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5) 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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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쉰다리. ⓒ 김정숙

오일장에서 누룩을 샀다. 천 원에 두 개를 준다. 쉰다리를 실컷 해 먹고도 남겠다. 먹을 사람이라야 남편과 둘 뿐이니. 사실 우리 아이들은 쉰다리가 뭔지 모른다. 전기밥솥 덕에 변해서 버리는 밥도 없었고 음료도 주전부리도 널려서 굳이 쉰다리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식품광고에서 먹거리에 대한 정보를 얻고 유행 따라 살았다. 호기심과 편리함에 입맛을 저당 잡히고 산거다. 우리 아이들은 제주가 고향이라면서 고향음식을 잘 모른다. 부끄럽고 후회되는 일중 하나다.

식문화는 부엌에서 잉태된다. 그러나 주거환경과 식품산업의 발달로 점점 부엌은 제 역할을 상실하고 전국이 외식체인점으로 얽혀 입맛 통일시대를 살고 있다. 발효식품은 조건이 갖추어진 공간이 아닌 가정에서는 레시피대로 잘 되지 않는다. 실패 하더라도 자주 반복하면서 유용한 발효균이 서식하도록 공을 들여야 한다. 된장이 그렇고, 술이 그렇다. 그래서 맛있는 집과 항아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쉰다리는 다르다. 이렇게 쉽고 지혜로운 발효음식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싶다. 발효와 부패는 한 끗 차이다. 보리밥이 부패로 가는 아슬아슬한 시점에 누룩과 물을 넣어 속성으로 발효시켜 먹는 밥요구르트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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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쉰다리를 위해 준비한 보리밥. ⓒ 김정숙

곡물음식은 썩기 전에 먼저 쉰다. 시큼한 냄새가 나는 시점이다. 부패는 역겨운 냄새가 나고 발효는 좋은 향기를 풍긴다. 물론 아주 정상적인 밥이나 떡으로도 쉰다리를 만들 수 있다. 양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묽게 하고 싶으면 묽게, 되게 하고 싶으면 되게. 누룩이라는 발효제를 쓰기 때문이다.

냉장고나 전기밥솥이 없었던 여름에는 아침에 지은 보리밥도 저녁이면 물이 돌기 시작한다. 그러면 물에 한번 헹구고 쉰다리를 만든다. 항아리도 전용용기도 필요 없다. 밥을 담았던 양푼에서 뚝딱. 이런 기막힌 발견이라니... 

아무래도 쉰다리는 보리밥으로 해야 제 맛이다. 밥 두 공기에 물 1리터 정도, 누룩 손가락 한 두 마디 정도 부숴서 같이 섞고 상온에서 하루나 이틀정도 발효시킨다. 물 위에 거품과 하얗고 얇은 막이 생기면서 신맛이 나면 다 된 것이다. 온도가 높으면 빨리 발효하고 낮으면 더디다. 음료도 되고 요깃거리도 되는 음식이다. 체로 거른 다음 단맛 추가는 각자 개성대로.

살아있는 쉰다리는 계속 발효를 진행하므로 숨구멍을 내 놓아야 한다. 한 번 끓여주면 발효를 멎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발효식품은 생으로 먹어야 영양도 맛도 제대로 아닌가. 덧붙인다면 블루베리, 복숭아 같은 제철 과일과 섞어도 잘 어울린다. 

할머니와 헤던 별들이 아직 그대로다. 그 때 몇 번, 쉰다리 먹고 빨갛게 취한 꼬맹이 얼굴 기억하려나? / 김정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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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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