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2) 냉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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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국. ⓒ 김정숙

가장 제주다운 음식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냉국’이라 하겠다. 신선하고 건강한 재료, 만들기 쉽고, 단촐 하지만 더위에 지친 입맛을 달래는데 이만한 음식이 없기 때문이다. 기본은 나물을 손질해서 날된장으로 버무리고 냉수를 부어 간맞추면 끝이다. 불 없이도 되는 초 간단 메뉴다. 지금은 갖가지 재료와 양념이 넉넉해서 조금만 꾀를 부린다면 여름밥상은 후루룩이다. 

들로 바다로 바깥활동이 주된 생활이었던 제주 사람들에게 냉국은 정말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야외음식이기도 했다. 삶은 배추, 물외, 미역이나 톳에 된장양념을 해서 갖고 다니다가 냉수를 부어 먹는데 갈증을 한방에 날려준다. 흘린 땀을 보충하는 원조 이온음료였다. 얼음이 없던 시절도 그랬는데 얼음 동동 띄운 요즘이야 두말 해 뭣할까.

냉국이 제주에만 있는 음식은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날된장’을 쓴다는 거다. 된장은 여러 재료들과 잘 어우러지는 맛이 있다. 그렇다 보니 냉국에 쓰이는 재료가 참 다양하다. 익혀먹는 나물은 익혀서, 생으로 먹는 나물은 생으로 하면 된다. 제철인 한치오징어를 살짝 데쳐 채 썰어 한 데 섞으면 오징어 냉국이 된다. 오징어 냉국은 오이와 잘 어울린다. 거기에 고명으로 부추를 송송 썰어 얹고 식성에 따라 풋고추 한 두 조각 띄우고.

된장은 전통 발효식품이다. 몸에 유익한 발효균은 생으로 먹을 수 있으면 생으로 먹는 게 좋다. 그러나 우리가 된장을 생으로 먹을 일이 ‘쌈장’이나 말고는 거의 없다. 된장냉국을 예찬하는 이유다. 그 뿐인가. 냉국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게 식초다. 식초는 자연이 준 기적이 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된장이며 식초 신선한 제철 식품, 그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재료가 모인 음식이 냉국이다. 몸에 좋다는 식초 또한 신경 쓰지 않으면 많이 먹을 수 없는 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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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국의 재료들. ⓒ 김정숙

식성에 따르긴 하지만 요즘은 설탕도 더해지는 추세다. 단맛에 길들여진 혀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다. 냉국에까지 단맛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막아보자. 단맛이 나는 파프리카나 참외 같은 재료를 섞어 쓰는 것도 방법이다. 버섯이나 대파, 다시마, 무 같은 재료를 한데 끓여 채수를 우려낸 다음 식혀서 맹물대신 쓰면 감칠맛을 더 할 수 있다.

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하면서 끼니때마다 써도 되고 얼음을 만들어도 된다. 된장과 약간의 고추장, 식초를 섞어 한꺼번에 냉국양념소스를 만들어 놓고 쓰면 편리하다. 발효식 품인 된장이나 식초가 이미 공장에서 살균처리 되어 나오는 것들이 많아 날것의 의미가 덜 해 아쉽다. 기왕 먹는 거 발효균이 펄펄 살아있는 날 것으로 먹고 싶다면 살균처리 되지 않은 전통된장이나 식초를 찾는 수고쯤은 해두자. / 김정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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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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