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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도 너무 더울 땐 차라리 이러면 어떨까?

홍경희 baramsum@hanmail.net 2016년 08월 13일 토요일 09:00   0면
[숨, 쉼] 피하지도 말고, 싸우지도 말고, 더위와 친구하기

덥지 않았던 때가 도대체 언제였던지 헤아리기 힘든 요즘이다. 어제도 더웠고 그제도 더웠고 오늘도 역시 덥다. 내일도 덥다 하고, 그 더위가 다음 주까지 계속된다 하니 가히 ‘더위 전성시대’라 할만하다.해가 들어가도 바람 한 점 없는 저녁, 남편과 딸이 마주 보며 덥다고 축 늘어져 있다. 조금 과장하면 요즘 아이들에게 친숙한 단어로 ‘더위 배틀’을 진행 중이다. 누가 더 얼마나 더운지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것. 그 옆을 지나가며 내가 한마디 툭 던진다.

“더위를 바라 봐, 그러면 괜찮아.”

둘이 동시에 도끼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씩 한다.

“또 시작이네.”
“또 잘난 척.”

두 사람의 배틀은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누가 더 비난 짜증 어이없음 등의 표정을 얼굴에 잘 담아내 나를 째려볼 수 있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또 더위를 바라보라고 한다. 늘 있는 그 정도 반격이야 예상 못한 것 아니다.

“아니 , 덥다고 말하면 더위가 사라지냐. 그냥 더위를 바라보며 자기 몸을 맡겨봐.”

정말 내 생각은 그렇다. 피하지도 말고, 싸우지도 말고 더위와 친구해 이 여름을 잘 지내자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매사 모든 상황을 극복하거나 경쟁에서 이겨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아온 것 같다. 불타오르는 굳은 의지로 현재를 넘어 찬란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런데 잘 생각하면 오늘이 과거에 그렸던 찬란한 미래인데, 여기서 또 다음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오늘을 극복해야하는 힘겨운 날로 지내야 하나? 

더위를 피하기 위해 하루 종일 냉방이 잘 된 곳에서 지내면 좋은가.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머리 아프고 살갗이 아프다고 한다. 온갖 저주의 말과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더위와 싸워 이기면 승리의 선물로 시원해지는가. 하나도 시원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더위와 친구하자는 것이다.

여름이 더운 날씨임을 알고 친하게 잘 지내다보면 어느새 날은 갈 것이다. 하루하루 날이 지나 여름 가을 가고 다가온 추운 겨울 어느 날, 문득 그리워지는 햇볕이 넘쳐나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그러니 여름에 겨울을, 겨울에 여름을 그리워하지 말고 그때그때 잘 지내자는 것이다. 사실 더워야 여름 아닌가. 왜 여름에 가을 겨울처럼 지내길 원하는가.

데이터를 입력하면 그 자료를 토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인공지능이 지금의 우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한여름에는 덥다며 문 닫고 냉방기를 틀어놓는다. 너무 온도를 내리다 보니 한 여름에 냉기를 막는다며 긴 옷을 챙겨 입는 우리의 모습을. 한겨울에는 지나친 난방으로 반바지 반팔입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는데.더위에 대한 기록을 날마다 갈아치우고 있다는 올 여름 내가 더위와 친구하며 장만한 것은 양산이다. 가장자리가 예쁜 레이스로 장식된 양산을 쓰고 햇볕 쏟아지는 거리를 걸어간다. 허리 펴고 어깨 펴고 당당히 걸어간다. 아낌없이 쏟아지는 한낮의 햇볕은 세상을 환하게 물들여주고 있다. 하지만 몸으로 다가오는 햇볕은 뜨거운 열기다. 잠시 주춤거리다가 다시 걸어간다.

“더위, 안녕. 너 참 뜨겁구나.”

반갑게 인사하며 걸어가다 뜻밖의 친구를 만났다. 바람이다. 레이스 자락 하늘거리는 양산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햇볕과 노닥거리는 사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한줄기 바람이 스르르 지나가는 것이다. 그 바람의 맛은 참으로 달달하다. 냉방 잘된 시설에서 소매 긴 옷 입고 지내거나 더위에 대한 투정만 부리면 절대 맛보지 못하는 그 달콤한 한 줄기 바람의 맛.

그 바람은 눈으로 볼 수도 있다. 신제주에서 공항으로 내려가는 길에 볼 수 있는 협죽도. 난 옛날부터 협죽도가 참 좋았다. 한여름 뜨거운 햇볕에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하늘 쳐다보는 복숭아 닮은 꽃 협죽도. (잎은 버드나무[柳]를 닮았고 꽃은 복숭아[桃] 꽃을 닮았다고 해서 유도화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햇볕이 너무 세면 우아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잠시 고개를 숙이기도 하는데 협죽도는 거침이 없다. 뾰족한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예쁜 꽃들이 하늘 향해 노래 부르는 협죽도 아래로는 늘 두어줄기 바람이 불고 있다. 올 여름 나는 레이스 양산, 협죽도와 벗하며 더위와 잘 지내고 있다. 무척 덥기는 하지만 늘어지지 않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몸을 가볍게 하면 더위도 바라볼만 하다. 그래서 남편과 딸이 나를 무시하며 쳐다보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속삭이고 있다. 더위를 바라봐. 더위와 친구해. 이제 더위랑 지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나중에 그리워하지 말고 지금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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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섬(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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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수석 합격자에게 비법을 물으니 교과서로만 공부했어요 하는 수준인가요. 하지만 한 번 속는 셈치고 독자 여러분들도 자기만의 더위 친구와 만나보세요. 물이 좋은 사람은 시원한 바다를 찾거나, 그늘이 그리운 사람은 숲을 찾거나 시간을 죽이고 싶은 사람은 추리소설을 읽거나, 각자 자기에게 맞는 더위 친구와 함께할 일들을 찾아보시라. 그 사이 성큼성큼 날이 가 곧 가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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