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7) 양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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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하꽃. ⓒ 김정숙

봄은 바다로 올라오고 가을은 산에서 내려온다. 더위가 한풀 꺾이는가 하면 어김없이 시장에 양하꽃이 나온다. 양하꽃은 가을을 알리는 산의 전령사다. 차츰차츰 아래로 내려와 추석 무렵엔 중산간 마을을 지난다. 양하는 생강과 식물로 생강과 비슷하다. 닭발처럼 생긴 뿌리를 뻗으며 사는 다년생 식물이다.

봄에는 어린순이 가느다란 죽순처럼 올라오는데 꺾어 나물로 먹는다. 섬유질이 많고 향이 독특하다. 추석 무렵엔 꽃을 먹는다. 뿌리에서 나온 꽃은 자주색 잎으로 겹겹 싸인 송이에서 노란 꽃이 수줍게 고갤 내민다. 한 송이에 꽃이 여러 개 피어나면서 꽃송이가 커지면 질겨서 먹을 수 없다. 식용으로 할 때는 꽃이 피기전이나 하나 둘 정도 핀 정도가 괜찮다. 양하는 제주와 남해안 지역 일부에서 먹는다. 향이 독특하면서 강하다. 첫맛은 강한 향이 코를 쑤시고 끝 맛은 맵싸하다. 향신채소들이 그렇듯 양하도 호불호가 심하다.

올레길이나 오름을 찾다보면 종종 양하를 만난다. 사람이 살았던 곳임을 짐작케 한다. 야생성이 강한 양하는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믿음직한 나물이었다. 화전을 일구며 살던 터에도 양하가 남아 그 흔적을 전하고 4,3때 사라진 집터에도 양하는 표적처럼 남아있다. 지금도 집터 둘레나 텃밭구석을 의기양양하게 지키는 양하를 많이 본다. 그래서인지 양하에겐 나물이상의 정이 간다.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과수원 한 귀퉁이를 차지한 양하가 올해도 무성하다.

양하꽃을 제주사람들은 ‘양애간’ 또는 ‘양애끈‘이라 부른다. 지금은 생산과 저장기술의 발달로 추석에 나물이 풍성하지만 예전엔 추석이 다가오면 무성한 양하 줄기를 헤치며 양하꽃을 따오는 게 추석 준비의 시작이었다. 그 뿌리에 돋은 양하꽃을 추석 차례상에 처음 올린 이는 누구였을까. 지금 생각해도 기특하고 훌륭하다. 아이들이 별로 좋아라하지 않는 나물이라 그런지 점점 차례상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양하는 생으로 된장을 찍어 먹기도 하고 샐러드나 익힌 나물, 피클처럼 새콤한 장아찌를 담기도 한다. 모양이나 색, 맛 어느 하나 평범하지 않은 꽃 요리다. 양하는 육류의 누린내를 잘 잡아준다. 돼지고기와 함께 진득하게 끓이다가 마지막에 밀가루나 메밀가루를 얇게 물에 개어 넣은 국도 별미다. 쇠고기와 표고버섯, 양하꽃을 같이 끓여 낸 국물에 떡국을 끓여도 좋다.

나물 맛을 알 때쯤 되면 인생 맛도 안다고 했다. 입맛대로 달리기보다 이 맛 저 맛 보다 보면 내 생도 풍성해지지 않겠는가. 먹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맛, 먹다보면 그립고 생각나는 맛. 맛을 알아가는 것도 사람을 알아가는 것과 참 닮았다. 양하꽃의 개성 깊은 맛을 헤아려 봐야겠다. / 김정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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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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