을 알리는 개방된 문화의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1930년대 서울의 명동 거리를 매운 카페는 일본에서 수입된 카페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곤 했다. 이후 한국의 카페는 서구의 것처럼 예술가와 보헤미안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고 한국의 문화와 예술의 산실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제주의 카페문화는 역시 6.25 피난시절을 빼고 말할 수 없다. 칠성통의 동백다방은 그중에서도 작가 계용묵의 아지트로 제주문학에 큰 영향을 미친 곳이다. 칠성통을 중심으로 퍼진 원도심의 카페에는 신문기자, 소설가, 시인, 화가, 대학생 등이 몰려들곤 했고 그런 문화는 이후에도 지속되면서 세대마다 기억할 만한 카페가 있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닐 무렵 중앙로 사거리 2층에 있던 ‘한밭’은 맛있는 유자차로 여성들이 자주 찾던 곳이다.  

요즈음 제주에 핫한 카페는 토박이들이 찾는 도시 건물의 지하나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는 카페가 아니다. 관광객이 몰려들어야 성공한 카페이다. 그들은 블로그와 SNS, 그리고 신문과 잡지에 소개된 특별한 곳을 찾아가는데, 푸른 바다를 바로 앞에 품은 현대식 건물이나, 오래된 공장이나 창고를 개조한 카페들이다. 

유명 연예인이 만들었다는 소문이 무성한 애월리의 한 카페는 조용한 마을을 관광객으로 채우고 있다.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통 큰 유리창과 높은 천정, 그리고 포스트모던하기 그지없는 샹들리에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바다로 난 길 끝에 소담한 나무구조물이 있는데 그 안에 앉아 24시간 해와 바다의 조우를 감상할 수 있다. 먼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곳을 한없이 보다보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료해진다. 다만 바로 옆에 넘쳐나는 쓰레기는 큰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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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상, 애월' 모습. 사진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자연보다 인공물에 애착을 갖는 카페도 있다. 그중에서도 옹포의 ‘앤트러사이트(Anthracite)’는 주목할 만한 곳이다. 이정표도 없고, 낡은 정도가 거의 폐건물에 가까운 수준인데, 그런 건물에 카페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전분공장이 문을 닫은 지 수십년 되었고 영국산 수입기계는 낡고 지붕은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다. 흙바닥위에 화초를 심고, 낡은 금속 위에 물건을 놓고, 거친 목재로 테이블을 만들어 말 그대로 ‘폐허의 미학’을 살린 곳이다. 카페 이름은 ‘무연탄’을 일컫는데, 커피를 열심히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합정동에 신발공장을 개조한 본점을 연 주인은 제주에 와서 옹포리 분점을 열고, 최근에 한남동에도 동명의 카페를 만들었다고 한다. 보헤미안 문화가 단순히 소비되는 문화가 아니라 새로운 사업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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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트러사이트 제주' 모습. 사진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뜨거운 여름 햇빛을 뚫고 사람들이 이런 카페로 몰리는 것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그들은 대부분 20-30대의 호기심 왕성한 세대로 지난 5년간 제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독채 펜션, 게스트하우스, 특이한 카페 등)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과거에 골프를 즐기거나 중문의 고급호텔에서 쉬면서 수영을 즐기던 관광객들과는 다른 부류이다. 이런 카페를 만든 사람이나 찾아오는 사람은 새로움과 특이함을 찾아 제주인이 버린 집과 길, 공장과 창고를 재발견하고 있다. 바로 그 재발견의 순간에 문화가 피어난다. 비록 곧 소비되어 식상해질지도 모르지만.  


▲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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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 미술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영어교육학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예술과 철학에 대한 호기심을 포기할 수 없어서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까지 공부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졸업한 뒤 서울, 뉴욕 등 세계를 다니며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그동안 큐레이터, 갤러리 디렉터, 프로젝트 매니저, 교수 등 미술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하면서 예술과 사회의 역학관계를 체험하고 연구하고 있다. 11년간 체류한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조명한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를 저술했으며, 『개념미술』(2007)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는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를 돌면서도 언제나 마음은 고향을 향해 있었다. 특히 요즘 문화예술의 섬으로 떠오르는 고향 제주를 주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를 통해 글로벌 시대의 제주의 문화예술 비전을 고민하는 일은 또다른 고향사랑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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