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거짓말이 있다. 선의의 거짓말, 악의의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언뜻 보기에 통계란 것이 대단히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활용하는 사람이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진실을 왜곡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제주형 지방자치모형 개발 등 행정개혁에 관한 연구」 최종보고서(안) 에 포함된 설문 역시 이 범주에 해당한다고 보아진다.

설문지 곳곳에서 설문자 스스로 “① 현재의 행정서비스는 불만족 스러우며, ② 그 원인은 도와 4개 시.군으로 나뉘어져 있는 현재의 행정체제 때문” 이라는 전제하에 질문을 이어가고(유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건 하나마나한 질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1-2)와 2-1)이다. 문항 내용을 살펴보자.
1-2. 행정서비스가 원활히 제공되고 있으므로 현행 체제를 유지하여야 한
다고 생각하십니까?
⇒ 잘 되고 있는 데 왜 바꾸겠는가?
2-1. 현재와 같이 도와 4개 시.군이 분리되어 각각 제공하는 행정서비스
로인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 행정서비스 제공방식을 개편할 필
요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도와 4개 시.군이 분리되어 각각 제공하는 행정서비스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 (이건 분명한 유도성 질문이다.)
⇒ 그리고 문제가 있는데도 걍 놔 둘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설문조사에서 유도성 질문은 심각한 결격사유다.]

1-3)을 보자.

1-3) 행정서비스가 원활히 제공되지 않거나 개선이 여지가 있다면, 그 원
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① 제주 도청과 시․군이 현재와 같이 분리되어 행정서비스를 제공
하기 때문
② 제주시, 서귀포시, 북제주군 및 남제주군이 각각 분리되어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
③ 제주도 및 4개 시․군의 인력, 재원 및 사무처리의 비효율성 때문
④ 주민참여 장치가 미흡하기 때문

용역보고서 작성자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설문문항 4-2)참조), 제주도의 행정서비스 질을 제고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행정체제의 개편과 행정운영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그런데 이 문항을 보면 행정서비스가 원활히 제공되지 않는 이유도, 때문에 개선되어야 할 부분도 ‘행정체제 뿐!’ 이다(사실 답변항목을 보면 1~3번은 무늬만 다를 뿐 같은 과(?)며, ‘주민참여 장치 미흡’은 들러리다). 이 문항이야말로 설문자의 숨은 의도와 목적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의도된 전제(?)가 잘못된 문항배치로 이뤄지고 있다.]

설문조사에 있어서 내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문항의 배치다. 그런데 이번 설문조사에서의 항목 배치는 ‘의도하는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화로써의 항목 배치’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1-2) 다음에 1-3)을 배치함으로써 이후 모든 내용은 사실상 현재의 행정체계 개편을 전제로 한 것이 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이번 설문항목의 배치구조는 1-1)~ 4-4)까지 온통 현재의 행정체제에 원죄를 부여해놓고, 5-1)~5-3)에서 다시금 확인사살(?)하는 구조다.

[원인이 무엇인가에 따라 처방도 달라진다.]

필자가 보기에 이번 설문조사는 행정서비스 불만족에 대한 철저한 원인규명이 미흡하다는 근본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행정서비스 질을 제고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행정체제의 개편과 행정운영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면, 애초에 행정서비스에 대한 불만족을 갖게 되는 원인에도 행정체제에 의한 것과 행정운영 시스템에 의한 것이 있을 수 있다.

때문에 도민들이 행정서비스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저한 원인규명이 선행되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설문조사는 행정서비스 불만족의 원인을 (설문자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처음부터 행정체제 때문인 것으로 단정 짓음으로써 이후 모든 내용에 있어서 객관성을 훼손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현성욱님은 제주사회연구소 "미래" 선임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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